[성남의 예술가] 시각예술가 한광우: 모두의 참여, 예술이 되다
- artviewzine
- 9월 28일
- 5분 분량
최종 수정일: 9월 29일
전통적인 시각예술에서 작품은 작가에 의해 완성된다. 관객참여미술은 관객과의 상호 작용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을 중시한다. 한광우 작가는 관객의 참여를 통해 전시가 공연예술로 확장되는 가능성을 실험한다. 지난 8월 9일부터 16일까지 성남아트센터 갤러리808에서 개인전 <사색의 운동회-상징물의 재탄생>을 진행한 작가를 만나 새로운 실험의 의도와 성과를 들었다.
글 김문영 객원기자 | 사진 최재우

반갑습니다. 전시 <사색의 운동회-상징물의 재탄생>으로 관객을 만나고 계신데요, 소감은 어떠신가요?
굉장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전시 개막을 기다렸어요. 미술 작품에 대한 우리의 관념과 다소 거리가 멀더라도 제가 하고 싶은 것을 충분히 다 하자는 생각으로 준비한 전시입니다. 전시에 오시는 분들의 생각을 많이 듣고 싶었어요.
어떤 전시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사색의 운동회-상징물의 재탄생>은 관객이 전시 공간에 놓인 오브제(objet)를 활용해 신체 활동을 수행하며 작품을 완성하는 전시입니다. ‘운동회’라는 제목이 의미하듯 놀이를 통한 몸의 감각 느끼기, 사색하기를 안내합니다. 관객은 수동적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작품에 참여하고 작품의 의미를 생성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전시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무엇이고 각각 어떤 기능을 하나요?
전시는 참여 규칙, 참여를 위한 오브제, 관객의 세 요소로 구성됩니다. 모든 게임과 놀이에 규칙이 있듯 <사색의 운동회-상징물의 재탄생>에도 작가의 의도가 담긴 참여 규칙이 있어요. 관객의 신체 행위를 유도해 단순한 체험을 넘어 진정한 사색의 길로 이끄는 역할을 합니다. 참여를 위한 오브제는 전시 공간에 놓인 사물들이에요. 10점의 오브제로 이번 전시를 구성했는데 주로 신화적이고 종교적인 상징을 재구성한 것들이에요. 이것들만으로 전시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참여가 필수이기 때문에 작품이라고 부르는 대신 오브제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마지막으로, 관객은 참여 규칙과 오브제를 통해 움직이면서 작품을 시각적으로 완성하고 의미를 빚어내는 요소이자 주체가 됩니다. 저는 세 요소의 조합으로 인해 이 전시가 하나의 공연예술처럼 보이기를 바랐고 처음으로 무용가를 초대해 그 가능성을 실험했어요.
신체 활동이 매개하는 감각과 사유
이번 전시는 2022년부터 이어 온 <사색의 운동회> 연작의 새 시리즈로 알고 있습니다. 이 연작을 시작하신 이유가 있나요?
저는 조각 전공자인데 이탈리아에서 유학 생활을 했어요. 2020년에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는데 인간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데 다소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유럽에서는 모르는 사람과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문화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우리는 좀 더 조심스럽게 관계를 맺잖아요. 당시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접촉이 금기시되던 때이기도 했어요. 그때 처음으로 혼자서 달리기를 시작하고 집 뒷산을 자주 오르면서 내 몸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면서 신체 활동으로 인한 감각이 그냥 신체에 영향을 미치는 데 그치지 않고 정신 활동으로 연결된다는 걸 알게 되어 <사색의 운동회>를 기획했습니다. 제가 설치미술을 하다 보니 시각, 즉 눈으로 받아들여지는 감각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이 시리즈에서는 저와 관객 모두 시각과 이성에 사로잡히는 경향을 극복하고 신체와 감각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기존 연작과 다르게 시도하신 것은 무엇인가요?
우선, 이전 시리즈보다 오브제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주력했습니다. 관객이 신체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오브제 자체가 설치미술 작품으로 감상의 대상이 되고 관객에게 영감을 줄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어요. 2022년에 영은미술관에서 개최한 전시는 참여 규칙을 강조하다 보니 오브제 자체는 굉장히 단순했거든요. 이번에는 오브제의 재료, 형태, 색채 같은 것들을 깊이 고민했고 다양한 표현을 시도했습니다. 오브제가 표현하는 내용은 치열한 현실을 담고 있고 잔혹하기도 한데 색채를 보면 굉장히 알록달록해요. 내용과 대비되는 역설적 표현이 메시지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또 시각예술이 아닌 다른 장르와의 융합을 통해 마치 공연 같은 전시, 전시 같은 공연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오브제에 담은 의도는 무엇인가요?
일반적으로 현대미술을 설명하고 평가할 때 고전미술과의 단절을 전제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이탈리아에 있는 동안 그곳의 전통적 요소들, 신화나 종교의 상징을 많이 접했고 예술적 영감을 받았어요. 그 전통적 상징물을 제가 추구하는 현대미술로 가져와서 관객과 소통하고자 한 것이 이 전시의 시작점입니다. 예를 들어, ‘에케 호모(Ecce Homo)’라는 제목의 오브제가 있어요. 에케 호모는 신약성경에 나오는 문구로 ‘이 사람을 보라’라는 뜻이에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짚으로 만들고 관객이 바늘로 찌를 수 있도록 했어요. 인간이 타인을 제물화하는 상징인데, 뭔가 익숙하지 않으세요? 우리나라에도 있는, 누군가를 저주하기 위해 인형을 바늘로 찌르는 주술이 떠오를 거예요. 그렇게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고 문화권을 초월하는 공통된 의식, 타인을 공격하는 행위를 놀이로 구현했습니다.
