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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 2] 마티네 콘서트 5월: 체코 음악의 뿌리를 찾아서


2024년 성남아트센터 마티네 콘서트의 주제는 ‘보헤미아’, 즉 체코 음악이다. 그중에서도 5월 공연인 ‘바로크를 빛낸 보헤미아 음악가들’은 체코 음악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시대악기 연주의 산 증인으로 오랫동안 활약해 온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 만프레도 크레머가 특별히 협연자로 합류,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과 함께 보헤미아 음악의 정수를 전한다.


이준형 음악 칼럼니스트



하인리히 이그나츠 프란츠 폰 비버, 1681년에 출판된 ‘8곡의 바이올린 소나타’에 실린 동판 초상화. Paul Seel 제작


보헤미아와 그 음악에 관해서 이야기하려면 먼저 그 독특한 정체성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1356년에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4세가 이른바 금인 칙서(Bulla Aurea)를 반포했을 때, 보헤미아 국왕은 일곱 명의 선제후(Princeps Elector)에 포함되었다. 보헤미아가 슬라브 기원과 혈통에도 불구하고 천 년 가까운 세월 동안 독일과 뗄 수 없는 관계였음을 보여 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이렇게 보헤미아는 독일과 민족과 언어는 달랐지만, 신성 로마 제국의 핵심적인 구성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14세기부터는 룩셈부르크 가문이, 16세기부터는 합스부르크 가문이 다스리면서 더욱 독일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합스부르크 제국에서 정치적으로 중요했던 보헤미아는 광범위한 자치권을 누렸고, 루돌프 2세(재위 1575-1611) 때에는 잠깐이지만 프라하가 신성 로마제국의 수도가 되기도 했다. 이런 독특한 정체성은 음악에도 흔적을 남겨서, 보헤미아 음악에는 향토적인 색채와 독일 음악의 영향이 공존하며 수많은 보헤미아 출신 음악가들이 독일어권 곳곳으로 진출해서 활약했다. 호른 등 금관 악기 연주자들은 특히 명성을 떨쳐서 전 유럽의 궁정 악단에서 보헤미아 출신 연주자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보헤미아는 신성 로마 제국의 음악적 젖줄이다’라는 말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바로크 시대, 보헤미아의 다채로운 음악

이번 마티네 콘서트에서는 바로크 시대에 보헤미아와 독일 각지에서 활동한 탁월한 작곡가들의 음악을 듣는다. 하인리히 이그나츠 프란츠 폰비버(1644~1704)는 당대 프라하와 더불어 보헤미아-모라비아 음악의 중심지였던 크로메르지시(Kroměřiž)를 거쳐 잘츠부르크에서 활동했다. 찰스버니가 18세기 최고의 바이올린 비르투오소로 꼽았던 비버는 20세기 들어 복잡한 더블 스토핑 기법과 스코르다투라(변칙 조율) 등 모험적인 기교와 놀랍도록 다양한 표현이 주목받으면서 힘차게 부활했다. 그리고 20세기 후반부터는 ‘르네상스’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연주자들이 비버 음악에 도전하고 있다.

10성부의 앙상블 소나타 <바탈리아>는 1673년 무렵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머스킷 소총수들의 방종한 흥청거림, 행진, 전투, 부상병들의 슬픔, 노래(Air)와 함께 묘사된 작품으로 바쿠스에게 바쳐짐’이라는 재미있는 부제와 함께 악장마다 작곡가 자신의 자세한 해설이 붙어 있다. <바탈리아>는 바로크 시대에 유행했던 일종의 표제 음악으로, 비버는 여기서 활 등으로 현을 두드리거나 종이를 현에 끼워 넣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떠들썩한 트럼펫과 북소리, 대포 소리를 흉내 낸다. ‘전쟁의 신 마르스’에서는 독주 바이올린이 드론 반주에 맞춰 화려한 독주를 들려주고 ‘술에 취한 병사들의 떠들썩한 모습’을 그린 중부 유럽의 다양한 민요 선율도 있다. 각각 1676년과 1683년에 출판된 <제대와 식탁을 위한 소나타>나 <종교적이고 세속적인 소나타> 역시 성속(聖俗)을 넘나드는 화려한 표현을 추구했던 바로크 예술의 이상을 보여 주는 인상적인 작품들이다.

크로메르지시 궁정에서 비버의 동료였던 필리프 야코프 리틀러(Philipp Jakob Rittler, 1637~1690)는 극히 최근에야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 음악가다. 크로메르지시의 궁정 도서관은 17~18세기 음악의 보고로 수많은 필사본 악보가 보존되어 있는데, 그중 한 곡이 1669년 무렵에 만들어진 <로마의 조화/화음(Harmonia Romana)>이다. 이 곡은 악보에 작곡가 이름이 없어서 오랫동안 파벨 요세프 베이바노프스키(Pavel Josef Vejvanovsky, c.1639~1693)나 비버의 작품으로 여겨졌지만, 최근 들어 리틀러의 작품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이 스트라델라(Alessandro Stradella)나 코렐리 등 이탈리아 작곡가들의 영향이 엿보이는 작품으로, 특히 매력적인 독주 바이올린은 바이올린 협주곡의 탄생을 예감케 한다.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


