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세계의 예술+기술 융합 축제: 도시의 표면을 수놓는 빛, 내면을 울리는 진동
- artviewzine
- 7월 29일
- 6분 분량
최종 수정일: 7월 30일
현대 도시는 거대한 예술의 전시 공간이자 무대이다. 건물 외벽을 가득 채운 스크린에는 가상의 파도가 치고, 밤이 되면 프로젝션 매핑이 도시의 표면을 춤추게 한다. 동시에, 그 눈부신 표면의 스펙터클 너머에서는 도시의 철학과 정체성이 숨 쉰다.
그 이면을 드러내고 약동하는 표면과 접목하여 또 다른 스펙트럼을 펼치는 장이 있다. 바로 기술과 예술이 만나는 축제이다. 이들이 펼치는 새로운 접면은 도시의 겉과 속을 동시에 비추는 특별한 순간이다. 도심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디어 아트 축제는 한편으로는 화려한 볼거리로 도시 브랜드를 빛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도시민의 내면적 경험과 공동체 의식을 일깨운다.

린츠의 랜드마크인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센터 © Shutterstock
이번 지면에서는 필자가 2022년 <아트뷰>에서 ‘도시의 증강된 문화적 표면으로서의 미디어 파사드와 도시 브랜딩’을 탐구했던 시선 위에, 2025년의 관점으로 세계 곳곳의 예술+기술 융복합 축제들을 살펴보려 한다. 이들은 각기 다른 문화와 맥락 속에서 빛과 데이터, 감성과 철학으로 현대 도시의 얼굴과 속내를 그려 내고 있다.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 기술과 문화가 춤추는 오스틴의 봄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매년 3월 열리는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는 음악과 영화, 기술이 한데 어우러지는 융복합 페스티벌의 대명사이다. 1987년 음악 축제로 출발한 이 행사는 이제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수십만 명이 찾는 글로벌 행사로 성장했다. 축제 기간에 도시는 거대한 미래 실험실이 되고 거리와 공연장, 갤러리들은 혁신적인 브랜드 부스와 예술 설치물로 가득 채워진다. SXSW는 오랜 호흡의 맥락과 그렇게 쌓아올린 풍경을 토대로 수십 년간 오스틴을 글로벌 무대에 올려놓으며, ‘음악·영화·기술 분야의 다음 큰 흐름을 볼 수 있는 곳’으로서 도시의 위상을 높였다. ‘Keep Austin Weird’라는 도시 모토답게, 이 축제는 비전과 실험 정신으로 도시를 특별하게 만드는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SXSW의 최근 동향을 살펴보면 단연 인공지능(AI)과 실감기술(XR)이 전면에 떠오른다. 2024년 SXSW에서는 ‘올해 가장 뜨거운 주제는 AI’라는 말이 과언이 아닐 만큼 매일같이 생성형 AI와 미래 미디어에 관한 세션이 열렸다. 관람객들은 XR 전시관에서 메타 퀘스트·애플 비전 프로와 같은 최신 헤드셋을 쓰고 몰입형 VR/AR 경험을 체험했고, 가상의 빛과 소리가 어우러진 360° 공연은 관객을 황홀경으로 이끌었으며, 가상 K-Pop 공연에서는 눈앞의 홀로그램 아이돌을 피하려 한 걸음 물러설 만큼 현실같은 경험을 선사했다.
