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아티스트 토크] 숲에서 피어나는 미래예술을 만나다: 성남페스티벌 총감독 이진준

  • 작성자 사진: artviewzine
    artviewzine
  • 7월 29일
  • 6분 분량

최종 수정일: 7월 31일

인간과 자연, 기술과 예술의 경계를 끊임없이 탐구하며 새로운 감응의 언어를 모색해 온 미디어 아티스트 이진준. 그동안 인공지능(AI), 증강현실(AR), 두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등 첨단 기술과 예술을 결합한 작품으로 독보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해 온 그가 2025년 성남페스티벌 총감독으로 함께한다. 도심 속 공원을 낯선 마법의 공간으로 바꾸는 예술적 실험 <시네 포레스트: 동화(動花)>를 통해, 이진준은 ‘확장된 공감’이라는 미래의 감수성을 제안할 예정이다. 예술과 기술 그리고 인간의 감성이 교차하는 새로운 경계의 지점, 그가 펼쳐 낼 ‘미래예술’의 풍경을 미리 살펴본다.


남소연 성남문화재단 문화예술교육부 과장 | 사진 최재우


ree

성남페스티벌 총감독으로 함께해 주셔서 반갑습니다. 성남페스티벌, 또 도시 성남의 어떤 점에 이끌려 제안을 받아들이셨는지요?

초청을 받고 가장 먼저 떠올린 단어는 ‘공감’이었습니다. 성남은 전통과 첨단 기술, 주거 공간과 자연이 교차하는 도시입니다. 다양한 요소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이 제 작업의 주요 개념인 ‘경계(liminality)’와도 잘 맞아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죠. 또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축제라는 점은 오랫동안 예술을 일상의 언어로 확장하고자 해 온 제 방향성과도 일치했어요. 저는 ‘공간이 가진 고유한 이야기’를 예술의 출발점으로 삼아 왔는데, 중앙공원의 숲을 무대로 삼고 도시의 빛·소리·데이터를 활용한다면 도시와 자연, 사람과 기술이 하나 되는 새로운 감각적 서사를 만들 수 있으리라 확신했습니다.


이번에 만날 성남페스티벌 메인 콘텐츠는 어떤 작품인지요? 작품의 연출 포인트와 주목할 부분들은 무엇인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메인 콘텐츠 <시네 포레스트: 동화(動花)>는 중앙공원의 숲 자체를 거대한 ‘열린 극장’으로 전환하는 대형 미디어 퍼포먼스입니다. 세계 최초로 ‘시네 포레스트(Cine-Forest)’라는 개념을 통해 숲의 수목을 360° 초고해상 프로젝션 매핑 캔버스로 삼게 되죠. 나뭇잎의 결, 바람의 흐름까지 영상 서사에 넣어 관객이 어느 방향을 바라보더라도 작품에 몰입할 수 있도록 연출합니다. 초고해상 프로젝션이 수목 표면과 지형의 굴곡을 따라 입체적으로 투사되면서 나무 하나하나가 스크린이 되고, 나뭇잎의 움직임과 바람 소리까지 이야기에 녹아들죠. 공원을 거니는 관객은 사방에서 살아 움직이는 그림 속에 빨려 들어가듯 몰입하게 됩니다.

70여 명의 오케스트라, 성남 시민으로 구성된 1,000명의 합창단도 참여합니다. 이들은 관현악과 전자음악으로 표현된 새로운 형식의 교향곡 ‘미디어 심포니’를 연주할 예정인데요, 이 미디어 심포니는 바람과 곤충 소리와 같은 숲의 자연음을 채집하여 AI 알고리즘의 도움을 받아 작곡한 음악과 추억의 영화 음악을 예술가가 하나의 서정적인 서사 구조로 엮어 냈습니다. 인간의 창작 역량과 해석을 바탕으로 AI 기술의 예술적 활용 가능성을 보여 주는 시도라는 점에서, 단순한 AI 작곡이나 기술 시연 공연과는 차이가 있죠. 기술과 자연, 인간의 목소리가 하나의 유기적 서사로 엮이면서 과거·현재·미래의 시간이 겹겹이 어우러지고, 관객은 단순히 공연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숲을 경험하며 함께 입체적 동화를 완성해 갑니다. 기술, 인간, 자연, 도시가 별빛 아래 공명하며 살아 움직이는 이 퍼포먼스는 고정된 조형물이 아닌 행위 기반 공공미술이자, 미디어 심포니 시대의 서막을 여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작품의 캔버스로서, 중앙공원 야외공간의 어떤 점에 주목하셨나요?

