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더블베이시스트 유시헌: 묵직하게, 그러나 화려하게
- artviewzine
- 7월 29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7월 31일
‘더블베이스의 파가니니’로 불렸던 19세기 보테시니부터 현대의 게리 카(Gary Karr,1941~)와 리나트 이브라기모프(Rinat Ibragimov,1960~2020), 에드가 마이어(Edgar Meyer,1960~)에 이르기까지, 더블베이스에 솔로 악기의 무한한 가능성을 불어넣은 선구자들은 시대를 이어 꾸준히 등장해 왔다. 국내 클래식 음악계의 상황은 어떨까? 지난 10월 이탈리아 보테시니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 1위를 차지한 스무 살의 더블베이시스트 유시헌은 실로 오랜만에 국내 음악계에 등장한 더블베이스의 라이징 스타다. 9월 18일 마티네 콘서트 협연을 앞두고, 유시헌에게 솔로 악기로서 더블베이스의 매력과 가능성에 대해 물었다.
글 남소연 성남문화재단 문화예술교육부 과장

마티네 콘서트에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지난해 10월부터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학업을 이어 가며 연주 활동을 병행하고 있어요. 음악의 본고장인 만큼 다양한 연주를 접하면서 영감을 얻으려 노력하는 한편, 독일어 공부에도 열심히 시간을 쏟고 있죠. 6월에는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열린 2025 ISB 국제 더블베이스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 1위라는 성과도 거뒀고요. 격년 개최 콩쿠르이자 컨벤션인데,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더블베이시스트들이 모이는 축제이기도 해요. 콩쿠르뿐 아니라 여러 음악가들과 교류할 수 있던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지난 10월 이탈리아 보테시니 콩쿠르에서 1위 및 25세 이하 특별상을 수상하셨지요. 한국인 연주자로서는 가장 우수한 성과였는데요, 당시 좋은 결과를 예상하셨나요?
그 순간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려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고, 그저 매 라운드를 잘 마칠 수 있도록 기도했죠. 대회를 준비하면서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기대하지 말자’를 외쳤거든요.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순간 압박감에 제 음악을 보여 주지 못하고 실수하지 않는 것에만 집착하게 되더라고요. 그 순간의 나를 믿는 수밖에 없다고 쉼 없이 다독였던 것 같아요.
더블베이스는 첼로나 바이올린처럼 자주 조명받는 악기는 아니지만 그만큼 무대에 나설 때 존재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콩쿠르 당시에도 저만의 음악을 잘 보여 줘야겠다는 마음이었어요. 결과적으로 이렇게 큰 상, 특히 동양인 최초 1위 수상이라는 결과를 얻게 되어 정말 의미가 크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콩쿠르 현장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며칠 동안 머물면서 대회를 치르셨는지요?
1~3차 라운드와 결선 순이었어요. 콩쿠르 전 보테시니가 태어나고 자랐던 도시 크레모나를 둘러보면서 그가 어떤 환경에서 수많은 더블베이스 작품을 만들었는지 알게 됐죠. 거리에서 마주치는 이탈리아인의 느긋한 일상과 풍경들은 음악에 대한 이해는 물론 긴장과 불안을 떨치는 데 도움이 됐어요. 꼭 연습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험 속에 작곡가와 곡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감정적인 접근 방식을 알아 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던 것 같아요.
1주일 동안 4회 차 경연을 치르다 보니 준비곡이 많아서 힘들었지만, 이 곡들을 연주하지 못하고 떠난다면 정말 아쉬울 것 같아서 독하게 마음을 먹었죠. 경연 주간엔 거의 매일 비가 와서 빗속에 악기를 들고 다녔던 것도 추억이네요.
파이널 때에는 어떤 마음으로 임하셨나요?
파이널은 오케스트라 협연이었는데 리허설 당시엔 호흡이 맞지 않아서 엄청 긴장했어요. 다만 그 덕분에 실제 연주에 어떻게 임해야 하는지 되새길 수 있었고, 본 무대에서는 좋은 호흡으로 그 순간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특히 3악장에서는 모든 긴장이 풀리면서 정말 신나게 연주했던 기억이 나요.

처음 더블베이스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 쭉 계속하게 되신 매력은 무엇인가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접하게 됐어요. 취미로 시작했는데, 중후한 울림과 소리에 빠져 지금까지 오게 됐죠. 더블베이스의 커다란 울림이 홀을 꽉 채우고 제 몸을 울리게 하는 느낌이 정말 좋아요.
더블베이스에 대한 애정과 별개로 힘든 점도 있으신가요? 이동의 불편함이나 자세로 인한 피로도와 같은 현실적인 부분들이요.