세계 각국의 문화·기술 대표단이 팝업 하우스를 열어 자국의 혁신 문화를 선보였고, 한국 역시 한국공동관을 운영하며 다양한 참여자들과 접점을 형성했다. 이러한 글로벌 교류의 장은 SXSW를 세계 창의인재들의 만남터로 부각시키며 도시 브랜드에 힘을 더했다. 이렇게 SXSW는 최첨단 기술과 창의적 예술, 비즈니스를 아우르는 현대 도시 축제의 복합적 위상을 보여 주고 있다. 밤하늘을 수놓는 드론 쇼와 거리 한복판의 개방형 토론 세션, 전 세계의 기술 및 문화예술 대표 주자들과 관객이 어우러지는 네트워킹 파티까지, SXSW의 풍경은 오스틴이라는 도시의 창조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거울로서 기능한다.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오스트리아 린츠)
: 예술·기술·사회가 빚어낸 미래도시
아르스 일렉트로니카(Ars Electronica) 페스티벌은 예술+기술의 융복합 축제의 대명사이다. 한때 철강 산업으로 부흥하다 산업 구조 개편으로 쇠락했던 오스트리아의 소도시 린츠(Linz)를 활성화시키고 미디어 아트의 메카로 거듭나게 한 성공 사례이자 핵심 원동력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이 페스티벌이다. 1979년 첫 시작 이래 4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이 축제는 ‘예술·기술·사회’라는 키워드 아래 지역의 역사성과 현대적 감각을 잇는 콘텐츠로 도시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했고, 예술+기술의 실험 정신을 도시 브랜드의 핵심 가치로서 부상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20년대 들어 아르스 일렉트로니카는 AI와 기후위기 등 인류가 직면한 새로운 쟁점을 예술로 사유하며 사회 속 기술과 예술의 관계망과 그들의 역할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2024년 축제의 주제는 ‘HOPE – who will turn the tide’였는데, 기술 발전 속의 희망과 그 이면의 절망을 역설적으로 조망하며 복합적인 미래의 탐색을 모색하는 철학적 물음을 던졌다. 올해 페스티벌의 주제는 ‘PANIC – yes/no’로, 오늘의 시스템 충격과 긴급성, 불안, 변혁의 가능성과 집단적 감정 대응에 대한 탐구의 방향성을 제안했다. 이처럼 그해의 주제 아래, 세계 100여 개국에서 모인 아티스트·과학자·기술자·기획자들은 첨단 작품과 담론을 선보인다. 관객은 로봇 팔과 함께 춤추는 퍼포먼스나 AI와 관객의 대화로 완성하는 생성 예술 작품 등을 통해 기술과 예술의 경계를 넘어선 경험을 한다. 축제 기간 린츠의 도심은 박물관과 성당, 공장 지대까지도 전시장으로 탈바꿈하고, 시민들 역시 자발적 참가자로서 도시를 활보한다.
페스티벌의 상설 기관인 퓨처랩(Futurelab)은 자체 개발한 기술력을 축제에서 펼치는데, 하늘을 수놓는 거대한 드론 쇼, 공간 전체를 아우르며 의학·역사·문화 콘텐츠를 제안하는 몰입형 시스템은 이들이 선도한 것이다. 또한 이들은 관광청 등 주요 도시 기관과 협력, 시민과 여행자가 직접 자기 도시를 3D 스캔해 공유하는 실험적 시도 역시 진행했다. 과거의 산업 도시 린츠가 예술·기술·혁신의 미래도시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축제를 통한 도시 이미지 재창조 그리고 시민참여와 시민의식이 함께했기에 가능했다.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의 불빛이 떠오를 때, 린츠의 밤은 단지 아름답기만 한 것을 넘어,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경이와 성찰로 그곳에 자리한 많은 사람들을 연결한다.

재팬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일본 도쿄)
: 대중과 예술이 만나는 디지털 문화의 축제
일본 문화청이 주최하는 일본 미디어 예술제(Japan Media Arts Festival)는 예술에서 서브컬처까지 다채로운 문화예술 스펙트럼을 아우른다. 1997년 시작되어 매년 도쿄에서 열리는 행사는 디지털 아트, 미디어 아트라 불리는 기술 기반 예술 영역부터 엔터테인먼트, 애니메이션, 만화까지 다양한 문화예술 영역에 대한 작품 공모와 시상을 진행하며, 일본이 자랑하는 예술 지형을 펼친다. 한쪽 전시장에서는 관객의 뇌파를 실시간 분석해 영상으로 투사하는 인터랙티브 아트가 펼쳐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인기 애니메이션의 감독과 관객이 소통하는 토크쇼가 열린다. 예술가와 팬덤이 함께 만드는 축제라는 점에서 관객 참여가 특히 돋보이는데, 어린 학생부터 업계 전문가, 코스프레 차림 젊은이들까지 각양각색의 관객이 모여들고 경계 없는 창작 문화의 장이 펼쳐진다.
수상작 전시는 도쿄 국립신미술관 등 유서 깊은 문화 시설뿐 아니라 거리의 미디어 보드나 지하철 역사 등에서도 이루어져 도시 공간과 일상 속 미디어 아트를 구현하려는 시도가 눈에 띈다. 이러한 노력은 도쿄를 전통과 첨단이 공존하는 도시 브랜드로 부각시키는 데 기여한다. 정부 주도 행사인 만큼 공모와 시상을 통한 신진 예술가의 발굴·지원 역시 활발해서, 페스티벌 출신 작가들은 이를 기반으로 꾸준히 국제 무대에 진출하며 일본 디지털 콘텐츠 산업 위상에 기여하고 있다.