드레스덴을 빛낸 보석, 젤렌카

프라하에서 공부한 뒤 드레스덴 궁정에서 활동한 얀 디스마스 젤렌카(Jan Dismas Zelenka, 1679~1745)는 아마도 20세기 바로크 음악계 최고의 ‘신데렐라’가 아닐까 싶다. 18세기 초중반 드레스덴은 유럽 음악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1694년에 등극한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는 드레스덴을 화려한 바로크 도시로 개조했다. 그는 폴란드 국왕이 되기 위해서 가톨릭으로 개종했는데, 그 결과 양 종파가 공존하며 중부 유럽 최고의 음악가들이 드레스덴 궁정 악단에 모여 들었고 가톨릭을 믿는 보헤미아 음악가들도 대거 드레스덴에 진출했다. 이들 중 가장 중요한 음악가가 바로 얀 디스마스 젤렌카였는데, 프라하에서 공부한 그는 명인들로 가득한 작센 궁정 악단에서도 가장 뛰어난 작곡가였다.


바이올리니스트 만프레도 크레머 © tatianadaubek


드레스덴 궁정의 악보가 외부로 유출되지 못하면서 사후에 많이 잊혔지만, 20세기 중반 이후 점점 더 높은 평가와 인기를 얻고 있다. 그의 음악에 담긴 대담한 구조와 창의적인 화성, 엄격한 대위법은 친구였던 바흐와 비교할 만하다. 그의 작품은 교회 음악이 대부분이지만 소수의 기악곡도 빼놓을 수 없는데, <8개의 콘체르탄테 악기를 위한 콘체르토 G장조>는 작곡가가 카를 6세의 보헤미아 국왕 대관식에 참여하기 위해 프라하에 갔을 때 쓴 작품으로, 자필 악보 표지에 ‘1723년에 프라하에서a Praga 1723’라고 직접 적었다. 놀라운 활력과 창의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조르디 사발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온다

프라하 출신인 안토닌 레이헤나우에르(Antonin Reichenauer, c.1694~1730)는 5월 마티네 콘서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동시에 바로크 음악이 마무리되는 순간을 보여주는 보헤미아 작곡가다. 레이헤 나우에르는 비버를 비롯한 대부분의 보헤미아 음악가들이 그랬듯이 프라하에서 공부한 뒤 프라하의 성당에서 경력을 시작했고, 비발디가 <사계>를 헌정한 것으로 유명한 모리친 백작을 위해서 일했다. 평생 보헤미아를 벗어나지 않았고 30대 중반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음에도 그의 악보가 독일 각지에 보관된 것을 보면 널리 명성을 얻었던 것 같다. <모음곡 B♭장조>는 드레스덴 왕실(국립) 도서관에 보관된 곡으로, 다시 한번 18세기 프라하와 드레스덴의 밀접한 관계를 엿볼 수 있다. 편성은 크지 않지만 오보에와 바순이 눈부시게 활약하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이 들려줄 5월 마티네 콘서트에는 특별한 연주자 한 명이 함께한다. 바로 아르헨티나 출신의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만프레도 크레머(Manfredo Kraemer)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초빙 교수로 활동 중인 크레머는 시대악기 및 역사주의 연주의 산증인 중 한 명이다. 그는 바로크 바이올린의 선구자였던 프란츠요제프 마이어(Franzjosef Maier)에게서 배운 후 1986년부터 라인하르트 괴벨이 이끄는 무지카 안티콰 쾰른Musica Antiqua Koln에서 5년 동안 활동하며 경험을 쌓았고, 1990년대부터는 독주자로 활동하는 한편 윌리엄 크리스티, 마르크 민코프스키, 르네 야콥스 등 저명한 고음악 지휘자들과 함께 일하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의 음악가 경력에서 가장 중요한 이름은 아마 조르디 사발이 아닐까 싶다.

크레머는 1990년대 초반 사발이 이끄는 르 콩세르 데 나시옹(Le Concert des Nations)과 에스페리옹 20(HesperionⅩⅩ)에 합류한 이후 30여 년에 걸쳐 악장이자 리더로 활동했으며,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한 것도 2007년 ‘르콩세르’의 단원으로서였다. 1994년에 녹음한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에서 악장을 맡았던 그가 2019년에서 2021년에 걸쳐 만들어진 사발과 ‘르 콩세르’의 베토벤 교향곡 전곡 사이클에도 참여한 건 놀라운 일인데, 이번에는 젊은 후배인 야코프 레만(Jakob Lehmann)을 도와 부악장을 맡았다. 이 밖에도 여러 바로크 앙상블의 창립 멤버로 참여했고 1996년에는 ‘The Rare Fruits Council’이라는 재밌는 이름의 단체를 직접 창설했다. 레어 프루츠 카운실은 덜 알려졌지만 독특한 매력이 있는 바로크 작품을 집중적으로 소개해서 많은 찬사를 받았는데, 이번 마티네 콘서트는 그의 개성적이면서도 섬세한 연주를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마티네 콘서트 5월 | ‘바로크를 빛낸 보헤미아 음악가들’

일시 | 5월 16일(목) 오전 11시

장소 |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

문의 | 031-783-8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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