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디자인] 동독 디자인 유산을 찾아서: 베를린에서 만나는 동독 디자인
- artviewzine
- 4월 15일
- 6분 분량
최종 수정일: 4월 16일
디자인의 사회적 역할에 관한 이야기를 종종 접하게 된다. ‘제3세계를 위한 디자인’ ‘약자를 위한 디자인’은 익숙해졌고 최근에는 여기에 한술 더 떠서 ‘모두를 위한 디자인’ ‘포용적 디자인’ 따위의 온갖 도덕적인 수식어가 붙은 디자인 용어가 등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판매와 이윤을 위한 디자인, 성공을 위한 디자인이 주를 이룬다.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누구라도 이 점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shutterstock
한편으로 디자인의 사회적 역할이 가장 우선시되는 사회가 ‘있었다’. 바로 동독(DDR, Deutsche Demokratische Republik)이 그러했다. 지구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곳의 이름이니 과거형을 쓸 수밖에 없다. 체제가 다른 나라에 대한 선입견과 독일 디자인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기능에 충실하고 엄격한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어떻게 그리 단정할 수 있느냐고? 동독 시절에 탄생한 디자인의 일부가 21세기 베를린의 일상 속에 자연스레 녹아 있기 때문이다. 베를린을 방문해 본 사람이거나 아직 가 보지 않았더라도 이런저런 매체에서 베를린의 이미지를 보았다면 놀랍게도 당신은 이미 동독의 디자인을 알고 있다.

베를린 시내의 두 가지 보행자 신호. 좌측은 동독에서, 우측은 서독에서 사용해 온 것이다
모자를 쓴 남자
한 도시를 상징하는 기념품은 대체로 기념비적인 건축물이나 전통적인 복장 정도다. 그런데 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통 신호등이라니. 베를린 시내의 기념품 판매장에는 암펠만(Ampelmann)이 빠지지 않고 심지어 암펠만 기념품만 파는 가게들도 제법 있다. 모자를 쓴 통통한 남자가 활기차게 걷는 모습은 마네킹처럼 딱딱한 자세를 갖춘 다른 도시들의 신호등과는 확실히 달라 보인다.
『베를린이 역사를 기억하는 법』에서 저자 장남주는 암펠만의 탄생과 경과를 잘 설명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1961년 동독의 교통 심리학자 카를 페글라우(Karl Peglau)가 보행자의 주의와 안전을 높이기 위해 이 캐릭터를 개발했고 원래 디자인은 오른쪽 방향으로 걷는 모습에다 모자를 쓰지도 않았다고 한다. 동독에서는 모자가 자본주의를 상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독의 호네커 서기장이 모자를 쓴 모습이 텔레비전에 비친 뒤에 인식이 바뀌었다고 한다. 이울러 동독의 이념 방향에 맞추어 왼쪽으로 걷는 모습으로 방향을 틀어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암펠만은 1970년부터 공식적인 보행자 신호등으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동독 어느 곳에서든 볼 수 있는 친근한 신호등이 되었다. 그런데 통일이 되고 난 뒤에는 서독의 보행 신호등으로 교체되기 시작했다. 한 도시의 보행 신호 체계가 통일되는 것이 당연할 것 같았으나,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친 결과 1997년에는 교통법규에서 공식적인 지위를 부여받았다.
서독 출신 디자이너 헤크하우젠(Markus Heckhausen)은 학창 시절 동독을 방문하여 암펠만을 인상 깊게 보았고 폐기처분 직전의 암펠만 신호등을 모아서 벽걸이 전등을 만들기 시작했다. ‘암펠만 유한회사’를 설립해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기도 했으니 오늘날 우리가 암펠만을 친근하게 만날 수 있게 된 데에는 그의 노력도 한몫했으리라.