도심 속 계곡처럼 완만한 경사와 자연 수목이 어우러진 공간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저는 이 지형적 깊이를 이용해 층위적 사운드 스케이프(soundscape)와 미디어 캔버스 공간을 설계했습니다. 가을밤, 공원 언덕 위로 펼쳐지는 열린 극장을 산책하듯 거닐 때마다 새로운 숲의 이미지를 경험할 수 있을 겁니다.


성남페스티벌은 중앙공원의 메인 콘텐츠 외에도 분당구청 잔디광장 등 다양한 장소에서 진행됩니다. 축제의 각 공간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무엇일까요?

‘마법과 과학’입니다. 공원과 광장 같은 일상의 공간들이, 현실 위 ‘마법과 과학’이라는 두 번째 층을 입으며 낯선 환상의 세계로 관객을 초대합니다. 관객은 각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새로운 마법 주문을 만나고, 그 감각의 전환들이 도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마법 지도’로 엮어 냅니다. 과학 기술과 예술의 협업을 통해 탄생한 이 작은 환상들이 일상 속 마법 같은 기억으로 남길 바랍니다.


메인 콘텐츠 <시네 포레스트: 동화>가 펼쳐질 중앙공원 야외공연장 언덕 전경. 도심 속 계곡처럼 완만한 경사와 자연 수목이 어우러진 이곳에,  이진준은 지형적 깊이를 이용한 층위적 사운드 스케이프와 미디어 캔버스 공간을 설계했다
메인 콘텐츠 <시네 포레스트: 동화>가 펼쳐질 중앙공원 야외공연장 언덕 전경. 도심 속 계곡처럼 완만한 경사와 자연 수목이 어우러진 이곳에, 이진준은 지형적 깊이를 이용한 층위적 사운드 스케이프와 미디어 캔버스 공간을 설계했다

기술은 감각을 확장하고 예술은 의미를 부여한다 

 

경영대학에서 다시 미술대학으로, 또 예술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변화의 여정을 이어 오셨습니다. 그 과정이 어떤 자양분이 되어 주었는지요?

경영학은 제게 시스템적 사고를, 조소와 미디어 아트는 물질성과 서사에 대한 감각을, 예술철학은 존재론적 질문과 비판적 시선을 안겨 주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단순히 ‘작품’을 만들기보다 그것이 총체적인 ‘경험’이 되는 ‘설계’에 주목하게 되었어요.

경영학은 복잡한 사회·경제적 흐름을 관계의 맵(map)으로 그리는 사고의 틀을, 조소와 미디어 아트는 추상적 네트워크를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형태로 구현하는 손과 몸을 길러 주었습니다. 예술철학은 그 형식들이 무엇을 드러내고 또 무엇을 감추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하게 했지요. 이 세 축이 만나면서 제 작업은 하나의 오브젝트(object)나 매체에 머무르지 않고, 관객·환경·기억·데이터가 상호 작용하는 총체적 경험의 ‘설계’로 확장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저는 작품을 ‘제작’한다기보다, 감각과 서사, 기술이 만들어 낸 생태계를 ‘정원사처럼 가꾸는(cultivating)’ 예술가입니다. 그 생태계 안에서 관객 스스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도록 여백을 남기는 방식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예술과 기술의 융합과 경계를 오랫동안 탐구해 오시면서, “예술과 기술은 별개 분야가 아니라 단일한 이해를 추구하고 상호보완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라고 하셨는데요, 이 융합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증강된 공감(augmented empathy)’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술은 우리의 감각을 확장하고 재배치하며, 예술은 그 과정에 의미를 부여하죠. 이 둘이 만날 때 우리는 타인의 경험, 나아가 비인간 생명, 인공지능, 심지어 지구 환경까지도 내면에 이입할 수 있는 새로운 감수성을 얻게 됩니다.

