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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토크] 작가 구래연: 지금, 몇 개의 공원을 알고 있나요?

전시장 내부, 대형 전광판 앞에 펼쳐진 발판을 가까이서 살펴본다. 발판에는 패턴화된 성남의 지도 위, 도시 곳곳에 자리한 공원의 이름이 표시되어 있다. 춤추듯 밟아 보면 각기 다른 사운드와 리듬,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는 고유한 ‘성남의 음악’이 생생히 움직이는 풍경과 함께 공간을 감싼다. 성남문화재단의 2024 우리동네예술프로젝트 <모든예술31> 예술과 기술 융합 프로젝트 공모 선정작으로 선보인 전시(11월 7일~17일 성남아트센터 큐브플라자) <Park Park Revolution>에서, 구래연 작가는 공원을 매개로 도시공간의 정체성과 다양성을 새롭게 인식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남소연 성남문화재단 소통전략부 과장 | 사진 최재우


여름의 매미 소리, 졸졸 물 흐르는 소리, 아이들의 웃음, 자전거 경적 소리…. 작가가 성남 곳곳의 공원에서 계절별로 채집한 일상의 백색소음, 각 공원의 지도데이터 등을 기반으로 음성화한 데이터는 공원 고유의 사운드로 완성되어 관객참여형 작품 <Park Park Revolution>으로 탄생했다. 그 옛날 유행하던 DDR 게임처럼, 공원의 이름이 적힌 패드를 밟을 때마다 화면에는 해당 공원의 시각화된 패턴이 영상으로 펼쳐진다. 익숙한 듯 낯선 공원의 풍경들은 음악과 함께 입체적으로 움직이며 도시의 리듬을 만들어 간다.

“공원의 풍경은 3D 입체 촬영이 가능한 스캐너 앱을 활용했어요. 가장자리가 잘리기도 하고 모양이 완벽하진 않지만, 실제 장소를 스캔한 결과물이라 이미지를 변형하진 않죠. 다만 공원별로 배경색에 차이를 둬서, 화면 전환 시 장소의 변동을 쉽게 인지할 수 있습니다.”

현대인의 삶에서 가장 밀접한 비중을 지닌 도시와 그 부속 공간들의 관계성은 최근 몇 년 동안 구래연 작가가 집중하는 화두다. 그 관심은 자연스레 작가가 살고 있는 도시 곳곳의 공원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다. 2018년 성남문화재단 청년지원프로젝트로 시작한 <숨은 공원 찾기> 이후 현재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바라보는 주제다.

“공원이란 도시 속에서 자연을 느끼기 위한 공간이지만, 사실 그 자체도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 정원이죠. 그 안의 꽃과 나무도 필요에 따라 베이고 제거되기도 하는, 인간의 태도가 엿보이는 곳이기도 해요. 인간이 점차 자연 환경을 잠식해 가면서 삶의 터전 역시 인공적인 환경으로 변해 가는 지금, 공원이라는 장소를 통해 우리가 자연을 대하는 태도와 공간의 의미를 생각하고자 했습니다.”

11월 7일~17일 성남아트센터 큐브플라자에서 선보인 구래연 작가의 관객참여형 작품 <Park Park Revolution>. 옛날 DDR 게임처럼, 공원의 이름이 적힌 패드를 밟을 때마다 화면에는 해당 공원이 지닌 고유의 사운드와 시각화된 패턴이 영상으로 펼쳐진다 © Park Park Revolution, customized press sensor, LED panel, stereo sound interaction, variable installation, 2024


곁에 있지만 몰랐던 공간의 재발견에 대하여

성남에서 20년 넘게 살아온 구래연 작가지만, 성남이란 도시에 특별한 애착을 지녔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1기 신도시’라는 일반적인 개념과 더불어 부모님과 함께 살며 잠을 자는 곳 정도였다고 회상한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에서 찾아온 친구의 전화 한 통이 지역에 대한 각성의 계기가 된다.

“친구가 차를 몰고 저희 동네로 찾아왔는데, 어디쯤이냐 물으니 ‘오리공원 앞’이라는 거예요. 도대체 어디지? 하고 지도를 살펴보다 성남 곳곳에 즐비한 공원의 존재를 처음 인식했는데, 분당구에만 무려 127개나 있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어요. 어디에 어떤 공원이 있는지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숨은 공원 찾기> 작업의 시작점이었죠. 집 주변, 이매동, 판교, 이런 식으로 조금씩 작업 범위를 넓혀갔고, 3년 동안 공원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저 역시 성남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저처럼 ‘내 주변’을 모르는 분들과 장소를 재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나누고 싶었어요.”

