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무용계 록 스타’. 호페쉬 쉑터를 부르는 말이다. 2015년 브릭스톤아카데미에서 열광하는 관객과 함께 <폴리티컬 마더(Political Mother)>를 선보이며 가장 큰 성공 중 하나를 거둔 후, 이 별명이 굳어졌다. 브릭스톤아카데미는 밥 딜런, 롤링스톤스, 콜드플레이 등이 찾았던 런던의 대표적 음악 공연장이다. 대중적 인기와 평단의 인정을 고루 거머쥔 안무가 겸 작곡가 호페쉬 쉑터. 최근 영화감독으로도 성과를 얻은 육각형 예술가의 신작이 3월 14일과 15일 성남아트센터를 찾는다.
글 윤대성 월간 <댄스포럼> 편집장

©Tom Visser
호페쉬 쉑터의 <꿈의 극장>은 2024년 6월 27일부터 7월 17일까지 파리시립극장에서 초연을 가진 뒤 투어 공연을 시작했다. 네덜란드, 영국, 이탈리아, 벨기에, 중국, 룩셈부르크, 독일, 호주 등에서의 공연 일정이 2025년 10월까지 촘촘하게 들어찬 가운데, 성남아트센터에서 3월 14일과 15일 국내 관객을 만난다.
본능을 일깨우는 꿈과 무의식의 세계
<꿈의 극장>은 전화위복의 대명사다. 작곡까지 직접 하는 호페쉬 쉑터에게 노트북은 한 몸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차에 둔 노트북을 누군가 훔쳐가면서 <꿈의 극장>의 모든 음악과 안무 영상이 사라져 버렸다. 무려 4개월이나 작업했는데…! 예전 결과물을 자신이 그다지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은 나중에 깨달았지만, 생각이고 뭐고 당시엔 새롭게 만드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꿈의 극장>은 지난여름 파리시립극장에서 무려 3주간 세계 초연을 가졌다. <가디언>지 평론가 린지 윈십에 따르면 공연 후 파리시립극장 앞 풍경은 상당히 이색적이었다. 극장 밖으로 나오는 쉑터에게 흥분한 인파가 주목하고, 몇 사람은 <꿈의 극장> 프로그램북을 꼭 쥐고 그의 사인을 기다렸다. 현대무용계에 몇 없는 유명인사의 면모가 재현됐다. 초연을 본 후 감격에 겨운 어느 관객은 음악 스태프를 찾아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겠다”고 했다. 관객의 마음을 강하게 움직이는 작품이 된 것이다.
쉑터의 작품 세계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본능’이다. 린지 윈십은 <꿈의 극장>을 “당신을 물리적으로 움직이고, 멱살을 잡고,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당기려는 춤”이라고 표현했다. 작품은 열리고 닫히길 반복하는 ‘커튼’을 통해 무의식의 세계를 여행하며 꿈나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감상을 안긴다. 관람 행위, 극장의 관습, 꿈, 기억, 창작 과정 자체 등 다양한 주제를 옮겨 다니면서 때로는 악몽 같은 파편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변화무쌍한 춤을 견인하는 것은 넓은 스펙트럼의 음악이다. 좌석이 진동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강렬한 핑크 플로이드 스타일 비트부터 여유로운 삼바와 살사, 올드 팝 ‘I Remember’까지 매우 다채롭다. 라이브 밴드의 연주도 백미지만, 닉 드레이크의 어머니 몰리 드레이크가 만든 ‘I Remember’는 또 다른 울림을 준다. “우리가 ‘우리’라고 생각했을 때, 하지만 우리는 ‘너와 나’였다”란 그녀의 가사처럼, 공연 안에는 눈을 사로잡는 폭발적 군무뿐 아니라 홀로 스쳐 가는 외로운 존재들이 있다.
영화 같은 미장센을 만드는 톰 비서(Tom Visser)의 조명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안무가와 함께 공간의 창조주가 되어 빛을 조각하는 그는, 때로는 공기가 두꺼워지는 것 같은 감각을 안기고, 때로는 따뜻한 빨간색으로 무대를 덧칠했다가 푸르스름한 녹색으로 생명력을 앗아 가기도 한다.

