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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 옆 영화관]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이해 못 해도 사랑해라… 인생은 흐르는 강물과 같으니까

  • 작성자 사진: artviewzine
    artviewzine
  • 18시간 전
  • 3분 분량

유전자의 힘은 무섭다. 핏줄은 우리 몸속에 새겨져 밖으로 드러난다. 외모로 가족 관계를 대략 짐작할 수 있다. 형제와 자매가 닮은꼴이 아니면 우리는 의외라며 놀란다. 생김새가 비슷하다고 성격까지 닮을까. 많은 경우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는 안다.

20세기 초 미국 몬태나주 시골에서 3년 터울로 태어난 형제 노먼 맥클린(크레이그 셰퍼)과 폴 맥클린(브래드 피트)도 다른 형제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노먼이 신중하고 기성세대의 규칙에 충실한 편이라면 폴은 대범하고 통념에 반기를 드는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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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너무 달랐던 형제

형제의 가정환경은 여느 집보다 엄격하다. 아버지 존(톰 스커리트)은 장로교 목사다. 스코틀랜드계 이민자의 후손으로 근면과 성실을 무기로 낯선 땅에 정착하려 한다. 아이들 교육엔 더 엄할 수밖에 없다. 집이 곧 학교다. 몬태나주는 여전히 서부 개척기이니 가까운 곳에 학교가 있을 리 없다.

아버지의 교육은 남다르다. 문장 과제를 낸 후 아이들이 결과물을 가져오면 밑줄을 긋고 다시 쓰기를 시킨다. 마음에 들 때까지 반복하며 아이들이 스스로 답을 찾아가도록 한다. 자신의 유일한 취미인 플라이 낚시를 할 때에도 규칙에 충실하다. 리듬감 있게 낚싯줄을 던져 고기를 낚곤 한다. 그 엄격함은 아들들에게 플라이 낚시를 가르칠 때에도 적용된다. 메트로놈을 활용해 리듬감이 아이들 몸에 배도록 한다.

집에서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예법을 배우고, 학교를 대신한 똑같은 교육을 받는다고 두 아들이 똑같은 인생길을 걸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노먼은 아버지가 시키는 일을 꼬박꼬박 해낸다. 지겨운 반복에 짜증을 내면서도 문장 과제를 끝까지 한다.

폴은 다르다. 그는 집안의 오랜 전통이라 강조해도 귀리 섭취를 완강히 거부한다. 몇 시간이 지나도 접시에 담았을 때 모양 그대로인 귀리 요리는 폴의 완고한 성격을 대변한다. 노먼은 늘 아버지 뜻을 따르며 부모 곁에 있을 듯한 인물인 반면, 폴은 성인이 되자마자 집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먼 세상으로 향할 듯하다.

예측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일까. 노먼과 폴은 대학에 진학할 때 성향과 정반대로 행동한다. 노먼은 집에서 5,000km 떨어진 동부 명문 다트머스 대학에 진학한다. 폴은 집에서 가까운 대학에 간다.

노먼이 6년 동안 다트머스 대학에 머물 무렵, 미국은 금주법과 재즈의 시대였다. 금주법에 따라 술 제조와 판매, 구입이 엄격히 금지됐다고 하나 세상은 오히려 고삐 풀린 형국으로 돌아갔다. 밀주가 유통되고 조직범죄가 발호했다. 공권력은 알 카포네(1899~1947) 같은 거물 마피아 두목의 범죄를 단속하느라 바빴고, 사회는 불안정했다. 반면 재즈가 유행하며 자유분방한 기운이 미국 사회에 넘실거렸다. 노먼은 시대의 공기를 온몸으로 느낀 후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렇다고 그가 진보주의자가 되어 가족 앞에 다시 선 것은 아니다.