물리적인 어려움이죠. 악기가 크다 보니 항상 발생할 수 있는 예기치 못한 상황들이 제일 힘든 것 같아요. 기차나 트램에서 눈치를 볼 때도 있고, 특히 비행 수속이 제일 까다로운 편입니다. 이번에 미국 ISB 콩쿠르에 참가하고 빈으로 돌아오는데, 악기를 실어 주지 않아 비행기를 놓치기도 했어요. 많은 체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몸 관리도 필수죠. 무엇보다도 아직 대중에게 더블베이스 솔로 레퍼토리가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악기의 진짜 매력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늘 고민하게 됩니다.
2022년 서울대 음대 조기 입학 후 지금은 빈 국립음대 학사 과정에 재학 중이시죠? 유학을 결심하신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2021년 운 좋게 줌(ZOOM) 마스터클래스 오디션에 합격해서 도미니크 바그너(Dominik Wagner) 교수님의 존재를 알게 된 뒤, 바로 유학 결심이 섰죠. 바그너 교수님께서 빈으로 임용되셔서 자연스럽게 빈으로 가게 되었는데, 음악의 본고장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느낄 수 있어서 참 감사해요.
솔로 악기로서 더블베이스의 매력이 잘 드러나는 곡을 추천해 주신다면요?
먼저 제가 최근 공부를 시작한 헤르틀(František Hertl, 1906~1973)의 더블베이스 소나타인데요, 체코의 민속음악을 녹여 낸, 멜로디가 정말 아름다운 곡입니다. 또 보테시니의 모든 곡들을 꼽고 싶어요. “보테시니가 없으면 베이스가 존재하지 않았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베이스를 위한 멋진 곡들을 여럿 작곡했는데, 파가니니처럼 현란한 테크닉을 보여 주는 곡들도 많아 추천합니다. 특히 보테시니가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을 모티프로 쓴 <알라 멘델스존(alla Mendelssohn)>은 꼭 들어 보셨으면 해요.
더블베이스의 레퍼토리 확장이나 다른 장르와의 협업에 대한 욕심도 있으신지요?
베이스 곡들이 많지 않다 보니 그리그와 브람스 첼로 소나타,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처럼 첼로 작품도 자주 연주해요. 이번 미국 콩쿠르에서도 비버의 바이올린 작품 <파사칼리아>를 연주했죠. 더 다양한 악기의 곡들을 소화하고 싶은 욕심도 있지만, 먼저 현존하는 모든 베이스 작품을 완벽하게 공부하고 나만의 음악으로 보여 드리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9월 18일 마티네 콘서트에서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과 함께 디터스도르프의 더블베이스 협주곡 E장조를 협연하시지요? 어떤 작품인가요?
피아니스트에게 모차르트 소나타를 잘 연주하기란 정말 어렵듯이, 더블베이시스트에게는 디터스도르프 협주곡이 그런 작품입니다. 화려한 기교를 과시하기보다는 악기 본연의 성격과 정교한 음악적 구조가 돋보이는데요, 빠른 부분과 더블스톱, 활의 섬세함 등 다양한 기술이 과장 없이 자연스레 음악에 스며 있어요. 그래서 연주자로서도 ‘어떻게 더 표현할 것인가’를 계속 질문하게 만드는 곡이죠. 더블베이스와 섬세한 대화처럼 주고받는 오케스트라 반주 역시 매력적입니다. 특히 1·3악장에서 주제와 동기가 서로 넘나드는 부분에서는 고전주의 양식이 잘 드러나고, 솔로와 오케스트라가 긴장과 이완을 만들어 내는 모든 부분들이 곡의 큰 매력입니다.
또 이번 무대에서는 18세기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튜닝(Viennese Tuning)으로 작곡 당시의 소리를 최대한 표현하려고 해요. 원래 솔로 튜닝이 AEBF#이라면 비엔나 튜닝은 AF#DA를 사용하는데요, 운지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어렵긴 하지만 당대의 소리를 재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기뻐요.
더블베이스 연주자로서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다양한 무대와 배움을 통해 저만의 소리와 음악을 더욱 확실하게 만들어 가고, 궁극적으로는 더블베이스의 깊은 표현력과 감정선을 더 많은 청중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제 연주를 듣고 누군가 더블베이스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면, 악기를 연주하면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보람이 아닐까 해요. 단순히 ‘연주자’로 머물지 않고 더블베이스의 새로운 길을 열어 가는 사람이 되는 것이 제 꿈입니다.
9월 18일(목) 오전 11시, 성남아트센터 마티네 콘서트 ‘오스트리아 음악의 뿌리를 찾아서’에서 유시헌의 연주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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