©shutterstock
동쪽만 달리는 노면 전차
독일이 다시 통일된 지 30년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지역을 구분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쉬운 것은 트램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내 주변에 트램이 다니고 있다면 옛 동베를린 지역이 확실하다. 베를린에서는 1865년부터 트램이 운행되었으니 전 세계 어느 도시보다 노면 전차가 먼저 달리기 시작했다. 원래는 베를린 전역에 트램이 존재했으나 동서독으로 나뉜 뒤부터 서베를린 지역은 철로를 걷어 내어 버스 중심의 대중교통 체계를 구축했다. 옛 동베를린 지역은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트램 노선을 유지해 온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타인의 삶>의 독일 포스터
관광객들이 가장 붐비는 중심부인 미테(Mitte)에도 트램이 지나지만 신형 트램이라서 개인적으로는 별다른 느낌이 없다. 동쪽으로 깊이 더 들어가야 오래된 트램을 만날 수 있다. 각진 모양에 계단과 접이식 출입문은 기계식 미학을 잘 보여 준다. 그 트램이 다니는 곳에 서 있으면 <타인의 삶(Das Leben der Anderen)>(2007)을 비롯하여 동베를린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장면이 하나둘 떠오른다.
장벽을 사이에 두고 한 도시에 서로 다른 사상과 체계 그리고 그에 따른 삶의 양식들이 존재했던 시기의 이미지들. 통독 후, 동독 사회 체계의 흔적임에도 버스 중심 체계로 교체되지 않은 것은 어쩌면 그 이미지를 간직한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을까? 아니면 신경망처럼 구석구석 뻗어 있는 노선을 걷어 내기가 어려웠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알렉산더 광장
트램의 서쪽 끝에는 알렉산더 광장(Alexanderplatz)이 있다. 필자는 한동안 베를린에 머물던 때에 알렉산더 광장을 자주 들렀다. 도심에서 대중교통을 환승하는 곳이고 쇼핑하거나 장을 보려 해도 그곳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알렉산더 광장을 지날 때면 늘 ‘세계시계탑’이 눈에 들어왔다. 독일어로 ‘Urania-Weltzeituhr’라고 불리는 이 시계탑은 에리히 욘(Erich John)이라는 사람이 디자인했다고 한다. 그는 베를린 바이젠지 예술학교에서 교육받은 동독의 디자이너였다. 동독 정부가 1950년에 네덜란드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마트 스탐(Mart Stam)을 그 학교의 교장으로 초빙한 사실 때문에 들어 본 바 있는 학교다.
처음에는 여러 나라에서 찾아오는 관광객을 염두에 두어 근래에 설치한 조형물인 줄 알고 무심히 지나쳤으나 동독의 유산이라는 점을 알고 나서는 그 디자인이 달리 보였다. 트램에서 느꼈던 미적 감각과도 닮은 데가 있었다.
알렉산더플라츠 전철역(U-bahn)에서도 또 다른 유산을 발견했다. 이 전철역 플랫폼에서 <정치 포스터: 지하 예술 60년 Posters made political - 60 years Art in the Underground>이라는 제목의 전시가 열렸는데 무려 1958년부터 매년 열린 포스터 전시라고 한다. 당시에는 그 역이 동독 지역이었으니 엄격한 통제 속에서도 그런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상을 다룬 진보적인 전시가 열렸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아무튼 통독 이후에도 연례적인 이 전시가 지속되었는데, 2018년에 60주년을 기념하면서 기획 공모 당선 작가 2명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관계자의 얘기로는, 통독 후에 주최 기관이 사라지자 1991년에 ‘광고보다 예술을(Kunst statt Werbung)’이라는 그룹이 결성되어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역 플랫폼과 벽면에 대형 포스터를 부착하는데 지하철역 대부분이 그렇듯이 그 공간은 광고판 역할을 한다. 지하철 광고 권한을 가진 광고회사가 그냥 제공할 리 없으니 지금은 광고료를 지불하고 짧은 기간 전시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작은 행사지만 광고비를 지불해서라도 체제가 바뀐 오늘까지 행사를 이어 온 점 그리고 지하철 플랫폼이 예술가들의 플랫폼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은 것 같다. 그보다도 그런 전시가 동독 시절에 시작되어 아직까지 남은 유산이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해 보인다.


동독의 세간살이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두 세계가 동등하게 하나의 독일로 다시 통합한다기보다는 동독의 흔적이 점차 사라지는 것 같다. 베를린 역사박물관, 동독박물관(DDR Museum)에 보존된다는 것이 그 증거인데, 전시물로 남는 것은 과거의 기억을 명확히 해 주지만 박제화되어 더 이상 생명력을 갖지는 못한다.
그나마 사물박물관(Museum der Dinge)에서 동독과 서독의 일상 사물을 비교해서 디스플레이한 것은 흥미롭다. 그 박물관의 한구석에는 서독과 동독의 일상용품을 비교하는 작은 수납장이 있는데 결국 눈이 가는 것은 동독에서 사용되었다는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제품이었다. 이방인의 눈에 그것이 더 잘 보일 뿐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서구화된 상품의 소비 생활에 익숙한 탓에 낯선 물건에 호기심이 가는 것일 수도 있겠다.


