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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텔레만의 사색, 카로두스의 자유그리고 지금의 음악

  • 작성자 사진: artviewzine
    artviewzine
  • 18시간 전
  • 3분 분량

음악가들에게는 온 세상 모든 것들이 음악적 영감이 된다.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의 2025년은 음악적 영감으로 가득찬 한 해였다. 그는 올해 30대가 되었고, 스트레턴 소사이어티(Stretton Society)로 부터 과르네리 델 제수 ‘카로두스’를 대여받아 연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파가니니(2015)와 시벨리우스(2022) 두 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본격적인 커리어를 쌓으며 연주자로서 자신의 삶에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아 가는 시간이었다. 그 끝에 양인모가 선택한 음악은 바로 바로크 시대 작곡가 텔레만의 무반주 환상곡이다. 오는 12월 성남아트센터 무대에 오를 그와 이메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소연 월간 <스트라드> 수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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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no Park

 

30대에 접어든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가 새악기를 손에 쥐었다. 그가 사용하기 시작한 악기는 1743년산 과르네리 델 제수 ‘카로두스(Carrodus)’다. 이 악기는 약 2천만 달러(약 280억 원)의 가치를 지닌, 세상에서 가장 비싼 바이올린으로 꼽힌다. 또한 역사적으로 니콜로 파가니니가 소유했던 악기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파가니니 콩쿠르 우승자가 파가니니의 악기를 손에 쥐었다. 이는 그 자체로 화제가 되었으며, 자연스럽게 ‘인모니니’라는 그의 정체성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그가 이 악기로 선택한 첫 무반주 리사이틀의 레퍼토리는 텔레만 12개 환상곡 전곡이다. 바로크 시대 작곡가인 게오르크 필리프 텔레만(Georg Philipp Telemann, 1681~1767)은 기네스에 오를 정도로 다작(多作)한 작곡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독일 태생이지만 이탈리아, 프랑스 등 다양한 나라의 음악 양식을 습득해 융합하고, 바로크와 고전 시대를 잇는 양식을 선보이며 당대에는 바흐보다 더 잘 알려진 작곡가였다. 텔레만 환상곡은 1735년 출판된 작품으로, 외적인 기교보다는 바로크 음악의 다성적 구조와 내면적 대화에 집중하는 사색적인 곡이다. 사실 이 환상곡 12개는 무반주 바이올린 레퍼토리의 주류에서 벗어나 있다. 대부분의 연주자가 무반주 작품으로 바흐, 이자이, 파가니니를 선택하는 것과는 다른 행보로, 양인모는 과감히 30대를 열었다.

‘인모니니’ 또는 ‘인벨리우스’라는 과거의 정체성, ‘카로두스’라는 악기의 상징성, 그리고 ‘텔레만’이라는 레퍼토리는 30세 양인모의 현재를 보여 주기에 충분하다. 지금의 그는 콩쿠르 우승자라는 타이틀을 넘어, 자신만의 레퍼토리를 구축하는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과정의 한가운데에 있다.


무반주 리사이틀은 바이올리니스트에게 큰 도전입니다. 연주자들이 통상적으로 많이 도전하는 바흐나 이자이 무반주 전곡 연주가 아니라 텔레만 환상곡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요?

바흐와 이자이는 어렸을 때부터 알고 연주해 왔지만, 텔레만 환상곡은 올해 초 처음 악보를 접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이전의 습관과 취향에 얽매이지 않은 지금의 제 나름대로의 해석을 해 보고 싶었습니다.


바흐나 파가니니 무반주 작품들과 비교해서 텔레만 환상곡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연주자로서 이 곡을 해석하는 즐거움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합니다.

12개의 환상곡 속에 담긴 텔레만 고유의 성격을 찾는 과정이 재밌었습니다. 옛것과 새것을 과감히 섞고, 국경을 넘나들며 양식을 자유롭게 다루는 그의 음악적 언어에서 다른 바로크 작곡가와 구별되는 신선함을 느꼈죠. 이번 연주를 통해 텔레만이 단순히 바로크와 고전을 잇는 과도기적 작곡가가 아니라 독창적이고 생명력 있는 아이디어를 가진 음악가임을 보여 주고 싶습니다.


텔레만은 왜 이 작품에 ‘환상곡’이라고 제목을 붙였을까요? 단순히 형식에서 탈피하려고 했을까요?