![다채로운 문화예술 스펙트럼을 선보이는 재팬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 Sun and Moon Room, “Sun and Moon Room” Production Team [Japan], Interactive art, 25th Art Division Grand Prize ©https://j-mediaarts.jp](https://static.wixstatic.com/media/7700b5_8f38e38a764f488eb0b791e366c82d0c~mv2.png/v1/fill/w_980,h_648,al_c,q_90,usm_0.66_1.00_0.01,enc_avif,quality_auto/7700b5_8f38e38a764f488eb0b791e366c82d0c~mv2.png)
MUTEK(캐나다 몬트리올 본 축제, 비정기 세계 순회 축제)
: 전자 음악과 디지털 창의 축제
뮤텍(MUTEK)은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시작되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전자 음악·디지털 아트 페스티벌이다. 2000년 첫 행사 이래 몬트리올을 비롯해 멕시코시티·바르셀로나·도쿄 등 여러 도시에서 글로벌 시리즈로 확장 행보를 걸어왔다. 그중 본고장인 몬트리올 뮤텍은 매년 여름 살아 있는 전자 사운드와 실시간 비주얼 아트의 향연을 선사하며 도시 전체를 실험적 클럽이자 갤러리로 변모시킨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AV(Audio Visual) 공연, 낮 시간의 워크숍과 심포지엄 등 예술가·기술 개발자·관객이 함께 어우러지는 몰입형 플랫폼이기도 하다. 본디 몬트리올이라는 도시 자체가 재즈 페스티벌 등 활발한 문화 행사로 유명한데, 뮤텍의 존재는 여기에 첨단 예술 도시의 이미지까지 더했다. 몬트리올이 유네스코 미디어 아트 창의도시에 선정되는 데엔 뮤텍과 같은 축제들의 공헌도 컸던 셈이다.
뮤텍의 융합 포인트는 ‘소리와 빛의 결합’이다. 한밤중 공연장에서는 최첨단 음향 시스템을 통해 전자 음악가들의 즉흥 라이브가 울려 퍼지고, 무대 위 스크린과 레이저 조명은 음악과 실시간으로 호흡하는 추상 비주얼을 쏟아 낸다. 관객은 단순히 음악을 듣는 것을 넘어, 눈앞에서 생성되고 변형되는 데이터 시각화의 세계에 온몸으로 빠져든다. 이처럼 라이브 코딩과 실시간 영상 합성 등의 기술이 예술 표현과 만나 새로운 형태의 공연 예술을 만들고 알리는 데 뮤텍의 역할이 컸다.
뮤텍은 신진 예술가들의 플랫폼이기도 하다. 혁신적인 사운드 아티스트들이 첫 무대를 꾸미고 세계로 발돋움하는 통로가 된다. 관객 참여 측면에서는, 청중이 직접 모듈러 신시사이저 실습을 해보거나, VR 설치 작품 속에 들어가 가상공간을 거니는 등 능동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축제의 일부 행사는 공원이나 옥외 광장에서 열려 도시 공간 자체가 무대가 된다. 이를 통해 일상적인 도시 풍경은 색다른 소리와 이미지를 입히는 공공예술의 장이 되며, 시민들은 익숙한 거리가 얼마나 창조적인 에너지로 가득 찰 수 있는지 체감한다. 뮤텍은 이렇듯 몬트리올을 디지털 창의성의 허브로 각인시키고 있다. 전자 음악 애호가부터 미디어 아트 전문가까지 다양한 방문객들이 문화적 활력을 불어넣고, 이에 힘입은 몬트리올은 다양성과 기술 예술이 숨 쉬는 도시로 국제적 위상을 이어 간다. 뮤텍의 밤을 채우는 전자음과 스크린의 추상 형상들은, 몬트리올이라는 도시가 품은 혁신의 리듬과 맥박일 것이다.

