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성남의 얼굴] 이중민, 전효성 작가: 예술은 상상을 즐기는 것이다

일찍이 발터 벤야민이 언급한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을 넘어, 오늘날의 예술은 기술복제는 물론 무한생성과 변형의 시대에 다다랐다. 기술과 예술의 경계가 점차 희미해지는 지금, 이들의 상호작용은 예술가의 창작에 어떤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을까? 4월 27일까지 성남큐브미술관 반달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성남작가조명전 I <디:바운더리>에서, 이중민·전효성 작가는 청년 작가들의 참신한 시각으로 기술과 예술 그리고 인간의 연결성에 대한 진중한 고찰을 펼쳐 낸다. 성남 지역을 기반으로 창작 활동을 이어가는 두 작가가 전하는 작업과 영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남소연 성남문화재단 소통전략부 과장 / 사진 최재우


전효성 작가와 이중민 작가


먼저 작가님과 작가님의 작업에 대해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중민 저는 현대사회와 기술문명의 이중성과 모순을 주제로 한 창작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술 담론 자체를 작품의 주요한 화두로 설정하고 이를 드러내거나 뒤집는 방식으로 작업하죠. 처음에는 평면회화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영상·설치·웹 등 다양한 확장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전효성 안녕하세요, 미디어 환경 속 이미지의 생산자이자 소비자이고, 이에 대한 경각심을 이야기하는 전효성입니다. 초기에는 미디어를 활용해서 이상향의 이미지를 시각화하는 작업에 주력했어요. 컴퓨터 그래픽으로 이미지를 제작하고, 프로젝션 기법으로 현실에 투사하여 이상 공간을 표현하는 작업이었죠. 작년부터는 미디어 속에서 복제되고 재생산된 이미지가 현실에 끼치는 영향을 실감하기 시작해서, 관련 주제로 작업 세계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디:바운더리> 전시에서는 어떤 작품을 만날 수 있을까요?

이중민 반달갤러리 2층 초입 부분에서는 제 드로잉과 평면회화를 접하실 수 있습니다. 다양한 매체를 작업하고 있지만 제게 평면회화는 언제나 가장 어려운 미션이자 가장 큰 애착을 지닌 매체이기도 해요. 먼저 말씀드렸듯 저는 ‘현대사회와 기술문명’이라는 주제 아래 작품을 제작하는데요, 전시장 2층 복도의 평면부터 안쪽에 자리한 영상예술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 외에 새로이 실험 중인 신작도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중세 제단화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인데요, 그동안 실험했던 다양한 매체들을 하나의 프레임으로 엮어 내고 압축하는 시리즈입니다.

전효성 저는 미디어를 활용해 이상향의 이미지를 시각화한 첫 번째 작품 <봄, 깨어나는 숲(Spring)>, 이미지가 생산·복제되는 미디어 환경을 소재로 제작한 <Reproduction> <채널(Channel)> <Beyond the Scene> 그리고 제가 바라보는 미디어에 대한 고찰이 담긴 <Think About Media>까지 총 다섯 작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Reproduction>의 경우, 어떤 환경 속에 적응하기 위해 비슷한 듯 다른 형상으로 계속 움직이고 변화하는 이미지의 모습을 표현했어요.


두 작가님과 도시 성남의 인연, 혹은 연결고리는 무엇인가요?

이중민 초·중·고까지 모든 학창시절을 보내고 지금도 성남에 살고 있죠. 다른 곳에서 산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친숙한 도시지만, 마치 미시감(未視感)처럼 평소 익숙했던 것들이 낯설게 다가오는 느낌, 매번 보는 광장과 버스 안 풍경이 달라지는 경험에 익숙하기도 해요. 이러한 ‘낯섦’은 제가 살아가는 도시에 대한 다채로운 해석을 만드는 영감이 됩니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 삼아 2022년에는 성남을 주제로 청년 문제나 도시 위기에 대한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죠.

전효성 성남은 제 고향입니다. 태어나서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가장 오랜 시간 살았던 도시다 보니 애착이 커요. 대학 졸업 후 서울에 살며 작업실을 운영했지만 본격적인 작가 활동은 성남에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자리하고 있었죠. 지난해 드디어 성남에 집과 작업실을 마련해서, 이곳을 기반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쳐 갈 계획입니다.


이중민 작가님은 다양한 매체 작업을 진행하고 계시는데요, 그중 가장 애착이 가는, 혹은 매력을 느끼는 작업이 있으신지요?

이중민 사이버펑크 SF 소설을 좋아하는 제 취향이 반영된 작업이자 처음 다원적인 시도를 한 <Machine butcher> 작업입니다. 이전까지 평면회화를 지속적으로 작업해 왔지만, 다층적 레이어를 가진 사이버펑크 장르를 실험하기 위해 다양한 매체에 도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를 실행에 옮긴 첫 작품이자 시리즈로 기획한 작업이 바로 <Machine butcher>입니다.

이중민 작가는 현대사회와 기술문명의 이중성을 주제로 한 작업을 선보인다


전효성 작가님은 오페라와 연극, 대중 콘서트 등 공연예술 현장에서 무대 영상 디자인 작업을 해 오셨습니다. 현장과 개인 작업 각각의 의미, 또 병행이 주는 장점이 있다면요?

