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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 옆 영화관]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인생은 예측 불가… 노인에게는 더욱더 그렇다

  • 작성자 사진: artviewzine
    artviewzine
  • 7월 29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7월 31일

남자는 어설픈 강도다. 편의점을 털다 매번 잡힌다. 경찰서에 자주 가다 보니 죄수 사진 찍는 여자 경관과 눈이 맞는다. 결혼 후 남자는 갱생의 삶을 다짐하고, 둘은 행복하다. 여자가 임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지역 부호가 다섯 쌍둥이를 낳았다는 뉴스를 접한다. 돈도 많고 아기도 많다. ‘아기를 잘 키운다면 모두가 행복한 일 아닐까’ 생각한 남자와 여자는 유괴를 결심하지만, 남자의 감방 동료 둘이 탈옥하며 일이 꼬인다. 동료들은 아기를 미끼로 돈을 벌려고 한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라더니, 부부는 뜻하지 않게 인생의 롤러코스터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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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영화 <아리조나 유괴사건>(1987)은 코미디다. 엉뚱한 부부가 엉뚱한 짓을 저질렀다가 엉뚱한 상황에 처하는 과정을 엉뚱한 웃음으로 전한다. 조엘(Joel Coen)·이선 코엔(Ethan Coen) 형제의 두 번째 장편 영화다. 이들의 장편 데뷔작 <분노의 저격자>(1984)와는 분위기가 완연히 다르다.

<분노의 저격자>는 한 부부의 불륜에서 촉발되는 살인사건을 그린다. <아리조나 유괴사건>과 겉모습은 다르나 공통점은 있다. 등장인물들이 나름대로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세워 뭔가를 추진하나 일이 틀어지고 인생 궤도를 이탈한다는 점이다. <아리조나 유괴사건>이 웃음을 제조한다면, <분노의 저격자>는 스릴을 빚어낸다.

<아리조나 유괴사건>과 <분노의 저격자>뿐만 아니다. 코엔 형제는 <바톤 핑크>(1991)에서는 할리우드에서 예상 밖 인생행로에 접어든 극작가를 스크린 중심에 내세운다. 이후 이어진 영 화 대부분이 예상치 못한 인생 함정에 빠진 이들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허드서커 대리인>(1994)은 잡역부로 한 회사에 취직했다가 뜻하지 않게 사장 자리에 오른 인물에,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2001)는 의도치 않게 아내에게 살인 누명을 씌우는 남자에 각각 주목한다.

코엔 형제에게 아카데미상 작품상과 감독상, 각색상을 안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도 예외는 아니다. 베트남전 참전 용사 르웰린(조슈 브롤린)은 사냥을 나갔다가 참혹한 현장을 발견한다. 죽은 자들의 불행과 달리 르웰린은 거액을 손에 쥔다. 그는 충동적인 동정심 때문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악마 같은 살인청부업자 안톤(하비에르 바르뎀)이 르웰린을 표 적으로 삼는다. 200만 달러로 새로운 삶을 살리라는 르웰린의 예측은 빗나간다. 르웰린뿐일까. 그의 아내 칼라(켈리 맥도널드)도, 사건을 쫓는 보안관 에드(토미 리 존스)도 예상치 못한 미래와 마주한다. 심지어 비정하고 철두철미한 안톤까지도.


그들을 움직인 돈이라는 욕망

이들의 일이 틀어지는 건 비루한 욕망 때문이다. 르웰린은 마약 거래 현장에서 발견한 부정한 돈을 행운으로 여긴다. 트레일러 생활을 하면서도 일찍 은퇴한 그는 돈이 궁하다. 안톤은 의뢰받은 살인청부가 목적이 아니라 거금을 차지하기 위해 르웰린의 뒤를 쫓는다. 안톤을 저지하기 위해 고용된 또 다른 살인청부업자 칼슨(우디 해럴슨) 역시 돈을 타깃으로 삼는다. 셋 모두 각기 다른 삶을 살았고 다른 가치관을 지녔으나 욕망 앞에선 살인을 주저하지 않는다.

영화는 1980년 멕시코와 인접한 텍사스를 배경으로 한다. 1970년대를 거치며 미국 사회는 황폐화했다. 미국은 베트남전에서 역사상 첫 패배라는 굴욕을 경험했고, 석유 파동으로 심각한 경제난을 겪었다. 풍요로운 세계 1등 국가라는 신화는 무너졌다.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던 미국인들의 마음은 각박해졌고 돈에 매달리게 됐다.