이는 단순한 시청각적 감탄을 넘어서, 서로의 입장을 체험하며 더 나은 공존 방식을 모색하자는 윤리적 요청으로 이어집니다. 예술과 기술의 융합은 인간–기계–자연 간의 감각적·정서적 간극을 좁히고, 확장된 공감 능력을 바탕으로 사회적 상상력을 키워 가는 데 목적이 있죠. 저는 오랫동안 ‘소통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 아래 서로 다른 세계의 경계를 탐구해 왔는데, 공감이란 그런 세계들이 교차하는 지점입니다. 결국 기술과 예술의 융합이 추구하는 가치는 화려한 기술의 시연이나 융합 그 자체가 아닌, 기술을 통해 인간에 대한 보편적 이야기를 질문하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좋은 예술’을 만드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벽화, 비디오, 실험극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작업은 결국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가장 적합한 형식을 찾기 위한 과정일 텐데요, 원하는 답을 얻어 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완전히 도달했다기보다는 현대미술의 최전선에서 여전히 실험 중입니다. 프로젝트마다 매체를 달리하며 그 주제를 가장 잘 표현할 정확한 ‘언어’를 찾으려 하죠. 이 과정에서 새로운 매체의 미학을 조금씩 이해하고 감각을 확장하게 됩니다. 이런 감각적 지평을 확장해 온 역사가 곧 사유의 확장을 견인해 왔다고 느끼죠. 정답을 찾기보다는 좋은 질문을 만드는 예술가가 되고자 해요.


ree

감독님의 예술 세계에서 ‘경계공간’과 ‘총체성’은 지나칠 수 없는 키워드입니다. 총체성이란 ‘소리와 공간 경험, 시청각과 촉각까지 어우러진, 반복되지 않는 유일한 한순간의 경험’이고, 이를 담아낸 미래 예술을 추구한다고 하신 바 있죠. 성남페스티벌에서도 그 감각을 경험할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시네 포레스트: 동화(動花)>는 제가 오랫동안 탐구해 온 ‘총체적 경험(total experience)’과 ‘경계 공간 경험(liminoid experience)’을 현장에 불어넣는 실험입니다. 먼저 총체성 측면에서는, 기존의 시청각 중심 공연을 넘어선 다층적 감각을 동시에 호출합니다. 시네-포레스트 프로젝션이 숲을 360° 화면으로 바꾸면, 별빛과 나뭇잎의 흔들림, 저녁 공기의 온도차와 흙냄새까지 하나의 서사적 레이어로 작동하죠. 관객은 앉아서 ‘관람’하기보다 걷고, 숨 쉬며, 자신의 심장 박동과 발소리까지 작품에 투영되는 총체적 경험 속에 들어섭니다. ‘보는 것’과 ‘듣는 것’ 사이, 물리적 몸과 가상 이미지 사이의 경계는 의도적으로 흐려지게 되죠.

경계 공간 경험은 이러한 경계가 무너지는 찰나, 즉 현실과 환상의 틈새에서 발생합니다. 밤이 내려앉는 전이(transition)의 시간, 자연 음향이 AI 알고리즘과 뒤섞여 재구성되는 순간, 그리고 추억의 영화 음악들을 통해 관객은 숲 속 열린 극장에서 저마다 기억의 여행을 떠납니다. 이때 공간은 더 이상 ‘배경’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 자연과 기술이 중첩된 잠정적·과도기적 무대가 되죠. 관객은 익숙함과 낯섦 속에서 스스로 존재의 위치를 재조정하고, 그 지점에서 경계 공간 특유의 호기심과 설렘이 피어나도록 연출할 예정입니다.

결국 이번 퍼포먼스는 기술·자연·인간이 실시간으로 상호 종속·확장하는 동적 생태계를 통해 ‘한순간만 존재하는, 다시 반복되지 않을 총체적·경계적 경험’을 지향합니다. 그 순간 시민들은 관객이자 참여자가 되고, 숲은 극장인 동시에 오케스트라이며, 도시의 평범한 밤은 단 한 번 피어나는 동화의 장면으로 변모합니다. 이것이 제가 말하는 총체성과 경계 공간의 오늘날 버전입니다.


앞으로 인공지능과 예술이 어떤 접점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요?

인공지능은 단순한 도구를 넘어, 인간과 협업하는 창작의 동반자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다만 이를 인격체로 대하지 않으며, 데이터 편향·저작권·책임 문제 등을 설계 단계에서 다루는 윤리적 큐레이션이 필수적입니다. 과한 기대나 두려움을 가질 필요도 없죠. 저는 매일 아침 새로운 물감을 만지는 기분으로 AI를 마주합니다. 마치 새로운 장난감처럼, 설렘과 더불어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에 대한 상상의 폭을 넓혀 주죠.

