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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2] 기타리스트 박규희: 마음을 흔드는 손끝의 트레몰로

  • 작성자 사진: artviewzine
    artviewzine
  • 18시간 전
  • 3분 분량

기타는 대중적인 악기이지만, 의외로 클래식 공연장 무대에서는 쉽게 만나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정작 클래식 기타 작품들은 ‘어디서 들어 본 노래’임에도 작곡가나 곡명은 잘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익숙하지만 낯선, 이 미묘한 매력의 지점에 닿아 있는 클래식 기타의 존재감을 근래 한층 더 증폭시킨 이가 있으니, 바로 기타리스트 박규희다. 작고 해사한 웃음 뒤에 국제 클래식 기타계를 장악한 실력이 숨어 있어, 그 사실을 알면서도 들을 때마다 ‘반전 매력’에 영락없이 마음을 빼앗기게 되는 연주자. 그가 올해의 마지막 날 열리는 <성남아트센터 제야음악회> 무대에서 연주할 대중 친화적 두 작품에 대해 직접 들려준다.


허서현 월간 <객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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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 Chang

 

우선, ‘클래식 기타’와 ‘통기타’의 차이를 짚고 넘어가 볼까요. 두 악기는 어떻게 다른가요?

가장 큰 차이는 줄의 종류와 그로 인한 소리의 성격입니다. 클래식 기타는 나일론 줄을 사용해 부드럽고 풍부한 배음을 만들어 내는 반면, 통기타(어쿠스틱 기타)는 금속 줄을 사용해 밝고 강한 소리를 냅니다. 그래서 클래식 기타를 감상하실 땐 손가락으로 직접 울리며 내는 섬세한 음과 배음의 여운, 소리의 결을 느끼는 데 집중하는 걸 추천해 드려요.


현재 사용 중인 악기는 빈(Wien) 시절부터 쓰던 악기인가요?

네, 2009년에 명기 제작자 다니엘 프리드리히가 만든 악기입니다. 특히 배음이 커서 울림이 굉장히 풍부하죠. 빈 유학 시절, 제 스승이신 알바로 피에리 교수님께서 저를 위해 직접 부탁해 제작해 주신 아주 특별한 악기예요. 이런 특별한 기타를 가진 것은 제 음악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 중 하나입니다.


여러 나라에서 기타를 배웠습니다. 한국의 예원학교, 도쿄 음악대학, 빈 국립음악대학, 그리고 스페인 알리칸테 음악원 기타 마스터 과정까지, 각각 무엇을 배웠다고 느끼시나요?

한국과 일본에선 기본기와 정확함, 세밀함을 중요하게 배웠습니다. 빈에서는 기타를 넘어 ‘음악’ 그 자체에 대한 이해와 표현을 중시했죠. 스페인에선 기타 고유의 매력과 정서를 자연스럽게 살리는 데에 초점을 두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환경에서 받은 교육은 지금도 제 연주에 큰 영향을 주고 있어요.


두 스페인 작곡가의 명작

이번에 연주할 아랑훼즈 협주곡은 TV 영화 프로그램 <토요명화>의 오프닝 곡으로 사용될 만큼 익숙한 작품이지만, ‘기타’와 ‘오케스트라’의 협연은 쉽지 않은 도전이기도 하지요.

기타의 매력이 가장 아름답게 드러나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기타 소리에 가장 잘 어울리는 스페인의 정서가 묻어 있어 더 사랑받는 것 같고요. 다만, 오케스트라와 음량과 균형을 맞추는 부분이 늘 큰 과제입니다. 그래서 리허설 과정에서 오케스트라와 이를 섬세하게 맞춥니다. 마이크를 사용하긴 하지만, 최대한 악기 그 자체의 소리처럼 자연스럽게 들리게 하는 데에 가장 많이 신경을 써요.