그러한 놀이 활동을 통해 관객의 어떤 사유를 유도하고자 하셨나요?
‘에케 호모’의 상징은 인간의 본성을 성찰하자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타인을 찌르는 행위로 드러나는 공격성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점을 한번 생각하게 되지요. 저는 타인을 공격하는 행위와 스스로 구원자를 만들어 내는 행위가 통한다고 봤어요. 좀 더 넓게 보면 축제(carnival)의 기원이기도 합니다. 전시는 일종의 놀이로 가득한 세상인데 타인을 향한 공격과 치열한 경쟁의 세계이면서 반성, 속죄, 화합의 세계이기도 합니다. 그 안에서 어떤 감정과 생각이 크게 다가올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관객은 작가가 의도한 규칙에 따라 농구, 탁구, 줄다리기와 같은 놀이를 통해 몸의 감각을 느끼고 행위의 의미를 사색한다
현재의 이야기를 전하는 동시대 예술
전통적 상징, 고전미술의 요소를 현대로 끌어오신 부분도 흥미롭습니다. 전통과 현대의 융합을 시도하실 때의 주안점은 무엇이었나요?
전통을 가져오는 시도 자체보다는 전통 요소가 현재에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를 탐색하는 과정이 중요했어요. 동시대 미술은 결국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현재의 이슈를 이야기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시스템, 인간과 물질을 대하는 태도, 자연과의 관계 같은 것들을 사유하자는 거예요. 그리고 이번에는 그리스도교의 상징을 통해 절대자의 이야기를 더했고요. 절대자는 종교적 의미도 있지만 오늘날 대중문화 속의 우상으로도 존재해요. 절대자를 숭배하고 맹신하는 모습, 시스템 안에서의 한계에 부딪히고 좌절하는 우리를 성찰하자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습니다.
무용가와 협업을 시도하신 이유는 무엇이고 어떤 작업이었는지 궁금합니다.
현대미술의 주요 흐름 중 하나는 대형화이고, 규모가 강조되면서 다른 예술 장르와 결합해 관객에게 새로운 체험의 장을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예술가가 다른 분야의 예술가와 협업하는 것이 필수 덕목으로 여겨지고 있어요. 이번 전시는 관객의 체험과 사색을 의도한 만큼 새로운 감각적 요소를 다양하게 시도하고 싶었어요. 관객이 흥미를 갖고 작품에 더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서 풍부한 사유를 유도한다는 의도였지요. 공연예술 확장 가능성을 실험하기 위해 무용가 김래혁, 사운드 디자이너 김영일 같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김래혁 무용가에게는 오브제들을 활용한 안무를 부탁드렸는데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움직임들을 다채롭게 구현해 주셨어요. 이번 전시는 성남문화재단의 ‘2025 성남예술인 예술창작활동 공모지원’에 선정되어 진행할 수 있었고 재단 사업 담당자님의 소개로 좋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전시 준비 중 가장 까다롭거나 고민스러웠던 문제는 무엇이었나요?
오브제 작업을 할 때 스케치한 형태대로 구현하기 힘든 것들이 있었어요. 저는 막 자유롭게 상상하고 스케치했는데 기술적으로 구현하기 어렵거나 재료 문제가 있거나 했습니다. 전문 기술자, 공동 창작자들의 도움을 받는 과정에서 그림을 보여 드리면 만들 수 없다고 하시는 경우도 많거든요. 어느 정도 수정하고 변경해야 하는지, 어디까지 고집을 부리고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정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무궁무진한 가능성, 기획자로서의 예술가
앞서 말씀하신 대로 ‘2025 성남예술인 예술창작활동 공모지원’ 사업에 참여하셨어요. 예술가에게 성남문화재단과 일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2023년에 성남문화재단의 지원으로 관객참여미술 전시를 열었고 올해 다시 선정되어 연작을 선보였습니다. 제가 하는 작업은 작품을 보존하거나 판매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어서 성남문화재단처럼 예산을 지원하는 사업이 없다면 실현하기가 쉽지 않아요. 현실적 문제에 대한 걱정 없이 원하는 작품과 전시를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무엇보다 제가 하는 이 작업이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인정받는 듯해서 용기가 생겼고 큰 힘이 됐습니다.

신화와 종교의 상징에서 영감을 받아 재구성된 오브제들 각 오브제의 기획 의도와 놀이 규칙을 담은 스케치
관객참여미술을 어떤 방향으로 이어 가고 싶으신가요?
관객참여미술은 꽤 오래전에 시작된 장르고, 이제 관객이 작품에 참여한다는 것만으로는 미술사적 가치가 있다고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장르 융합을 적극적으로 시도하면서 저만의 길을 찾는 중이에요. 제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관객의 신체를 통해 감상한다는 것인데 이 지점에서 공연예술 확장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전시의 세 요소인 참여 규칙, 오브제, 관객으로 말하자면 관객은 신체를 사용하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인이 될 수 있어요. 전통무용, 현대무용, 발레, 탭댄스 같은 장르의 무용가 혹은 서커스 단원이 될 수도 있겠지요.
오브제는 3D 프린팅, 인공지능 로봇 같은 신기술이나 신소재를 활용한다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합니다. 이 모든 가능성을 조합하고 융합해서 관객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할지 기획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제가 하고 싶은 일입니다. 조각가라고 하면 보통은 장인(匠人)의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저는 시각예술 전문가가 할 수 있는 작업이 무엇이냐는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발상의 전환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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