앞으로 예술과 AI의 접점은 인간의 개념적 상상력, AI의 계산적 알고리즘, 자연과 도시의 물리적물리적 조건, 그리고 관객의 참여가 서로를 울리며 확장된 공감을 만들어 내는 장이 될 것입니다. 그 접점을 이해하고 설계하기 위해서는 ‘시(詩)’에 담긴 ‘비어 있음’을 읽어 내는 인간 고유의 인문학적 감수성이 더욱 중요해지겠죠.


2024년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 설치된 이진준의 <방황하는 태양 시리즈 Wandering Sun Series>                                                      Jinjoon Lee, Wandering Sun, 2024. Single channel video installation, Unreal Engine 5, AI algorithm, NASA Earth observation data, 4×17m 2.6pt, 04'15“
2024년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 설치된 이진준의 <방황하는 태양 시리즈 Wandering Sun Series> Jinjoon Lee, Wandering Sun, 2024. Single channel video installation, Unreal Engine 5, AI algorithm, NASA Earth observation data, 4×17m 2.6pt, 04'15“

스스로의 정체성을 한 단어로 소개한다면, 무엇으로 불리고 싶으신지요?

동아시아 문인(literati)의 전통을 잇는 ‘예술가 학자(artist–scholar)’입니다. 특히 데이터를 가꾸어(cultivating) 인간과 자연 그리고 과학 기술을 융합해 독특한 공간 경험(liminoid)을 만드는 정원사, 데이터 가드니스트(Data Gardenist)라 표현하고 싶네요.


예정된 주요 작업, 또 예술가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선 14년 만의 국내 개인전이 8월 23일부터 10월 18일까지 성북동 BB&M 갤러리에서 진행됩니다. 인간의 홍채 데이터를 활용한 신작들의 첫 공개를 통해 최근 지드래곤, 카이스트 인공위성센터와 협업한 우주 프로젝트 ‘굿모닝 미스터 지드래곤’의 배경을 전달하고자 해요. 여름방학과 안식년 기간에는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세인트존스 칼리지(St. John’s College)와 엑서터 칼리지(Exeter College), 일본 도쿄예술대학교 방문교수로 연구하며 미뤄 왔던 책 집필을 마무리할 예정입니다.

또 AI 등 새로운 융합기술의 활용을 기반으로, 오케스트라 편성에 전자 악기와 데이터 소니피케이션(data sonification), 몰입형 영상 디자인을 접목한 미디어 심포니 공연을 지속적으로 선보일 계획인데요, ‘거인’이라는 주제 아래 인간·자연·기계의 서사를 미디어 교향곡 형태로 담은 첫 레퍼토리를 준비 중입니다. 성남페스티벌 <시네 포레스트: 동화(動花)>에서는 제가 AI를 이용해 작곡한 ‘쓰러진 거인’을 최초 시연하게 되죠.

미디어 아트는 결국 ‘공연’의 형태로 귀결되리라 봅니다. 새로운 기술을 접목한 새로운 장르의 탄생이 AI의 도래로 더욱 빨라지고 있죠. 그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로서, 성남에서 이 새로운 변화를 보여 드릴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시네 포레스트: 동화(動花)>가 지속 가능한 새로운 도시 브랜드로 안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축제는 결국 참여자의 손에서 완성되겠지요. 성남페스티벌에서 관객들이 무엇을 경험하고, 사유할 수 있기를 바라시는지요?

공기·빛·소음처럼 평소 도시 속 ‘배경’으로만 존재하던 요소들이, 예술적 매개를 통해 마음속 ‘진경(眞景)’으로 다가오는 순간을 경험해 보세요. 이를 통해 우리가 호흡하는 공간이 살아 있음을 느끼고, 도시 생태와 타인에 대한 감각적 연대를 떠올릴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AI 시대의 기술에 대한 감탄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지금, 기술이 빚어낸 새로운 예술을 공감각적으로 체험하며 위로받길 바랍니다. 단순한 기술 시연회가 아닌 ‘새로운 예술’을 마주하실 수 있을 겁니다.




태그:

 
 
 

댓글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