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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의 예술가] 극작·연출가 김재우: ‘좋은 예술’로서의 배리어프리 연극 만들기

  • 작성자 사진: artviewzine
    artviewzine
  • 7월 29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7월 30일

가수 지망생이 뮤지컬 배우가 되고, 작곡과 연출로 활동 영역을 넓혀 온 여정을 따라가 보면 자기표현과 사회적 소통의 욕망이 균형 있게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극작가 겸 연출가 김재우는 지난 몇 년 동안 배리어프리 연극을 만들면서 예술의 심미적 기능과 사회적 가치의 조화를 추구했고, 지난 7월 19일 성남아트센터 앙상블시어터에서 선보인 <나는 코다입니다> 두 번째 시즌을 맞아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어 냈다.


김문영 객원기자 | 사진 최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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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인 김재우를 키운 성남

김재우 작가가 나고 자란 성남은 연극인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온 여정에 중요한 전기를 제공했다. 첫 번째는 성남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극단을 만들었던 일이다. 2007년 <뮤지컬 펑키펑키>로 데뷔한 배우 김재우는 10년간 연극계에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2018년 극단 ‘1986 컴퍼니’를 창단했다. 1986년생 대학 동기 몇 명이 모인 작은 극단은 자유롭게 역량을 펼치기에 좋았다. 이때부터는 연기뿐만 아니라 곡을 만들고, 극본을 쓰고, 무대를 연출하면서 연극을 만드는 모든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작품으로 관객에게 무엇을 전달할지 전보다 폭넓은 관점으로 바라보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배리어프리’는 김재우 작가가 하려는 예술의 방향, 연극 작업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한 주제이자 성남과의 두 번째 인연이 시작된 계기다. 작가는 지난해 성남문화재단의 ‘청년예술인 창작활동 공모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나는 코다입니다>라는 배리어프리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이 작품은 성남의 청년예술인이 가진 다양한 역량과 관심사를 창작활동으로 연계하는 지원사업을 통해 사전 준비, 제작, 발표까지 종합적으로 도움을 받아 완성되었다. 초연 당시 장애인의 삶을 진솔하게 그렸다는 호평을 받았고 올해 성남문화재단의 ‘성남예술인 예술창작활동 지원사업’에 다시 한번 선정되어 두 번째 시즌을 맞았다.


배리어프리의 확장을 위한 실험

‘배리어프리(barrier free)’는 장애인, 노약자, 임산부 등 사회적 약자가 물리적·제도적·심리적 장벽 없이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운동이다. 공연예술 분야에서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 조성부터 장애인 관객을 위한 자막·수어통역·음성해설·조명 등이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김재우 작가는 수어 공연 작품에 참여하면서 배리어프리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졌다. 수어라는 언어 형식의 기능과 아름다움에 매료된 것이 출발점이었다.

2022년에는 사회적기업 ‘바이주나’의 김준아 대표와 함께 극단 ‘두번째계획’을 창단하고 배리어프리 연극을 전문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기존 배리어프리 연극이 장애인 관객의 접근성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창단 첫해에는 수어로만 연기하는 작품 <두 번째 이름>을 제작했고, 2023년에는 <너의 하루>라는 작품으로 자막이나 수어통역이 없는 새로운 배리어프리 공연을 시도했다. 작가는 작품들에 담은 의도를 설명하며 장애인 관객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저희 의도는 농인과 청인의 역할과 입장을 완전히 전복시켜 보는 것이었어요. 비장애인 중심의 연극은 청인이 음성언어로 공연하고 농인이 자막이나 수어를 보며 감상하는데, 이걸 100퍼센트 바꿔 농인이 수어로 연기하고 청인이 자막을 읽는 형식을 택한 거죠. 장애인이 이야기의 주체가 되고, 배우로 무대에 서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을까? 그 고민으로 새로운 형식의 배리어프리를 시도했고, 몇 번의 경험이 쌓이면서 <나는 코다입니다>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7월 19일, 성남아트센터 앙상블시어터에서 선보인 <나는 코다입니다> 포스터
지난 7월 19일, 성남아트센터 앙상블시어터에서 선보인 <나는 코다입니다>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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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코다입니다>의 2024년 공연 현장


비장애인 관객이 의식하는 ‘장벽’

배우가 연기하는 무대의 한쪽에서 수어통역사가 내용을 전달할 때 비장애인은 수어통역사의 존재를 의식할 필요가 없다. 반면 청각장애인은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라 수어통역사에게 시선을 빼앗긴다. 자막을 읽을 때에도 한국어와 수어의 문법이 달라 내용과 맥락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김재우 작가가 이전 작품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위치를 바꿨을 때 비장애인 관객은 즉각적인 불편을 겪었다. 화면에 표시되는 대본 혹은 자막을 읽으며 수어로 연기하는 배우의 메시지와 감정을 포착하려 애써야 했다. 비장애인은 그 불편을 경험하면서 장애인이 일상적으로 겪는 ‘장벽’을 의식했다.

배리어프리 연극을 관람하는 비장애인이 자기가 겪는 불편에 수용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애초에 열린 마음으로 ‘장벽’을 마주하기 위해 공연장을 찾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실제 비장애인 관객 대부분이 “장애인에 대해 몰랐던 점을 배웠다”라거나 “장애인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어 좋았다”라고 호평을 들려주었다.

