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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AI와 창작의 미래: AI와 콘텐츠 산업, 충돌과 공존

  • 작성자 사진: artviewzine
    artviewzine
  • 7월 29일
  • 5분 분량

최종 수정일: 7월 30일

몇 달 전, 소셜미디어 타임라인과 메신저 프로필 사진이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 지브리 화풍으로 그려진 인공지능(AI) 생성 이미지로 가득 찼던 일이 기억날 것이다. 오픈AI가 새로 선보인 이미지 생성 기능을 알리기 위해 기존 사진을 지브리풍으로 재구성한 이미지들을 선보였는데, 뜻밖의 폭발적 반응을 얻은 것이다. 샘 알트먼 오픈AI CEO가 “(지브리풍 그림 생성 요청을 처리하느라 AI 모델을 가동하는) GPU가 녹아 나고 있다”라고 우는소리를 할 정도였다.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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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명작 애니메이션을 만든 지브리 스튜디오는 애니메이션 대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활동 근거지이기도 하다. 그들의 작품을 보며 자란 많은 사람들이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에 좋은 추억을 갖고 있다. 지브리 작품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캐릭터 디자인과 아름다운 이야기는 누구나 좋아한다. 마치 자신이 지브리 세계관 속에 들어간 듯한 프로필 이미지를 만들어 주는 오픈AI의 이 기능을 사랑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듯하다.


미야자키 감독이 소외된 지브리 이미지 열풍

하지만 아마 미야자키 감독 본인은 싫어하지 않을까? 오픈AI가 만든 지브리 느낌 이미지들이 쏟아져 나오자 지브리 팬들은 “정당한 저작권 대가를 치르지 않고 AI를 학습시켰다”라거나 “아무리 비슷하게 그려도 원작의 영혼을 담아낼 수 없다” 등의 주장으로 불편한 심기를 비쳤다. 정작 미야자키 감독 본인은 이 ‘지브리 현상’에 대해 가타부타 말 한 적이 없다. 다만, 그는 2016년 AI가 생성한 이미지에 대해 “나는 이런 것들을 흥미롭다고 생각할 수 없다”라며 “이런 것을 만드는 사람은 고통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 나는 완전히 혐오스럽다”라고 말한 바 있다.

1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 그가 여전히 같은 생각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그간 AI 분야엔 놀랄 만한 발전이 있었고, AI가 만든 이미지는 기교로는 충분히 써먹을 만한 수준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AI는 ‘고통이 무엇인지 모른 채’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듯하다.

‘영혼이 담겨 있지 않은’ ‘인간만이 표현할 수 있는 미묘한 감성을 드러내지 못하는’ AI 생성물들이 인간의 ‘진정한’ 창작물을 대체할 일은 앞으로도 없을까? 아니면 단지 AI 기술이 아직 충분히 발전하지 않았을 뿐, 인간 고유의 창의성이나 예술성은 그저 자만에 불과한 것일까?

이런 곤란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기도 전에 기술은 이미 앞서 나가고 있다. 디자인이나 영상, 광고, 마케팅 콘텐츠 등 창작의 영역으로 간주되던 분야에서 AI는 인간을 빠르게 대체 중이다. 사실 오늘날 많은 창작물은 ‘영혼을 담지 않아도 충분한’ 수준에서 활용 또는 소비되고 있다. 인간의 고뇌나 차별적 감성이 묻어나는 창작물은 순수 예술 작품처럼 소수만 향유하는 희귀한 영역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기술에 의해 창작 작업이 대체되고, 창작의 가치는 떨어지는 듯 보이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AI가 만든 심슨 가족과 픽사 스타일 그림 © shutterstock
AI가 만든 심슨 가족과 픽사 스타일 그림 © shutterstock