전효성 무대 영상은 제가 예술가로서 처음 꿈꾸던 이상 공간 표현을 실현할 수 있는 작업입니다. 무대 공간은 공연 전에는 현실이었다가 공연이 시작되면 작품 속 세계로 변하죠. 제 손으로 그 세계를 만들어 간다는 만족감이 정말 커요. 하지만 많은 이들과 협업하는 공동 작업물 형태라, 개인의 창작 세계를 온전히 표현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죠. 그래서 이런 부분을 개인 작업으로 충족합니다. 관심 있는 주제를 깊이 탐구하고 제약 없이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인데요, 한 명의 예술가로서 메시지를 담아 작품을 만들고 선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행복감과 에너지를 얻습니다.

미디어를 활용한 작품을 만들다 보면 협업이 필요한 과정이 많아요. 무대 작업에서 얻은 다양한 분야의 인사이트와 인프라를 제 작업에 활용하기도 하고, 개인 작업의 시행착오가 무대 영상 작업의 밑거름이 되기도 합니다. 두 작업의 병행은 예술가로서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상호보완적 효과가 있다고 생각해요.


생성형 AI 등 최근 급성장한 기술의 발달이 예술가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중민 AI가 만들어 내는 이미지와 텍스트는 예술이 아니라 아무런 의미 없는 데이터입니다. 저는 오로지 인간만이 예술을 부여하고 예술을 통해 사유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예술가들은 의미 없는 데이터들을 엮어 예술을 만들어 내기에, AI는 좋은 동료입니다.

전효성 기술의 발전에서 제가 실감하는 부분은 ‘기술에 치중하지 않아야 생존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많은 기술 중 작업에 필요한 부분만 선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죠. 기술의 발전은 개인이 따라갈 수 없고, 기술 중심으로 치우치면 결국 가장 먼저 도태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현대 미디어 환경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내는 전효성 작가


현재 주목하는 관심사, 또 실제 작업에서 즐겨 사용하시는 생성형 AI 프로그램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중민 플럭스(Flux model, 미드저니(Midjourney), 클로드(Claude), GPT, 제미니(Gemini) 등 여러 AI 프로그램들을 상황에 맞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기존 서비스들만 이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어서, 최근에는 생성형 AI 모델의 설계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전효성 XR 분야에 관심이 많아요. 인터랙티브 미디어 속에서 작품의 메시지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환경 구현과 활용 방법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현재 작업에서는 미드저니(Midjourney),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 런웨이(Runway)와 같은 생성형 AI를 사용해서 작업에 필요한 스타일 프레임을 만들거나 이미지 연구를 진행해요. 짧은 시간 안에 다량의 이미지를 만들 수 있어 굉장히 효율적이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창작과 생업의 병행 과정에서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이중민 저는 그냥 ‘잠을 안 자면 된다’는 마인드라서요(웃음). 작업과 생업, 또 인간관계까지 어느 하나를 포기하고 싶진 않아서 최대한 덜 자고 시간을 활용해요. 작업 면에서도 다양한 AI 툴을 고루 알아 가고 활용하기 위해 잠을 줄이고 빠르게 많은 것들을 처리하는 루틴을 따르고 있어요.

전효성 처음에는 일과 창작의 밸런스를 찾기가 조금 어려웠어요.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스튜디오 체제로 동료와 역할 분담을 하면서 나아진 것 같아요. 프로젝트가 겹칠 때 누구는 이 부분을 전담, 누구는 개인 작업, 이런 식으로 배분하다 보니 한결 균형을 찾게 됐죠. 다만 그럼에도 개인 여가시간은 좀 포기하고, 일과 창작 작업에만 최대한 집중하고 있어요.


<디:바운더리> 전시는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이중민 성남아트센터 바로 옆에 자리한 태원고등학교를 졸업했어요. 그래서 매일 성남아트센터를 보며 학창시절을 보냈죠. 당시에는 그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할 뿐이라 여기서 전시를 하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더 많은 곳을 다녔지만, 여전히 세상은 넓고 모르는 것이 많아요. 그리고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크든 작든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니, 그저 현실을 바라보고 앞으로의 상상을 즐기는 것이 저의 예술입니다. 같이 즐기셨으면 해요.

전효성 성남에서 제 작업을 처음 선보이는 전시이자, 작년부터 연구했던 ‘이미지가 생산되고 복제되는 미디어 환경’에 관한 작품을 보여 드릴 수 있어 정말 기쁜 마음이 커요. 주위를 둘러싼 미디어 환경에 대해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성심성의껏 준비했으니, 관객 여러분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되셨으면 합니다.


앞으로 작가로서의 계획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중민 뉴욕에 살고 있는 지인과 현지에서 함께하는 작업을 구상 중인데요, 아시아에 대한 담론을 담아낼 수 있는 아이디어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이와 별개로 앞으로도 성남에 기반한 작업은 계속 할 생각입니다. 실제로 친구들은 저를 ‘성남의 아들’이라고 부르기도 해요(웃음).

전효성 개인 작업을 좀 더 많이 선보이고 싶어요. 장기적으로는 해외 전시도 욕심을 내고 싶고요. 지금의 제 작업 형태는 미디어 영상 분야에 집중되어 있지만, 이 경계를 좀 더 확장해서 다양한 인터랙티브 요소로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