<나는 코다입니다>는 어쩌다 배리어프리 연극을 접하는 관객의 호의적인 피드백에 안주하지 않기 위해 고심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어느 한쪽의 불편을 요구하지 않는다. 농인 배우는 수어로 연기하고 청인 배우는 음성으로 연기하며 무대에서 공존한다. 인물의 등장과 퇴장 없이 장면이 이어지고 상황이 전개되는 구성으로 관객의 시선과 집중력을 붙잡는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우리가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물고 공존하는 방식을 생각하도록 안내한다.


한 사람의 삶에 관한 이야기

<나는 코다입니다>의 주인공 도영은 장애 인식 개선 강연에 나서서 코다로 살아온 삶을 이야기한다. 코다(CODA)는 ‘Children of Deaf Adults’의 머리글자를 조합한 단어로, 청각장애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를 뜻한다. 농인과 청인이 모두 해당하는데 보통 청인 자녀를 가리킨다. 작품은 도영의 회상 형식으로 할머니 손에 자란 유아기, 부모님의 통역사 역할을 했던 어린 시절,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며 부모님을 더 사랑하게 된 청소년기를 순차적으로 보여 준다. 코다의 삶은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다르지 않은지, 생생한 에피소드를 통해 무지에서 비롯된 편견을 바로잡고자 한다.

김재우 작가는 도영과 부모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다수의 장애인과 코다를 인터뷰했고 그들의 실제 삶을 보여 주는 사례를 끌어오고자 했다. 특히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장애인 가족을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존재로 그리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작가는 작품 속 도영이네의 셋방살이 에피소드가 부모의 장애와는 특별한 상관관계가 없다고 설명했다.

“집주인이 계약 해지를 하는 장면은 어느 가정이나 겪을 수 있는 이야기예요. 그 에피소드는 도영이가 어른들의 대화에서 통역사 역할을 하면서 대출, 상환 같은 단어를 배우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어떤 의미를 부여하거나 평가할 필요가 없는 삶의 모습일 뿐이지요. 저는 도영이네 가족을 이야기의 주체로 내세워서 ‘한 사람의 삶’이라는 관점으로 장애인 가정, 코다의 삶을 바라볼 수 있도록 제시하고 싶었어요.”


모두의 삶은 평등하다

관객이 편견 없이 장애인과 코다의 삶을 바라볼 수 있도록, 김재우 작가는 <나는 코다입니다>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올해에는 ‘성남예술인 예술창작활동 지원사업’으로 재연을 준비하면서 초연 때 아쉬웠던 점들을 상당 부분 보강했다. 도영이의 회상 에피소드를 추가해 60분의 상연 시간을 75분으로 늘리고, 배우도 3명에서 4명으로 늘려 중복 배역을 줄이고 좀 더 다채로운 인물 표현이 가능하게 했다.

작년에는 청인 관객이 수어를 이해하고 농인 관객이 음성언어를 이해할 수 있도록 스크린에 대본을 보여 주었는데 올해에는 자막 형태로 편집·상영해 감상 편의를 개선했다. 배경음, 효과음 같은 소리를 영상이나 조명 같은 장치로 시각화하는 것도 배리어프리 연극의 중요한 요소이며 적지 않은 예산이 소요된다. 올해에는 영상, 조명, 음향 등 각 분야별로 전문가의 힘을 빌려 완성도를 높였다. 특히 성남문화재단 지원사업에 선정되자마자 성남아트센터 앙상블시어터 대관을 준비한 덕분에 좀 더 좋은 공연 환경을 마련하는 한편, 공연 횟수도 1회에서 2회로 늘려 지난 7월 19일 두 차례 공연을 성황리에 마무리했다. 다양한 관객이 함께 경험할 수 있도록 전석 무료로 공연장 문턱을 낮추고 입퇴장 제한을 두지 않는 열린 객석으로 운영해 공연의 의미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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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감과 예술성의 추구

김재우 작가는 성남문화재단의 지원사업이 아니었다면 기존 공연을 수정하고 보완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단이 예산, 준비 과정, 작품 발표까지 알차게 지원해 주셔서 스태프와 배우들 모두 열정적으로 도전할 수 있었어요. 배리어프리 연극이 점점 많아지고 있지만 수요와 역할은 여전히 한정적이고,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어요. 처음에는 우리가 만들면서도 쉽지 않겠다, 과연 관객과 소통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무대에 올리고 반응을 보면서 이런 시도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대단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을 알려 주기만 해도 굳어진 인식을 바꿀 수 있다고 믿거든요. 재단의 역할과 응원 덕분에 더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배리어프리 연극이 ‘누구를 향해 확장되어야 하는가’의 문제에도 관심이 크다. 다음 작품으로는 시니어가 주체가 되는, 시니어를 위한 배리어프리 연극을 구상하고 있다. 다문화 가정, 아동과 청소년 이야기 등 우리가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작가는 배리어프리가 모두를 위한 운동이며, ‘장벽’을 허물어 누구나 자유롭게 소통하는 세상을 만드는 예술의 힘이 절실하다고 믿는다. 배리어프리 연극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예술성과 대중성을 추구하는 노력을 이어 갈 것이다.

“장애인이 주체라는 이유만으로 장애인 관객이 봐 주지는 않아요. 비장애인을 설득할 만큼의 경쟁력이 저절로 생기는 것도 아니고요. 더 재미있고 매력적인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계속 고민하면서 저의 길을 찾으려고 합니다. 어떤 작품이 좋은 예술이냐는 질문의 답은 아직 못 찾았지만, 지금까지는 진심을 담았고 그 진심이 전해진 순간들이 있었어요. 더 많은 이들의 마음에 다가가는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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