빅테크 vs 창작자, 법정에서 만나다

이런 흐름을 돌려놓을 수 있을까? 창작자들은 초거대 AI 모델을 개발하는 빅테크 기업들에 저작권 소송 등을 통해 저항하고 있다. 이들 기업이 동의도 없이 창작물을 가져가 AI 모델을 학습시켰다는 것이다. 작가나 디자이너 등에 의한 비슷한 소송이 잇달아 제기되는 가운데, 지난 6월엔 미국 월트디즈니 컴퍼니와 컴캐스트(Comcast)가 AI 이미지 생성 기업 미드저니를 고소했다. 컴캐스트는 유니버설스튜디오 등을 소유한 미국 거대 미디어 기업이다. 이들은 미드저니가 <스타워즈> <심슨 가족> 같은 인기 영상 콘텐츠를 긁어 가 AI 모델 학습에 활용해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으며, 저작권 침해 건당 15만 달러(약 2억4000만 원)의 배상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뉴욕타임스> 등 주요 언론사들은 자신들의 기사를 긁어 가 AI 모델을 학습시킨 오픈AI 등 AI 기업을 저작권 침해로 고소했고, 세계 최대 인터넷 커뮤니티 레딧은 자사 데이터의 활용을 원하는 AI 기업들에서 데이터 사용료를 받기 시작했다. 게티이미지 같은 스톡 이미지 기업들도 생성 AI 기업들과 분쟁을 벌이고 있다. 생성형 AI를 개발하는 기술 기업들은 이에 맞서 자신들의 외부 콘텐츠 및 데이터 사용이 ‘공정 이용(fair use)’이라 주장한다. 공정 이용은 교육이나 연구, 언론 보도 등의 목적으로 저작권자 허락 없이 저작물을 사용할 수 있는 경우를 말한다.


기술 기업들의 ‘절반의 승리’

최근 미국 법원에서 창작자와 AI 기업 사이 저작권 소송의 판결이 일부 나왔다. 논픽션 작가 3명이 AI 모델 ‘클로드’ 개발사 앤스로픽에 대해 제기한 소송, 코미디언 사라 실버먼과 퓰리처상 수상자 앤드루 션 그리어 등 창작자 13명이 페이스북 운영사 메타에 제기한 소송이다. 이들 소송의 판결은 AI와 창작자, 저작권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잘 보여 준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두 경우 모두 AI 기업의 ‘공정 이용’이 인정됐다. 기술 기업의 승리이다. 하지만 완전한 승리라고 하기엔 애매하다.

법원은 앤스로픽이 책을 이용해 클로드를 학습시킨 것은 책을 대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책에서 학습한 내용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라고 보았다. 판사는 이 과정이 “철저히 변형적(quintessentially transformative)”이라고 판단했다. 생성형 AI 챗봇은 학습한 책의 내용을 그대로 사용자에게 뱉어 내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변형한 내용을 생성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책을 읽은 독자가 내용을 바탕으로 새롭게 자기만의 콘텐츠를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았다.

다만 법원은 앤스로픽이 클로드의 학습 자료를 구한 방식 - 저작권을 침해해 책들을 올려 둔 해적판 사이트에 접근해 AI를 학습시킨 것 - 은 문제라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앤스로픽은 학습 데이터에 정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 해적판 도서를 이용한 것에 대해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당할 가능성이 생겼다.

앤스로픽 재판 사흘 뒤 판결이 나온 메타 소송에선 저작권자들이 자신의 피해를 제대로 입증하지 못한 것이 결과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저작물을 활용해 나온 결과물이 저작권자에게 실질적 피해를 입히거나 저작물과 직접 경쟁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은 공정 이용 여부 판단에 중요한 기준이다. 법원은 소송을 제기한 저작권자들이 메타의 LLM(Large Language Model, 대규모 언어모델) ‘라마(LLaMA)’로 인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구체적으로 입증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메타 역시 자사 LLM이 저작권자의 콘텐츠를 학습해 전적으로 다른 결과물을 내놓는다고 주장했다. AI는 여러 소설을 학습한 결과를 바탕으로 사용자 질의에 대해 본래의 소설과는 다른 결과를 생성한다는 것이다. 메타는 “이는 요리책을 보고 요리법을 익히는 셰프가 요리책과 경쟁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셰프는 레시피가 아니라 요리를 만든다”라고 주장했다.