타레가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역시 매우 익숙한 선율입니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서 트레몰로(한 음을 빠르게 반복하는 주법)는 마치 분수에서 뿜어 나오는 물줄기가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모습을 그리듯, 섬세한 장면을 소리로 표현합니다. 기타라는 악기로 음악 속 수많은 풍경과 감정을 담아낼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죠. 타레가는 당시까지 시도되지 않았던 다양한 주법을 탐구하며 기타의 표현 스펙트럼을 크게 확장한 인물입니다. 그 덕분에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 클래식 기타의 기초가 마련됐죠.


두 작곡가 모두 스페인 출신입니다. 기타와 스페인은 왜 이렇게 깊은 관련이 있을까요?

스페인은 오래전부터 기타가 생활과 문화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던 곳입니다. ‘국민악기’ 같은 존재랄까요? 플라멩코와 함께 기타 문화가 깊게 자리 잡다 보니 자연스럽게 훌륭한 작곡가와 연주자가 다수 탄생했고, 그렇게 오늘날의 기타 음악의 중심지 ‘스페인’이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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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로 마음의 풍경을 건너다

오늘날 ‘클래식 기타’의 대표적 연주자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출중한 실력, 벨기에 프렝탕 콩쿠르 최초의 아시아·여성 우승 등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는 연주자로서 고민하는 지점이 있다면요?

여러 조건과 시기가 잘 맞아떨어져 지금의 관심을 받는 것 같아요. 기존에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던 분들이 기타를 접하며 플레이리스트를 확장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더 많은 분이 기타를 접하고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무대에서 좋은 연주를 많이 선보이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노력은 결국 첫째도, 둘째도, 그다음도 연습뿐이에요.


이 정도면 음악가의 진짜 명칭은 ‘연습가’가 아닐까 싶네요. 그 긴 시간을 인내하면서 기타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처음 기타를 시작한 건 어머니 덕분이었어요. 기타를 취미로 배우셨는데, 저도 자연스럽게 함께 시작하게 된 거죠. 기타의 가장 큰 매력은 소리인 것 같아요. 다정하고 소박한. 작은 울림에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따뜻해지죠.


기타를 통해 궁극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지점은요?

기타로 모든 것을 표현해 보고 싶어요. 인간의 희로애락 같은 감정, 해탈이나 허전함 같은 내면의 다양성은 물론이고 풍경, 색, 빛 같은 시각적인 이미지까지도요. ‘기타 한 대로 이 모든 것들이 표현된다’라는 순간을 듣는 이들이 마음으로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하는 공연들이 다가옵니다. 올해는 본인에게 어떤 시간이었나요?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올해는 제게 특별했습니다. 데뷔 15주년을 맞았거든요. 한국과 일본에서 기념 공연을 열며 처음 연주 활동을 시작했을 때의 마음을 다시 떠올린 한 해였습니다. 연주 여행이 많아 새로운 무대와 관객을 만났고요. 특히 베트남 하노이 공연이 기억나요. 저를 오랫동안 만나고 싶어 했던 기타 유망주들을 직접 만날 수 있었거든요. 이 값진 한 해를 음악으로 마무리하며, 관객들도 각자의 소중한 순간을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몽글몽글한 추억과 함께 따뜻한 감정이 마음에 오래 머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타레가는 스페인 그라나다의 붉은 성 알함브라를 보고 아련한 선율을 담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작곡했다. 14세기부터 그 자리를 지킨 궁전을 바라보며 그가 떠올린 것이 궁전의 유구한 역사 속 서글픈 사연이었는지, 이루지 못한 애달픈 사랑의 감정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기타의 트레몰로 소리는 분주함으로 날 선 마음을 녹이고, 멋진 풍경을 보고 선 타레가의 시간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심금에 완벽히 스며드는 박규희의 연주로 그 낭만적 정취에 젖어 든다면, 이보다 더 풍성한 연말의 순간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12월 31일(수) 오후 10시, <성남아트센터 제야음악회>에서 박규희의 연주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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