도시와 공간의 탐구에 대한 구래연 작가의 작업은 이후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졌다. 동네 공원의 나무와 자동차를 형상화한 스탬프를 찍고, 실크스크린 판화를 만드는 체험을 통해 일상 속 공원의 의미를 되새긴 <파크 프로젝트: 숨은 공원 찾기>, 성남 공원들의 스틸 이미지를 피아노 연주에 맞춰 구성한 영상과 공원 야외 음악회, 단편영화를 만날 수 있는 유튜브 채널 <숨은공원찾기TV>, 지난해 성남문화예술교육센터에서 진행한 개인전 <시가 되어 노래하는 지도 등 모두 공원과 도시, 공간과 현대인의 관계성을 탐구하는 연장선상에 위치한다. 작업 과정에서 만난 시민과 관객들은 전시의 참여자인 동시에 주체가 되고, 그 교류 속에 작업은 비로소 완성형으로 마무리된다.

“예를 들어 이번 전시에서는 공원 발판을 밟아 보던 어르신께서 ‘여기가 어느 공원이라고? 아, 거기! 내가 잘 알지’ 하며 풀어놓으시는 이야기로 대화가 시작되기도 해요. 어떤 의도로 이 작업을 기획했는지 말씀드리면 저마다의 감상을 자연스럽게 들려주시는데, 이런 이야기가 매 작업의 양분이 됩니다. 그래서 최대한 전시장에 자주 나오려고 하죠.”

© Artificial Nature, woods, printed foam boards, blue lights, variable installation, 2024


예술을 빛내는 조연, 기술

이번 공모 분야가 ‘기술+예술’인 만큼, 구래연 작가의 작업에는 곳곳에 다양한 기술들이 자리한다. 인터랙티브 미디어처럼 다양한 융복합 콘텐츠를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과 툴을 익히는 과정은 작가에게는 창작의 폭을 확장하는 단단한 기반이 된다.

“기회가 될 때마다 새로운 배움을 즐기는 성향이라, 제 작업도 자연스레 매체의 폭이 넓어지고 있어요. 특히 공간과 장소를 주로 다루다 보니 해당 표현에 특화된 기술에 관심이 가죠. 실감 나는 공간 구현을 위해 게임과 SF 영화에 사용하는 ‘언리얼엔진’으로 작은 게임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이미지와 비디오 생성 AI 프로그램들도 시도해 보고 있습니다. 다만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은, 그저 기술을 보여 주기 위한 작업이 되거나 관객이 이해할 수 없는 기술을 과시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거죠. 기술은 예술에 대한 접근성을 편하게 도와주는 도구가 되어야지, 자칫 주제와 멀어지며 주객전도가 되어서는 안 되니까요.”

전시의 메인 작품 <Park Park Revolution>은 비주얼 프로그래밍 언어인 터치디자이너(TouchDesigner)를 컨트롤타워로 영상, 음악, 센서가 연결되어 구현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관객이 참여하는 반응형 작품인 만큼, 발판 패드를 밟았을 때 무게를 감지하는 압력 센서의 선택과 연결은 가장 민감한 지점이었다. 작가는 실제 DDR 기계 센서를 포함해 이 작업에 맞는 여러 센서들의 테스트 과정을 수없이 거쳤다. 그렇게 결정된 최종 소재는 3D프린팅에 사용되는 TPU 필라멘트. 유연성과 탄성이 뛰어난 소재로, 오래 구우면 탄성이 살아나고 복원력이 좋아지는 특성을 지닌다.

“TPU가 스프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수차례 실패 끝에 3D 프린터로 적절한 형태를 제작했어요. 전시 기간 중 망가질 경우를 대비해 여분 센서도 스무 개 넘게 만들어 뒀죠. 아두이노(Arduino)를 활용해 PC와 프로그램을 연결하는 작업은 해당 분야 전문 작가님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전시장 주변을 둘러싼 목재 조형물 <Artificial Nature>는 디지털 기술과 상반되는 아날로그 감성이다.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친숙하면서도 낯선 인공의 요소를 부여하기 위해 각목으로 성남의 산자락을 조형적으로 표현하고, 공원에서 찍은 사진들을 단순한 모형으로 배치했다. 분해 후 부피가 줄어드는 조립식 목재를 사용해 지속 가능성 역시 잊지 않았다.

“설치 작품들은 전시 종료 후 보관이 어려워 폐기물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아무래도 마음이 무겁죠. 특히 자연과 공원을 이야기하면서 대량의 쓰레기를 배출한다면 그 역시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순환의 관점에서 재활용이 가능한 부분들은 최대한 반영하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구래연 작가에게 공원 프로젝트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공원이 우리에게 준 일상의 기억과 경험을 나누는 시간들, 작업을 통해 더 많이 알아 가고 더 많이 대화하는 과정 속에서 성남시는 그에게도 비로소 진정한 고향이 되었다. 행정상의 소속이 아닌, 동료 예술가와 이웃들, 주민들과의 교류 속에 ‘진짜 우리 동네’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공원 프로젝트를 계속할수록 도시 속 공원의 역할, 사람들과의 관계, 바라는 점 등 다양한 시각에서 깊이를 더해 가고 있다고 느껴요. 방법적으로도, 또 다른 시각에서도 아직 할 얘기가 많죠.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과 장소의 의미에 대해 앞으로도 조금 더 탐구를 이어 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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