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토크] <바람의 노래> 창작진과의 대화: 암울한 시대에 더욱 빛나는 ‘동심’
- artviewzine
- 9월 28일
- 8분 분량
최종 수정일: 9월 30일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청량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이 가사는 작곡가 박태현의 동요 ‘산바람 강바람’의 첫 구절이다. 박태현 작곡가는 ‘코끼리 아저씨’ ‘누가 누가 잠자나’ ‘태극기’ 등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불러 보았을 친숙한 동요를 작곡한 인물이다. 그는 200여 편의 동요를 남겼을 뿐 아니라, ‘3.1절 노래’ ‘한글날 노래’ 등 애국심을 북돋우는 기념곡도 작곡했다. 둘째 형 박태은이 이완용 저격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다 순국한 일이 계기가 되어, 그는 애국심을 북돋우고 민족정신을 지키려는 활동에 힘써 왔다. 박태현의 동요는 우리말과 우리글을 지키고 조선의 어린이에게 민족정신을 심어 주기 위한 항일 운동의 일환이었다. 맑고 순수한 가사와 아름다운 선율의 동요가 암울한 시대에 많이 창작되고 널리 불린 것도 그 때문이다.
글 박병성 공연 칼럼니스트

작곡가 박태현의 노래를 모티프로 한 창작오페라 <바람의 노래>는 일제 강점기에 동요가 활발히 창작되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선생이 동요를 통해 민족의 정서와 감성을 전하려 했던 의도를 반영해, 작품은 개인의 전기를 단순히 재현하기보다 동화적 상상과 현실이 공존하는 이야기로 풀어 간다.
음악은 차세대 아티스트로 주목받고 있는 김주원이 맡았다. 그는 현대음악의 경계를 넘나들며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음악적 언어로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 온 작곡가로 특히 성악 작품 작곡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극작은 황정은 작가가 맡았다. 그는 글과 무대를 아우르는 창작자로서, 다양한 연극과 음악극에서 섬세한 문체와 동시대적 주제 의식을 담아내고 있다. 김주원과 황정은은 이미 창작오페라 <사막 속의 흰개미> <레테>를 통해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연출은 조은비가 담당한다. 수많은 정통 오페라와 창작오페라를 통해 현대적인 시각과 창의적인 해석을 보여 준 조은비는 이번 <바람의 노래>에서 자신의 장기를 한껏 발휘한다.
공연에 앞서 김주원 작곡가, 황정은 작가, 조은비 연출가에게서 창작오페라 <바람의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원곡 동요의 오마주와 창작곡의 조화
작곡가 김주원

제26회 이탈리아 발티도네 국제 콩쿠르 현대음악 작곡 부문 1위, 제57회 동아 음악 콩쿠르 서양음악 작곡 부문 1위, 제45회 중앙 음악 콩쿠르 작곡 부문 2위 등 국내외 유수의 콩쿠르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작곡가로 가곡과 합창, 창작오페라 분야에서 다채로운 작품 활동 중이다. 김해문화재단 창작오페라 <허왕후>, 대전 예술의전당 및 지역 대학 공동제작 오페라 <레테> 등에 참여했다.
대본을 처음 읽고 어떤 느낌을 받으셨습니까?
작가의 의도를 관객에게 온전히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왜 암울한 시대에 동요가 꽃피는가’라는 질문을 음악적으로 풀어내고자 했습니다. 창작오페라 <바람의 노래>는 전쟁고아 강바람의 일주일을 그린 작품으로, 작곡가 박태현 선생님의 노래를 소재로 하지만 단순히 인생을 나열하지 않고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어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대본을 보며 어떤 음악적 상상력이 떠올랐는지요.
대본의 메시지와 소재를 깊이 탐구했습니다. <바람의 노래>는 전쟁, 어린이, 동요라는 상반된 소재들이 얽혀 있어 음악적으로 형상화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장면을 옅게 혹은 짙게 스케치하듯 음악으로 그려 보았습니다. 그런 고민의 과정에서 주인공 강바람과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라이트모티프로 박태현 선생님의 동요 ‘산바람 강바람’의 선율을 떠올리게 됐고, 조성 음악을 기반으로 현대적 리듬과 화성을 더해 전개를 구상했습니다. 결국 음악적 상상력은 과거와 현재에 작곡가가 경험한 삶의 궤적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본의 상황에 맞는 화성과 형식을 찾는 과정 자체가 곧 작곡가의 경험에 기반한 상상의 과정이었습니다.
동요를 모티프로 하는 작품이라 기존의 오페라 작업과는 많이 달랐을 것 같은데요.
