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ART FOR THE EARTH·칼럼 2] 해양 쓰레기의 현장을 가다


지난 3월 17일, 바다 쓰레기 수거 활동을 벌이고 있는 환경 보호 단체 ‘디프다 제주’의 활동상을 취재하기 위해 제주 비양도로 향했다. 이날 디프다 제주 회원과 자원 봉사자 등 40명이 비양도에서 수거한 플라스틱 쓰레기의 양은 무려 2톤. 해양 수거 활동을 마친 변수빈 디프다 제주 대표는 “꼭 보여 주고 싶은 게 있다”며 기자를 사무실로 안내했다.

제주 바다에서 발견한 해양 쓰레기들. 플라스틱 쓰레기와 암석이 뒤섞여 만들어진 플라스틱 암석(↑), 북한산 링거액 주머니(→)


플라스틱이 ‘진짜’가 되는 시대

제주시 용담로에 위치한 사무실 한쪽에는 변 대표와 동료들이 2018년부터 제주 바다에서 주운 쓰레기가 가득했다. 1977년 출시된 해태 맛기차 포장지, 북한제 링거액 주머니, 중국산 영양제통, 88올림픽 기념 팽이…. 수십 년 전 그리고 여러 국가에서 생산된 온갖 종류의 플라스틱 쓰레기들이었다. 그중 바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조각들이 눈에 띄었다.

“돌처럼 보이지만 사실 플라스틱이에요.” 변 대표가 쓰레기 사이 ‘짝퉁 돌’을 가리켰다. 겉보기에는 영락없는 돌이었지만, 놀랍게도 변형된 플라스틱이었다. 직접 들어 보니 가운데가 텅 빈 느낌이다. 바다에 버려진 플라스틱이 오랜 시간 마모되어 만들어진 짝퉁 돌은 제주를 대표하는 현무암과 비슷했다.

“이건 불에 타 녹은 플라스틱이 돌에 붙어 만들어진 겁니다.” 변 대표는 제주 현무암에 붙어 만들어진 ‘짝퉁 돌’을 들어 보였다. 마치 플라스틱이 돌을 삼키고 있는 모양새였다.

이처럼 플라스틱 쓰레기와 암석이 뒤섞여 만들어진 ‘플라스틱 암석’은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2014년 캐나다 지질학자들은 미국 하와이 남동쪽 카밀로 해변에서 플라스틱과 화산암, 모래, 조개껍데기 등이 한데 뒤엉킨 덩어리를 찾아 새로운 유형의 지질학적 물질이라는 의미로 ‘플라스티글로머레이트(plastiglomerate)’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영국, 브라질 등지에서도 플라스틱 암석이 발견됐고 ‘파이로플라스틱(pyroplastics)’, ‘안트로포퀴나스(anthropoquinas)’ 등의 이름이 붙었다.

전문가들은 이런 플라스틱 암석이 인간 활동으로 지구 지질이 변화하는 ‘인류세(Anthropocene)’를 상징하는 지표석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인류세란 인간 활동이 지구의 토양과 바다, 대기에 큰 영향을 끼쳐 새로운 지질 시대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 2월 국제지질학연합은 인류세를 채택하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학계에서는 플라스틱 암석을 현대 문명의 이면을 상징하는 용어로 받아들이고 있다.

몇몇 전문가의 관심사였던 플라스틱 암석은 이제 한반도 주변 바다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2021년 기준 제주 바다에서 수거된 쓰레기는 2만 2,082톤으로 2019년(1만2,308톤)보다 1만 톤 가까이 늘었고, 그중 가장 많은 것이 플라스틱이었다. 지난해 12월 제주에서 쓰레기 줍기 캠페인을 벌였던 환경운동연합은 “플라스틱 쓰레기가 빠르게 미세 플라스틱으로 바뀌고 있다”며 “해양 쓰레기 예방과 수거 관리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유엔환경계획은 1950년 200만 톤이던 플라스틱 폐기물이 2017년 3억4800만 톤으로 늘었고 2040년에는 두 배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래의 어느 날, 넘쳐 나는 쓰레기로 인해 플라스틱 암석이 현무암을 잠식해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글·사진 박종식 한겨레 사진부 기자

2005년부터 한겨레에서 사진기자로 일하고 있다. 일우사진상, 한국기자상, 한국보도사진대상, 삼성언론상 등을 수상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