박물관 밖 거리에서 동독의 사물을 발견할 기회가 없진 않다. 관광객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군복과 방독면, 휘장을 파는 노점이 간혹 보이는데 이 풍경을 통해서 동독이 하나의 기억 상품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보다는 오히려 주말마다 베를린 시내 곳곳에서 열리는 벼룩시장(Flohmarkt)이 좀 더 생생한 모습을 보여 준다. 독일인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오래된 물건들이 많이 나오는데 동독 주민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던 세간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특히 동역(Ostbahnhof) 뒷마당에서 열리는 벼룩시장은 그야말로 동쪽 분위기가 물씬 난다. 나무 좌판과 골판지 상자에서 두서없이 뒤섞여 먼지를 뒤집어쓴 인쇄물과 소품들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과거에 동과 서로 나뉘어 있던 두 세계의 오래된 물건들은 마치 유물을 발굴하는 듯한 묘한 느낌을 준다. 서로 다른 스타일과 디자인이 제각기 낡은 모습으로 뒤섞여 있는 가운데 ‘메이드 인 디디알’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뮤지엄에서 본 것과 똑같은 물건들을 벼룩시장에서 보는 것은 전시품으로 접하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준다. 누군가가 디자인했을 것이고 또 누군가 사용하다가 어찌어찌 흘러서 벼룩시장 좌판에 올라온 것 아닌가.


사회적 디자인을 지향한 디자이너들
그러면 정작 그 사물을 디자인한 이들은 누구일까? 그들은 어떤 태도를 갖고 디자인했을까? 어느 자료에서나 동독의 디자이너들이 사회적으로 책임감 있는 디자인, 즉 이윤이 아니라 철저히 사용자와 그 사회를 위한 디자인을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그 중심에는 실용적 기능성, 사용성, 오랜 수명, 생산성, 자원의 경제적 사용 등이 있다.
이것들은 오늘날에도 무척이나 중요한 덕목들이 아닌가. 어떻게 이런 측면들이 1950년대와 60년대 동독의 디자이너들 사이에서는 당연시될 수 있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한국 사회에서 기후위기에 대응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최근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기후위기로 생태 전환을 고민하는 움직임이 있는 것을 생각해 보면 격세지감이 든다. 앞에서 언급한 사실로 미루어 보면 동독의 디자이너들은 오래전부터 생태적인 접근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구체적인 사례로는 사용감의 미학을 들 수 있다. 어떤 사물이든 시간이 지나면 낡기 마련이다. 낡음은 그 사물의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만 오래 사용한 흔적을 사물의 권위로 여기던 때가 있었다. 가구는 물론이고 필름식 카메라와 오디오만 보더라도 반들거리는 표면이 중후한 느낌을 주어 후대에 물려주었고 지금도 고가로 판매되곤 한다. 언제부턴가 새로운 디자인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상품 판매를 촉진하려는 전략 중 하 나이기도 했다. 기업들은 이른바 ‘계획적 구식화(planned obsolescence)’, 즉 제품의 가치를 고의로 떨어 뜨리는 방식을 취해 왔고 자본주의 국가의 디자이너들은 그 방식을 성실히 따라왔다.
반면에, 동독 디자이너들은 일찌감치 이 ‘계획적 구식화’를 거부했다. 대신에 ‘사용감(patina of use)’을 하나의 미학으로 간주하여 오래 사용하면서 흠이 생기는 ‘낡음’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매년 새로운 모델이 등장하는 문화에 익숙한 소비자들의 눈에는 이런 노력이 구태의연하고 세련되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생태적인 관점으로 보면 훌륭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미학적인 측면뿐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서두에 언급한 암펠만의 경우도 무척 효과적이었다고 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동독과 서독의 신호등을 비교 평가해 보니 서독 신호등에 비해 암펠만이 더 간결하고 신호 인식 면에서도 더 효과적이라는 평가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암펠만은 실제로 베를린 보행 신호등의 6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전반적으로는 동독의 디자인보다는 동시대의 서독과 서구에서 등장한 디자인이 더 완성도가 높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앞서 살펴본 베를린의 동독 디자인 유산들도 그리 세련되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오늘날 베를린 시민뿐 아니라 이방인의 눈길을 끌 만큼 독특한 매력이 있다. 특히나 동독 시절의 기억을 가지고 사는 이들에게는, 당시 정치적 상황이야 어떠했든 자신의 일상적인 경험을 담고 있으니 각별할 것 같다. 아무튼 21세기에도 베를린 시내에 당당히 존재하고 있으니 그 사실만으로도 암펠만과 세계시계탑, 트램을 비롯한 동독 디자인의 유산이 지닌 가치가 증명된 것이 아니겠는가.
글 김상규 서울과학기술대 디자인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산업디자인과와 국민대 대학원 공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퍼시스 가구연구소에서 의자를 디자인했다. 의자를 비롯한 사물에 관심과 애정을 갖고서 큐레이팅과 아카이브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저서로는 『의자의 재발견』 『디자인과 도덕』 등이 있으며 대표적인 의자 디자인으로는 파트라에서 생산 중인 ‘STING’ ‘SKIN’ ‘CITY’ 가 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