이번 작품의 가장 큰 차별점은 창작오페라이면서도 기존의 곡을 활용한다는 점입니다. 박태현 선생님의 노래가 모티프이지만 선생님이 등장하시지 않고 생애를 조명하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기존 오페라와 다른 서사적 특징을 가집니다. 잘 알려진 곡뿐 아니라 덜 알려진 곡까지 조명한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습니다. 이전 작업에서는 작품의 음악을 제가 전부 새로 작곡해야 했다면, 이번 작품은 유명한 곡을 활용하다 보니 작곡을 시작하기 전에는 창작의 무게를 조금은 덜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작업에 들어가니 이미 존재하는 곡을 어떻게 새롭게 표현할지 오히려 더 많은 고민과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동요를 오페라에 사용하는 데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나요?
형식적인 면에서 동요는 짧고 반복적이어서 자칫 지루해질 수 있습니다. 박태현 선생님의 원곡을 크게 변형할 수 없었기에 최대한 원형을 유지하면서 리듬과 화성을 달리해 변화를 주었습니다. 또 하나의 과제는 동요가 본질적으로 ‘어린이의 노래’라는 점이었습니다.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성남시립소년소녀합창단을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갔습니다.
기존의 동요와 새롭게 창작하는 음악을 함께 사용합니다. 두 음악이 어떻게 만나기를 바라셨나요?
이 작품의 중심은 박태현 선생님의 동요이지만, 무대가 단순히 그분의 곡만으로 채워지지 않도록 제 음악적 언어를 어떻게 드러낼지 고민했습니다. 대본 전반에 걸쳐 선생님의 노래를 자연스럽게 배치하면서 동요풍 가사는 동요적인 선율로, 그 외의 장면은 제 음악적 언어로 표현했습니다. 또한 제가 쓴 곡들이 선생님의 음악을 오마주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제 색채를 드러내길 바랐습니다.
연극적 대사가 많은 대본입니다. 대사의 리듬을 음악적으로 풀어내는 레치타티보를 어떻게 표현하실지 궁금합니다.
제 오페라 작곡 철학은 모든 대사에 반주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음악 없는 대사는 연극적 요소가 강해져 자칫 뮤지컬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노래와 레치타티보를 세코(secco, 반주가 단순한 레치타티보)와 아콤파냐토(accompagnato, 오케스트라 반주가 붙은 레치타티보)로 명확하게 구분해 쓰려고 했으나, 작업 과정에서 경계를 허물고 음악적 흐름 속에 통합된 형태로 많이 작곡했습니다. 같은 음을 반복해 말하는 듯한 효과를 주었고, 일부 레치타티보는 박태현 선생님의 동요 반주를 활용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습니다.
작품 속에 바람, 귀뚜라미, 늑대 등 의인화된 캐릭터가 많이 등장합니다. 이러한 캐릭터를 음악적으로 어떻게 담아내려 하셨나요?
각 캐릭터의 특징을 최대한 살리려 했습니다. 예를 들어 바람은 도약하는 선율로, 귀뚜라미는 서로 다른 두 종의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채보해 활용했고 늑대는 남성 합창, 새는 여성 합창으로 각각의 이미지를 드러냈습니다.
황정은 작가와는 이번이 세 번째 작업입니다. 앞선 두 작품과 비교해 이번 협업 과정은 어땠나요?
앞선 두 작품보다 시간적 여유는 부족했지만, 그만큼 대본의 전개와 메시지에 대해 더 자주 질문하고 소통하며 작업했습니다. 오페라 작업은 작가와 작곡가 모두에게 큰 용기를 요구합니다. 세 작품을 원활히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협업이 잘 이루어졌다는 증거겠지요. 작곡가의 입장을 세심히 배려하며 완성도 높은 대본을 써 주셨기에 이번 작품 역시 무리 없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쟁 속에 울려 퍼진 아이들의 노래
작가 황정은

2018년 서울시극단 정기 공연 창작 대본 공모에 <사막 속의 흰개미>가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연극 <애인> <죽음들> <노스체> <베드타운>, 오페라 <사막 속의 흰개미> <레테> 등의 대본을 썼다. 각색한 작품으로는 연극 <햄릿> <바닷마을 다이어리> 등이 있다.
작곡가 박태현의 음악을 모티프로 한 오페라의 주인공으로 전쟁고아 ‘강바람’을 설정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박태현 선생님의 삶과 동요를 연구하던 중, 그분의 생애가 두 시대를 관통하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1907년에 태어나 1993년에 생을 마친 선생님은 청년기와 중년 초기에는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광복된 대한민국에서 살았던 인물이셨지요. 그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점은 첫 동요집이 1937년 출간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이 극심하던 시기에 ‘동요’라는 장르로 목소리를 냈던 것이지요. 자료를 살펴보니 아이러니하게도 동요가 가장 활발히 불린 시기는 일제 강점기였고, 더 나아가 동요와 전쟁의 상관관계는 학계에서도 중요한 연구 주제로 다뤄지고 있었습니다. 가장 순수한 시절을 상징하는 노래가 전쟁 때 더욱 활발하게 울려 퍼졌다는 사실은 놀라움과 씁쓸함을 동시에 안겨 주었습니다. 결국 우리를 지켜 내는 힘은 마음속 ‘동심’이며 누구나 품고 있는 자기만의 ‘동요’가 아닐까 하는 생 각에서, 전쟁고아 ‘강바람’을 주인공으로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이번 작품은 박태현 선생의 동요를 넘버로 사용합니다. 선곡의 기준은 무엇이었고, 그 노래가 극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길 바라셨나요?
