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기 2] 조성진 피아노 리사이틀: 온전한 거장의 시선을 담다
- artviewzine
- 7월 29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7월 31일
6월 15일(일) 오후 3시,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
연주자라면 누구나 자신이 구상한 음악적 콘셉트나 메시지가 청중에게 정확히 전달되기를 원한다. 만약 오랫동안 고민하며 준비한 프로그램이 특정한 색채를 띠고 있다면 연주자가 지니는 전달 의욕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2025년 초여름을 장식한 조성진의 독주 프로그램은 두 가지로, 올해 탄생 150주년을 맞은 모리스 라벨의 피아노 솔로 작품 전곡과 다른 작곡가들의 프로그램으로 짜였다. 특히 6월 15일 성남아트센터 프로그램에서는 ‘자연’과 ‘확장’이라는 두 가지의 주제와 그에 걸맞은 독자적인 색채감이 두드러졌다. 리스트, 베토벤, 버르토크로 이어진 전반부에서는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 속 부드러움과 거친 질감을 극한으로 대비시키는 흥미로운 장면들을 만들어 냈고, 브람스의 대작 소나타를 연주한 후반부에서는 젊은 브람스가 상상하고 추구했던 오케스트라적 음향의 새롭고 흥미로운 시각을 엿볼 수 있었다.
글 김주영 피아니스트,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 사진 최재우

첫 곡으로 택한 리스트의 모음곡 <순례의 해> 중 3권 ‘에스테장의 분수’는 이 곡집을 실질적으로 대표하는 곡이자, 인상주의의 효시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리스트의 취향을 명확히 나타낸 명곡이다. 높낮이와 세기에 따라 달라지는 물의 움직임과 함께 작품 전체를 감싸고 도는 종교성에 대한 표현을 조성진은 깔끔하고 유려한 흐름과 군더더기 없는 악상으로 스피디하게 연주했다. 술술 흘러가지만 피상적으로 들리지 않고 뒷맛이 오래 남는 것은 효과적인 연출을 위해 사전에 계획한 구성의 맺고 끊음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감상자들의 음악적 포만감은 이로써 자연스럽게 채워졌다. 이어지는 베토벤의 소나타 15번 ‘전원’은 선곡 이유부터 궁금했는데, 조성진의 자세는 시종 편안하고 여유로운 진행을 통해 작품 속에 나타나는 변화무쌍한 악상들을 모두 포용하는 모습이었다. 표제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연주자가 작품에 가진 생각을 읽을 수 있었는데, 지나치게 심각하지 않아 개운했던 2악장이나 즐거움 가운데 적당한 명인기를 섞어서 소화해 낸 4악장이 하이라이트였다.
분위기는 버르토크의 모음곡 <야외에서>를 통해 일순 전환됐다. 작곡가의 피아노작 중 유독 표제성이 강한 다섯 곡의 모음곡을 조성진은 아방가르드적 색채와 비르투오시티가 공존하는, 커다란 기조 안에서의 통일성을 염두에 두고 해석했다. 첫 곡인 ‘드럼과 파이프로’에서는 거친 질감의 음향이 난무했지만 정돈된 음상으로 정리되어 듣기에 무리가 없었고, 두 번째 ‘바르카롤라’와 ‘뮈제트’에서는 유희적인 성격이 전면에 드러나는 버르토크 특유의 무조성이 돋보였다. 전곡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네 번째 ‘밤의 음악’에서는 섬세한 음색 조절을 통해 개구리의 울음소리와 멀리서 들려오는 교회의 합창 그리고 어둠이 주는 신비스런 요소들을 적절히 배열해 냈다. 마지막 곡 ‘추격’은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복합 리듬의 향연을 통해 객석의 청중들을 마치 질식 상태로 몰아가는 듯한 에너지를 선보였다.

© 최재우
우리가 몰랐던, 브람스의 ‘젊음’을 그려 내다
후반부에 무대에 올려진 브람스의 소나타 3번은 작곡가의 초기작 중 높은 짜임새와 완성도 있는 구성으로 인기 있는 곡이다. 조성진의 연주를 듣고 새삼 깨달은 것 하나가 작품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젊음’에 대한 요소였다. 브람스 약관의 나이에 만들어진 곡이니 당연한 사실임에도, 그간 연주자나 감상자 모두 브람스의 한정된 이미지에 빠져 ‘심각함’이나 ‘쓸쓸함’, 혹은 ‘텁텁함’에 강박처럼 사로잡혀 있었는지 모른다. 조성진의 해석은 맑고 솔직하며 탄력 있는 기교를 전면에 내세운, 알기 쉽게 풀어낸 브람스였다. 물론 단순하게 악보 그대로를 구현한 것은 아니며, 지금 나타난 악상 표현들이 있기까지 수많은 경우의 수를 따져 왔음도 분명하다. 비르투오소적으로 처리된 1악장의 여러 악상들은 브람스의 오케스트라적 아이디어보다는 피아니스트로서의 관점으로 바라본 해석이었으며, 장대한 구성의 2악장은 긴 호흡을 강조하기보다는 아기자기한 서정성과 투명한 색채감에 초점을 맞췄다. 피아니스트의 결단력과 집중이 요구되는 스케르초 악장은 넉넉한 기교와 절제된 다이내믹으로 마무리되었으며, 간주곡격인 4악장은 소규모임에도 그 안에서 환상곡적인 성격을 끄집어낸 부분이 놀라웠다.
피날레에서 조성진은 비로소 브람스의 오케스트레이션을 염두에 둔 모습을 보였는데, 차분하면서도 교묘한 음향적 빌드업이 귀에 들어왔다. 프레이징과 대규모 섹션들의 전환이 딱딱하거나 직선적이지 않고 부드럽게 이어졌는데, 최후에 이르러 감상자들은 최대한의 자연스러움으로 젊은 브람스가 설계한 드넓은 스케일과 만나게 되었다. 거대한 작품을 온전히 하나의 시선으로 파악해 내는 대가의 능력까지 갖춘 조성진의 무대였기에 가능한 성과였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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