판사는 이 판결이 “이번 사건에만 국한된 것이며, 향후 메타와 다른 저작권자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분쟁에 대해 면책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메타가 AI 모델 학습을 위해 저작물을 사용하는 방식이 공정 이용이라고 판결한 것이 아니라, 이번 사건에서는 원고가 제대로 피해를 주장하지 못해 원고의 의견을 수용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비슷한 시기, 비슷한 성격의 소송에 대해 나온 유사하면서도 약간은 결이 다른 결과는 생성형 AI와 저작권, 창작에 대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 오늘날의 조금은 혼란스러운 현실을 반영하는 듯하다. 또 AI가 저작권자의 콘텐츠를 데이터 삼아 학습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그 콘텐츠에 접근하는 과정 역시 정당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단지 ‘연구를 위해’라는 명목으로 저작권자의 노력을 취할 수는 없다는 것을 기술 분야에 알리면서, 동시에 저작권 보호는 새로운 지식과 창작의 확대 재생산을 활성화하는 것이 근원적 목적임을 상기시킨다.


AI가 창작에 기여하게 하려면

그렇다면 AI는 새로운 지식과 창작의 확대 재생산에 기여할 수 있을까? 구글과 네이버로 대표되는 검색은 트래픽을 창작자의 웹사이트로 보내 줌으로써 광고 수익이나 판매, 인지도 향상 등의 유익을 안겨 줬다. 대형 방송사나 신문사 등 기존 콘텐츠 게이트키퍼들의 영향력을 무너뜨림으로써 혼란을 일으키기도 했으나, 전체적으로 더 많은 사람과 조직에 더 많은 기회를 주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 질문에 답하고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AI 서비스는 사용자를 어디에도 보내지 않는다. 자체 서비스 안에 머물게 할 뿐이다. 창작자는 시간과 돈, 노력을 들여 만든 콘텐츠로 AI를 학습시켜 결국 AI가 자신의 밥그릇과 창작 기반을 빼앗아 가는 것을 지켜봐야 할 처지가 되리란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온라인 조사 회사 시밀러웹에 따르면, 챗GPT 등장 이후 최근 3년간 <허핑턴포스트> <비즈니스인사이더>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매체 트래픽이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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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AI와 창작자가 공존하고, 나아가 윈윈하는 구조를 만들려는 고민이 한창이다. 가장 먼저 등장한 아이디어는 데이터 학습에 대해 대가를 받는 것이다. 세계 최대 인터넷 커뮤니티 레딧(Reddit)은 구글 등 주요 AI 기업들에 데이터 학습을 허용하고 대가를 받는 계약을 맺었다.

협상력이 강한 거대 콘텐츠 기업 외에 소규모·개인 창작자를 위한 대안도 등장하고 있다. 클라우드 방식으로 웹사이트 보안·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클라우드플레어(cloudflare.com)는 AI 모델의 학습을 위해 데이터를 긁어 가는 크롤러의 접근 허용 여부를 웹사이트 운영자가 결정하고, 수집하는 데이터에 가격을 매길 수 있는 새로운 마켓플레이스를 선보였다. 온라인 공간 속 저작물의 활용 범위를 창작자 스스로 결정해 공개할 수 있는 규범을 만든 크리에이티브커먼스(CC)도 AI 시대에 맞춰 저작권에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기 위한 ‘CC 시그널’이란 규약을 새로 제시했다. 인터넷의 개방성과 AI를 위한 데이터 수요 사이의 균형을 맞춘다는 목표다.


인터넷 커뮤니티 레딧은 주요 AI 기업들에 데이터 학습을 허용하고 대가를 받는 계약을 맺었다  © shutterstock
인터넷 커뮤니티 레딧은 주요 AI 기업들에 데이터 학습을 허용하고 대가를 받는 계약을 맺었다 © shutterstock

이러한 시도들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 아직 예측하기는 어렵다. 다만 우리가 MP3 음악 파일과 인터넷 검색이 등장했던 시기의 혼란을 극복해 온 것처럼, AI 시대의 혼돈 속에서도 길을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할 뿐이다. 시장에서 널리 소비되는 일상적·전형적 콘텐츠는 이제 AI의 생산성을 따라가기 힘들 것이고, 이는 현재 창작자의 많은 일자리를 앗아 갈 전망이다. 이런 구조조정의 물살을 헤치고 살아남을 창작자의 역할이 ‘AI 모델에 새롭고 신선한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우울한 미래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만의 독창적인 관점과 표현을 제시하는 것, 그것 외에 예술의 다른 역할은 없다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한세희 IT 칼럼니스트

전자신문 기자와 동아사이언스 데일리뉴스 팀장, 지디넷코리아 과학 전문기자를 지냈다. 기술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변해 가는 모습을 항상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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