돈에 대한 집착은 르웰린과 안톤, 칼슨 등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게 아니다. 르웰린은 미국과 멕시코 국경선을 넘을 때 총상을 감추기 위해 미국 젊은이에게 500달러를 주고 점퍼를 산다. 르웰린이 또 다른 젊은이에게 마시다가 만 맥주를 달라고 하자 젊은이는 얼마를 줄 거냐고 묻는다. 르웰린이 멕시코에서 피 묻은 100달러를 건네자 마리아치는 마다하지 않는다. 안톤은 사람들을 죽일지 말지를 동전 던지기로 결정한다. 영화 후반부에선 곤경에 처한 안톤이 소년에게 셔츠를 벗어 달라고 100달러를 내밀자 순박한 소년은 손사래를 친다. 하지만 안톤이 자리를 뜬 후 소년은 친구와 돈을 서로 갖겠다며 말다툼을 벌인다. 돈에 대한 사람들의 천박한 인식이 드러나는 장면들이다. 영화 도입부 황무지의 풍경은 금전에 잠식된 1980년 미국인의 내면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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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지혜로도 예측할 수 없는 삶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늙은 보안관 에드의 넋두리 같은 독백으로 시작한다. “내 나이 스물다섯에 보안관이 됐다… 옛날 보안관은 총을 멀리했다…”라는 그의 말에는 과거에 대한 향수와 더불어 돌변한 세태에 대한 한탄이 스며 있다.

에드가 보기에 세상은 온통 악에 물들어 있다. 사람들은 예전과 달리 “돈과 마약 때문에” 범죄를 서슴지 않는다. 심지어 “요즘 범죄는 딱히 동기가 없(기도 하)다”. 에드는 노인들(!)을 유인해 살해하고 금품을 갈취한 어떤 부부가 고문까지 즐겼다는 신문 기사를 읽고서 혀를 끌끌 찬다. 이전 도덕관념과 세계관으로는 예측할 수 없는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영화 속 노인들은 선하다. 도망치던 르웰린이 급히 잡아탄 차는 노인이 운전한다. 그는 르웰린을 위해 점잖게 한마디 한다. 왜 위험하게 모르는 사람 차를 얻어 타냐고. 안톤이 외딴 도로에서 차량이 고장 난 척하자 도움의 손길을 내민 이도, 다정하게 말을 건네는 상점 주인도 노인이다. 이들은 선의를 보였다가 위기에 빠진다. 르웰린의 장모는 낯선 이의 친절에 감동해 비밀을 누설했다가 가족을 위험 속으로 몰아넣는다. 적어도 화면 속에서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노인은 경험과 지혜를 상징한다. 돈을 절대 가치로 숭배하는, 변질된 세상에서 경험과 지혜는 소용이 없다. 에드는 “(세상이) 점점 막되어 가는데 손쓸 수가 없어” 조기 은퇴를 결심한다. 그는 황무지 트레일러에서 고양이들과 사는 사촌 형을 만나러 간다. 에드는 말한다. “예전에는 나이 먹으면 하느님이 돌봐 주시겠지 했죠. 헛된 바람이었어요.” 사촌 형이 답한다. “그 맘고생 너만 겪는 거 아냐… 오는 변화는 막을 수 없어… 접을 건 접어야지.” 에드의 삼촌이 살해됐던 1909년에도 악은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소름 끼치는 악이었을까. 1980년 미국과 비교해 지금 이곳의 우리는 배금주의에서 자유로운가. 에드의 대사대로 “인간과 소의 싸움도 결과를 모를” 정도로 삶은 예측 불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있다. 우리의 삶이 물질이라는 악령에 사로잡혔다는 거다. 그런 세상에는 노인뿐 아니라 그 누구를 위한 나라도 없다고 영화는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


라제기 한국일보 영화 전문기자

1999년 한국일보 입사 후 편집부와 사회부, 국제부 등을 거치며 엔터테인먼트 팀장과 문화부장, 신문에디터로 일했다. 2004년부터 영화를 취재해 왔으며, 영국 서식스대 대학원에서 영화학을 공부했다. 저서 『질문하는 영화들』 『말을 거는 영화들』, 역서 『할리우드 전복자들』로 영화를 사랑하는 독자들과 소통하는 한편, 뉴스레터 ‘영화로운’으로 매주 구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사진 제공 (주)해리슨앤컴퍼니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9월 17일(수) 오후 2시 미디어홀에서 성남미디어센터 상영작으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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