이번 작품에서 선정한 곡들은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으면서도 극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 주는 동요들입니다. 오페라 속에 박태현 선생님의 동요를 사용함으로써, 어렵고 힘든 시기에도 강바람이 동심을 지켜 내며 성장했음이 드러나길 바랐습니다. 극 중 강바람이 부르는 모든 노래는 부모가 불러 주던 노래였을 것입니다. 동요가 힘든 시기에 우리를 어떻게 지켜 주었는지, 나아가 동심이 현재를 버텨 내는 힘이 된다는 의미에 가닿기를 바랐습니다.
우화적인 내용이지만 그 바탕에는 어두운 현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이 무대에서 어떻게 보이기를 바라시나요?
어두운 현실을 반영하되, 그것이 극 전체의 분위기를 지배하길 바라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속에서도 강바람의 동심과 반짝이는 시선, 그리고 아이다운 순간들이 자신만의 빛을 밝히며 드러나길 원했지요. 어두운 현실은 단지 이 작품의 배경으로만 자리하길 바랐습니다.
작품에 동물이나 바람이 캐릭터로 등장하는 등 판타지와 현실이 섞여 있습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어떻게 설정했으며, 이것이 어떻게 드러나길 바라셨나요?
이 작품에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하기는 어렵습니다. 작품 밖에서 보면 모든 것이 환상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강바람에게는 그 모든 것이 곧 현실이기도 합니다. 저는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는 그 모호한 지점이 강바람의 친구 달이의 존재, 강바람을 지켜 주고 또 강바람이 지켜 주고자 했던 동물들, 나아가 그 주변 공기를 관장하는 바람의 모습 속에 드러나길 바랐습니다.
작곡가 김주원과는 이번이 세 번째 작업입니다. 앞선 두 작품과 비교해 <바람의 노래>에서 극작과 음악의 협업은 어떠셨나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김주원 작곡가와는 이미 두 작품을 함께한 경험 덕분에 이번 작업에서는 한층 더 안심하고 임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바람의 노래>가 워낙 빠르게 진행되는 프로젝트이다 보니, 호흡을 맞춰 본 동료와 함께한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실제 소통과 협업 과정에서도 큰 힘이 되었고, 그 힘을 체감하는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김주원 작곡가가 이번 작업에 함께하기로 결정되었을 때입니다. 또다시 함께 작업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작가님은 연극 작업이 주이지만 오페라나 음악극 작업도 꾸준히 해 오셨습니다. 연극과 오페라의 글쓰기는 무대에 대한 상상력에서 어떤 차이가 있나요?
이야기를 쓴다는 점에서 연극과 오페라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오페라는 음악과 함께하는 장르이기에 작가에게 더 많은 상상과 고민을 요구합니다. 연극을 쓸 때에는 여러 요소 중에서 도 특히 템포와 속도감을 중시합니다. 반면 오페라를 쓸 때에는 음악이 무대의 공기를 어떻게 감싸고 분위기를 형성하는지 떠올리게 되죠. 그런 상상들이 자연스럽게 작용하면서 이야기의 구상으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작품을 본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면 가장 행복할 것 같으신가요?
관객들이 각자의 마음속 깊이 잠들어 있던 동요, 곧 동심을 잠시라도 꺼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이 작품에서 말하는 동요와 동심은 결국 오랫동안 자신 안에 간직해 온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야기가 우리를 어떻게 지켜 주었는지, 또 어떻게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 존재하게 했는지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동요와 전쟁, 순수와 폭력의 공존
연출가 조은비

한국과 미국의 주요 오페라 무대에서 활동하며 현대적 시각과 창의적 해석으로 오페라 무대를 새롭게 조명하는 연출가다. 플로리다 주립 대학교에서 동양인 최초로 오페라 연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미국 버지니아 오페라, 신시내티 오페라, 플로리다 주립 오페라, 피츠버그 페스티벌 오페라와 한국의 국립오페라단, 예술의전당, 서울시오페라단 등에서 연출 및 연출부 경력을 쌓았다. 현재 ‘오페라를보는새로운시선’의 상주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다.