축제, 도시의 가치를 각인시키다
SXSW,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재팬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 뮤텍. 이들은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탄생했지만, 모두 예술과 기술의 조우가 만든 도시의 새로운 표정을 보여 준다. 축제가 열리는 며칠 동안 도시는 마치 거대한 미디어 파사드가 된 듯 화려하게 빛나지만, 그 빛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시대와 도시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예술가와 공학자, 관객과 시민이 한데 어울려 만들어 낸 집단의 경험 속에서, 우리는 현대 도시가 직면한 쟁점들을 놀이와 예술로 풀어내고 함께 미래를 상상한다. 도시 브랜드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축제들은 단순한 관광 이벤트를 넘어, 도시가 추구하는 가치와 정체성을 세계에 각인시키는 상징적 미디어로 작용한다. 오스틴은 SXSW로 창조적 스타트업 도시의 이미지를, 린츠는 아르스 일렉트로니카로 예술·기술 선도 도시의 이미지를 확고히 했다.
국내의 경우 서울시가 주최하는 기술과 예술 융합 표방 축제 서울라이트(SEOUL LIGHT), 기술 기반의 창제작 표방과 시민 접점 형성을 지향하는 파라다이스 아트 랩 페스티벌(Paradise Art Lab Festival) 등 지자체와 민간 운영 축제도 풍부하게 진행되고 있다. 아시아에서도 비디오 아트에서 시작해 테크와 예술의 연계 활동으로 확장한 ‘OK. Video–인도네시아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 디지털 아트와 전통융합을 내세우는 태국 최대 디지털 아트 페스티벌 TDAF(Thailand Digital Arts Festival), 기술과 예술의 융합을 표방하며 갓 출범한 하이난 동남 테크놀로지&아트 페스티벌(Hainan Southeast Technology & Art Festival) 등 다양한 축제를 만날 수 있는데, 기술과 연계한 페스티벌이 각자의 도시에서 밝게 명멸하며 활기를 순환시키는 장면은 그 유효성과 당위성을 한 층 강조한다.
그러나 이 축제들의 진정한 가치가 비단 외부에 드러나는 표면의 반짝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막이 내리고 축제의 불빛이 사그라든 뒤에도, 도시에 남는 것은 내면에 새겨진 변화이다. 축제를 통해 촉발된 창의적 영감은 지역의 스타트업을 탄생시키고, 시민들의 문화적 자부심을 높이며, 정책 입안자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또한 예술가와 과학자, 일반 대중이 소통한 경험은 공동체의 유대감을 강화하고 참여형 도시문화의 토대를 쌓는다. 한때 무심히 스쳐 지나던 빌딩 외벽 이 축제 기간에 눈부신 예술의 캔버스로 변모했다면, 이후 그곳을 지나는 이들의 눈에는 더 이상 빌딩의 삭막한 회색이 아닌 가능성의 색채가 어른거릴 것이다. 현대의 도시는 이렇게 축제를 통해 자기 자신을 갱신하고 확장해 갈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한다.
이러한 예술+기술 축제들을 서정적이고 관조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때 떠오르는 한 이미지가 있다. 도시라는 생명체의 맥동이다. 낮에는 분주히 돌아가는 경제와 시스템의 도시가, 밤이 되면 예술과 기술의 불빛 속에서 숨겨 둔 꿈을 드러내 보인다. 빛나는 도시의 표면은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지만, 그 진동은 마음 깊숙이 울려 퍼져 우리로 하여금 인간과 기술, 도시와 삶의 조화를 숙고하게 만든다. 축제의 시간 동안 우리는 도시의 겉모습과 속마음 모두와 조우하고, 그 경험은 도시에도 영감을 준다. 우리의 도시들이 앞으로 얼마나 감각적이면서도 철학적인 도시 축제를 만들어 갈 수 있을지, 세계의 선례들은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도시 표면에 새겨지는 찬란한 예술의 빛과 그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창의와 공동체의 열기가 만나, 언젠가 우리 도시도 고유한 미래의 얼굴을 빚어내길 바란다. 결국 도시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상상력이 켜지는 순간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법이니까.

글 허대찬 미디어문화예술채널 앨리스온 디렉터
미디어 아트 및 디자인 분야의 연구자, 큐레이터, 교육자로서 국내 미디어 아트 활동의 순환 및 아카이빙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진행 중이다. 미디어문화예술채널 앨리스온(aliceon.co.kr) 편집장, 게임 연구 집단 더플레이 대표, 한국디자인사학회의 학술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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