아마도 텔레만은 1730년대 여러 독주 악기를 위해 쓴 환상곡들을 통해, 바로크를 상징하던 웅장한 대위법과 당시의 현대적이고 우아한 갈란트 형식을 융합하고자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의 선율 악기로 단순함과 복잡함을 함께 나타내고자 한 것이 ‘환상’이라는 개념과 맞닿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텔레만의 12개 환상곡은 각각 다른 매력을 가진 12개의 이야기 같습니다. 이 12곡 중에서 자신과 가장 닮았다고 느끼거나, 연주하면서 가장 마음이 가는 곡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가 봤을 때 작곡가는 6번 환상곡에 가장 많은 정성을 쏟은 것 같습니다. 다른 환상곡보다 더 견고한 형식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굉장히 섬세하고 연약한 캐릭터가 느껴집니다. 12곡 중 ‘심장’에 해당하는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크 음악을 연주할 때, 바로크 활이나 양의 창자를 꼬아 만든 거트현을 사용하는 등 옛 시대의 연주 방식을 따르려는 시도들이 많습니다.

시대연주를 재현하는 것이 이번 연주의 핵심은 아닙니다.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도구와 작품을 둘러싼 관점들을 종합해 오늘날 우리에게 더 유용하고 공감되는 접근을 하려고 합니다.


최근 1743년에 제작된 과르네리 델 제수 ‘카로두스’로 연주하게 됐습니다. 이 악기는 어떤 목소리를 가졌나요? 또 다른 명기인 스트라디바리우스와 비교해서 설명해 주세요(그는 익명의 후원자로부터 대여받아 1718년에 제작된 스트라디바리우스 ‘보스토니안’으로도 연주한 경험이 있다).

스트라디바리우스가 고운 모래밭을 걷는 느낌이라면 과르네리 델 제수가 만든 카로두스는 표면이 울퉁불퉁한 자갈밭을 걷는 느낌입니다. 스트라디바리우스가 파인 다이닝이라면 제 악기는 (아주 맛있는) 길거리 음식에 더 가깝습니다. 균형보다 대비를, 아름다움보다 자유를 추구하는 악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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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no Park


카로두스와 텔레만의 환상곡은 잘 어울리는 조합인가요? 과르네리 델 제수의 악기로 이 섬세한 바로크 음악을 연주하면서 발견한 재미있는 점이 있는지, 혹은 악기가 이 작품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궁금합니다.

악기의 음량 폭이 넓어서 색깔을 만들기가 편하고, 낮은 현과 높은 현의 음색 차이가 뚜렷해서 여러 성부를 구분해야 하는 푸가 악장을 연주할 때 도움이 됩니다. 섬세한 바로크 음악에 입체감을 더해 주는 악기라고 생각합니다.


오케스트라 협연과 달리, 무반주 리사이틀은 연주자 혼자 모든 것을 채워 나가야 합니다. 이 무대를 통해 관객들이 어떤 소리 혹은 경험을 가져가길 바라시나요?

올해 초부터 매일 텔레만으로 연습을 시작하면서 무엇보다도 깊은 평온함을 느꼈습니다. 불확실하고 불안한 세상의 통주저음을 잠시 잊고 자신만의 멜로디로 삶의 템포를 찾아보는 이 여정의 끝에서 많은 분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길 바랍니다.


이번 리사이틀 주제는 환상곡(Fantasia)입니다. 콩쿠르에 도전하며 치열하게 보낸 20대 때 상상한 30대 양인모의 모습은 어떠했나요? 그리고 지금, 그 환상과 얼마나 가까이 있나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치열한 점은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치열해야 하는 이유가 달라졌을 뿐이죠. 예전에는 기회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면, 지금은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제는 그토록 원하던 기회들로부터 저의 음악을 보호하는 것이 중요해졌습니다. 기회가 많아질수록 시간을 다루는 음악이 도리어 시간에 쫓기게 되고, 그렇게 다급해진 음악은 힘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음악의 본질을 지켜 낼 순수한 열정을 항상 잊지 않으려 합니다.


이번 텔레만 프로젝트가 30대의 예술 세계를 여는 중요한 무대 같습니다. 30대의 양인모는 어떤 아티스트로 기억되길 바라며 나아가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계속 변하는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통찰력을 기르고 그것이 저의 음악과 끊임없이 대화하도록, 깨어 있는 음악가로 남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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