정통 오페라뿐 아니라 창작오페라 작업도 많이 하셨습니다. 창작오페라 작업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창작오페라의 가장 큰 매력은 극본과 음악이 쓰이는 순간부터 함께 호흡하며 창조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정통 오페라는 대개 작곡가와 극작가가 이미 세상을 떠난 경우가 많아 작품의 의도를 직접 물을 수 없고, 논문이나 편지같은 남겨진 자료로 추측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창작오페라는 창작자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조율하며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서로의 상상력과 감각이 교차하며 확장되는 순간을 무대에서 구현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창작오페라만의 특별한 매력입니다.
<바람의 노래>는 이전의 작업들과 비교할 때, 어떤 점이 특히 도전적이었나요?
이번 작업은 성남이라는 지역의 문화적 맥락과 박태현 작곡가의 동요를 기억하고 기리는 목적이 더해졌습니다.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기억과 상상, 감정의 건축에 가까운 작업이었지요. 종이 위에 점 하나를 찍는 일에서 시작해 선을 잇고 구조를 세우고 무너뜨리며 다시 쌓아 가는 창조와 순환을 반복했습니다. 특히 실존 인물의 삶을 위인전처럼 고증하지 않고 작곡가가 남긴 동요의 선율과 가사, 정서와 풍경을 통해 그 삶을 환기하고 관객의 상상 속에서 되살리려 했다는 점이 도전적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극을 작곡가 박태현이 남긴 동요의 숨결로 특별하게 만들 수 있을지 끊임없이 탐색하고 고민했습니다.
작품에서 중요하다고 여기시는 장면이 있나요? 그 장면을 어떻게 표현하고 싶으셨는지요?
모든 장면이 중요하지만, 특히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은 현실과 환상이 공존하는 세계를 구현하는 것입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 ‘강바람’의 참혹한 현실과, 그가 꿈꾸는 환상이 경계 없이 이어지도록 하고자 합니다. 현실인지 환상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지점에서 나타나는 늑대개의 습격 장면을 전쟁 상황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 시각적으로도 깊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동요와 전쟁’ ‘순수와 폭력’ 같은 상반된 정서를 한 무대에서 어떻게 공존시킬지 궁금합니다.
황정은 작가의 집필 의도에서 언급되었듯, 전쟁 중 어린이들에게 동요는 단순히 귀엽고 해맑은 노래가 아니라 참혹한 현실 속에서 동심을 지켜주는 방패이자 생존의 노래였습니다. 작품 속 동요는 단순한 회상이나 장식이 아니라, 현실의 폭력과 순수가 충돌하며 공존하는 지점에 배치됩니다. 무대 위에서는 전쟁의 어둡고 적막한 현실과 아이의 내면이 만들어 낸 환상의 세계, 즉 바람과 새, 동물 친구들이 등장하는 장면이 겹겹이 펼쳐집니다. 이를 통해 관객은 전쟁과 동심이라는 모순된 감정을 동시에 경험하며, 한 아이가 어떻게 노래로 엄혹한 현실을 견뎌 왔는지를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될 것입니다.
박태현 선생님의 동요가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하길 바라시나요?
이 작품에서 박태현 선생님의 동요는 단순한 배경 음악이 아니라, 전쟁 속 아이들의 감정과 마음을 담은 ‘목소리’로 작용합니다.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며 자연을 느끼고 그리운 사람을 기다립니다. 동요는 그 시절 어린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던 시선과 마음의 언어를 전해 주며, 관객이 그들의 삶을 상상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동시에 우리가 잊고 있었던 동요의 참된 가치를 다시금 되새기게 할 것입니다.
<바람의 노래>는 대극장에서 공연될 예정인데요, 어떤 무대를 상상하고 계신가요?
유다미 무대 디자이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리얼리즘과 시적 상징이 교차하는 무대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마을과 아이의 내면 공간이 동시에 표현되는 입체적이고 다층적 무대를 담아내려 합니다. 아이의 내면 또는 환상 속의 동물과 바람의 형상, 바람을 느낄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들, 예컨대 동물 사체 속에서 동물들이 살아나는 장면 등을 표현하기 위해 무대, 의상, 특수 효과를 두루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가장 기대되거나 두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가장 기대되는 점은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완전히 새로운 창작오페라를 올린다는 사실입니다. 오페라는 가장 복합적인 예술 장르이자 협업의 예술입니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만나 생각과 감정을 나누고, 음악과 무대와 연출적 요소가 어우러져 감동적인 장면을 완성하는 과정 자체가 큰 설렘입니다. 동시에 이러한 협업이 가장 두려운 지점이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배경과 감각을 지닌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대화와 조율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함께 해법을 찾는 과정 역시 오페라 작업의 본질이라 생각합니다. 황정은 작가, 김주원 작곡가 그리고 앞으로 함께할 김덕기 지휘자, 성악가, 배우, 성남시립합창단과 성남시립교향악단, 성남시립소년소녀합창단까지 좋은 에너지가 한데 모여 아름다운 작품이 완성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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