폴은 고향을 떠나지 않은 대신, 플라이 낚시에서 삶의 새로움과 즐거움을 발견한 듯하다. 그는 아버지와는 다른 기법으로 자신만의 낚시법을 발전시켰고, 자연과 낚시에 취해 20대 초반을 보냈다. 그렇다고 그가 반항적이고 진보적인 성향을 버린 것은 아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지역 신문사 기자로 일하며 반골 기질을 드러낸다. 근무 중에 술을 마시기도 하고, 아메리카 원주민 애인과 출입이 금지된 술집을 찾아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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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노먼의 삶이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다면, 폴의 인생은 불안정하고 위태롭다. 누구의 삶이 더 올바르다고 쉽게 판단할 수는 없다. 둘은 각자의 가치관과 성격에 따라 자기 길을 갈 뿐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20세기 초 몬태나주는 황무지 같은 곳이다. 1889년에야 미국에 편입돼 41번째 주가 됐다. 새로운 미국 영토였던 셈이다. 일본과 비슷한 면적이지만 인구는 수십만 명에 불과할 정도로 적막한 땅이었다. 노먼과 폴이 태어나고 자라 성인으로 살아가던 시기는 ‘미국 땅’ 몬태나주의 성장과 맞물려 있다. 영화는 노먼과 폴을 통해 몬태나주의 초기 풍광을 돌아본다.

노먼과 폴은 다른 성격과 가치관으로 각기 다른 삶을 살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우애는 변치 않는다. 노먼은 폴의 도발적인 행위에 늘 불안하나 동생의 언행을 존중한다. 폴은 시카고 대학 강사직 제안을 받은 노먼에게 슬쩍 질투를 느끼면서도 형의 연애를 위해 측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아버지와 성인이 된 두 아들이 송어 낚시를 함께 하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세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송어를 낚는다. 낚시 방법에 엄격했던 아버지는 이제 아들들에게 자기 방식을 강요하지 않는다. 세 사람은 각자 잡은 송어를 한곳에 모으고 즐거워한다. 아이들은 성장했고 각자 알아서 ‘물고기’를 잡는다. 아버지는 더 이상 해 줄 말이 없다. 폴이 성(姓) Maclean을 의도적으로 MacLean으로 표기해 아버지의 화를 돋우지만 말이다. 이 또한 개성 강하고 도발적인 막내아들다운 행동이라 대놓고 뭐라 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임종 전 마지막 설교에서 “오롯이 이해할 수는 없으나 오롯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라며 젊어서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 폴을 떠올린다. 누구나 자식도, 형제도, 부모도 오롯이 이해할 수 없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우리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노인이 된 노먼은 낚시를 하며 동생과의 추억을 떠올린다. 그는 “결국 모든 것이 하나로 융합된 다, 흐르는 강물처럼”이라고 읊조린다. 매사 신중하고 전통을 중시했던 노먼의 삶도, 진취적이고 도발적이며 통념에 반했던 폴의 인생도, 그리고 다른 이들 각자의 인생도 다 합쳐져 세상이라는, 역사라는, 시대라는 물줄기를 이룬다. 그러니 공동체를 위태롭게 할 정도의 지나친 언행이 아니라면 자신과 다르다며 지적하고 비난할 일은 아니다. 노먼은 어쩌면 “이해하지는 못해도 사랑하라”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강물을 보며 떠올렸는지 모른다. 노먼이 노년에 깨달은 삶에 대한 통찰은 흐르는 강물의 윤슬처럼 스크린에 반짝인다.

영화는 시카고대 영문과 교수 노먼 맥클린(1902~1990)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지난 9월 16일 89세로 생을 마감한 배우 겸 감독 로버트 레드포드가 메가폰을 잡았다. 할리우드의 현인이었던 레드포드는 우리를 위해 삶의 안내서 같은 영화를, 세상을 떠나기 33년 전 미리 유산처럼 만들어 놓은 게 아닐까.


사진 제공 www.alamy.com

로버트 레드포드 감독의 <흐르는 강물처럼>은 12월 10일(수) 오후 2시 미디어홀에서 성남미디어센터 상영작으로 만날 수 있다.


라제기 한국일보 영화 전문기자

1999년 한국일보 입사 후 편집부와 사회부, 국제부 등을 거치며 엔터테인먼트 팀장과 문화부장, 신문에디터로 일했다. 2004년부터 영화를 취재해 왔으며, 영국 서식스대 대학원에서 영화학을 공부했다. 저서 『질문하는 영화들』 『말을 거는 영화들』, 역서 『할리우드 전복자들』로 영화를 사랑하는 독자들과 소통하는 한편, 뉴스레터 ‘영화로운’으로 매주 구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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