©Todd MacDonald
춤, 음악, 영화를 섭렵한 육각형 예술가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호페쉬 쉑터(Hofesh Shechter)는 이스라엘 출신의 안무가 겸 작곡가, 영화감독이다. 예루살렘예술원을 졸업하고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바체바무용단에 들어갔지 만, 드럼과 퍼커션을 시작한 뒤로 음악 공부를 위한 프랑스 파리행을 택했다. 영국에 처음 갔을 때에도 그는 밴드에서 드럼을 치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03년 첫 안무작을 기점으로 인생이 달라진다. 직접 음악까지 맡은 작품 <파편Fragments>(2003)을 선보인 그는 단번에 영국 신진 안무가의 산실 더플레이스(The Place)로부터 새로운 작품을 위촉받는다. 당시 <컬트Cult>(2004)는 관객 심사로 선정되는 다섯 개 작품 중 최고상을 차지했고, 그는 더플레이스 협력예술가 2004-2006에 선정되며 예술계의 본격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영국 최고의 실력자 반열에 오른 건 이후 발표한 <반란(Uprising)>(2006)과 <당신들의 방에서(In Your Room)>(2007) 덕분이다. 두 작품을 한데 묶어 투어하던 호페쉬 쉑터는 후자로 영국평론가협회 최우수안무상을 받는다. 이는 그의 이름을 국경을 넘어 각인시킨 공연이기도 하다. 미국 최고령 현대무용 축제 제이콥스필로댄스페스티벌을 찾았을 때, 뉴욕타임스 무용평론가 로슬린 술카스는 “호페쉬 쉑터, 기억해야 할 이름”이라는 평을 썼다.
메가 히트작 <폴리티컬 마더>(2010)는 드러머로 활동할 당시 록 스타가 되고 싶었다는 그의 꿈이 현대무용과 만난 대표적인 사례다. 국내에서도 각광을 받은 이 작품은 격렬한 타성과 눈부신 조명을 타고 춤의 원초적 힘을 폭발적으로 쏟아 냈다. 당시 내한 공연의 안내 방송이 “공연 중 전화기를 켜 두셔도 됩니다. 어차피 안 들리실 테니까요!”일 정도였다. 30대 중반의 청년은 이 작품을 계기로 세계적 안무가의 반열에 올랐다. 안무가의 위상은 작품을 의뢰한 무용단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세계 최정상 현대무용단 ‘네덜란드댄스시어터1’부터 발레로 이름 높은 파리오페라발레단, 영국 로열발레단 등이 호페쉬 쉑터가 마흔을 갓 넘긴 2010년대 중반부터 그의 기존 안무작을 수용했다. 곧이어 신작을 의뢰하며 지속적 관계를 쌓기 시작했는데, 특히 파리오페라발레단은 올 6월에도 그와 함께 전막 길이의 초연을 앞두고 있다.
쉑터는 런던 공연장 새들러스 웰스의 협력예술가도 맡고 있다. 특히 영국 문화예술에 기여한 공로로 2018년 대영제국훈장 4등급(OBE)을 받았는데, 국내 걸그룹 블랙핑크가 2023년 받은 MBE보다 한 단계 높다. 최근에는 코로나 기간 직접 연출·안무·작곡·촬영한 <폴리티컬 마더: 더 파이널 컷>(2021)으로 영화감독으로의 행보 역시 확장하고 있다. 국내 월간 <댄스포럼>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앞으로 더 많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차진엽, 김예지가 몸담은 무용단
2008년 창단한 호페쉬 쉑터 컴퍼니는 영국남부 해안 도시 브라이튼에 위치한 브라이튼 돔Brighton Dome의 상주 예술단체이다. 정식 창단 전, 현대무용가 차진엽이 몸담으면서 쉑터의 첫 작품 <파편> 듀엣(출연 차진엽·호페쉬 쉑터)으로 일찍이 국내에 소개되기도 했다. 차진엽은 곧 한국으로 돌아와 안무 활동을 시작했지만, 또 다른 한국인 단원 김예지는 입단 10년을 넘긴 고참 단원이자 리허설 어시스턴트로 여전히 활약하고 있다. 무용단은 앞서 언급한 작품들을 비롯해 <The Art of Not Looking Back>(2009) <Sun>(2013) <Barbarians>(2015) <Grand Finale>(2017) <Double Murder>(2021) 등의 레퍼토리를 보유 중이다.
2018년엔 차세대 무용수로 구성된 주니어 무용단 ‘쉑터Ⅱ’도 생겨났다. 이들을 위한 작품은 <Show>(2018) <Contemporary Dance 2.0>(2022) <From England with Love>(2024) 등이다.
호페쉬 쉑터의 <꿈의 극장>은 3월 14~15일 양일간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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