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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FOR THE EARTH·미리보기] 동시대미감전 <지구를 위한 소네트>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슈를 현대미술로 풀어내는 성남큐브미술관의 대표 기획전시 동시대미감전. 올해 동시대미감전은 현재 초국가적 이슈인 ‘기후위기’를 마주하고 있는 미술관의 역할을 고민하며 기획되었다. 4월 19일부터 6월 9일까지 성남큐브미술관 기획전시실에서 진행되는 2024 동시대미감전 <지구를 위한 소네트: A Sonnet For The Earth>를 통해,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기후위기와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본다.


박은경 성남문화재단 전시기획부


장한나, 뉴 락 표본(스티로폼락)_수집된 플라스틱_45.5x53cm, 2020


지구를 지켜 낼 수 있는 힘, 예술

<지구를 위한 소네트>는 기후변화로 인해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되어 나타나는 자연과 생태, 사회의 면면을 동시대 미술의 시선에서 조망한다. 생물 다양성 보전, 플라스틱 문제, 인간과 자연의 관계 재정의, 해양 오염, 급격한 산업화로 삶이 파괴된 주민들, 안정된 생태계 속에서만 가능한 일상 감정의 소중함까지, 표현 매체와 주제는 다르지만 결국 자연과의 공존을 위한 절실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는 공통적이다. 또 작품을 통해 직접적으로 기후·환경 문제를 전하는 작가 외에도, 작업 과정에서 화학 연료 기반 재료를 사용하지 않는 작가들의 작품도 선보이며 기후위기를 예술로 풀어내는 다양한 접근법을 제시한다. 관객이 이들의 작품을 통해 예술에는 기후변화에 대항할 수 있는 ‘부드럽지만 강한 힘’이 존재함을 느끼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 한번 고찰할 수 있기를 바란다.


Part. 1: 위기를 일깨우는 시선

지구 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 환경오염, 생물 다양성 감소, 기상 이변…. 지구상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되어 나타나는 기후변화와 환경 문제를 바라보는 동시대 예술가들의 시각을 살펴본다.


고상우

멸종 위기 동물의 초상화를 디지털 회화로 그려내는 고상우는 현재 세계자연기금(WWF)과 함께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생물 다양성 보전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작가는 코끼리, 호랑이, 표범, 북극곰, 올빼미 등 지구상의 다양한 멸종 위기 동물을 전통 초상화의 방법론을 차용해 극사실적인 디지털 회화로 그려 낸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전작은 물론, 최근 집중하는 주제인 멸종 위기 해양 동물 신작을 만날 수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환경오염 등으로 고통받는 고래와 바다거북을 담은 신작 <메아리>와 <거북선>은 이번 전시에서 최초 공개되어 해양 생태계와 멸종 위기 동물 보호에 대한 관심을 환기할 예정이다.

작가의 작품은 주조색인 파란색을 바탕으로 모든 동물이 정면을 바라보는 초상화 형태를 취하는 것이 특징이다. 동서양 미술사에서 초상화는 특정 계층과 권력자만의 전유물이었다. 고상우는 정면성이 강조된 전통 초상화 양식을 빌려와 멸종 위기 동물에게 일종의 인격권을 부여하고, 동물 역시 인간처럼 존중받아야 한다는 권리를 예술로 담아냈다. 그래서인지 작품 속 모든 동물의 시선은 강렬하고 당당하다. 또 모든 작품이 파란색인 이유는 작가가 사진의 색과 음영을 반전(反轉)시키는 ‘네거티브 기법’으로 작업하기 때문이다. 미국 유학 시절, 암실에서 사진 작업을 하던 작가는 동양인의 피부는 인화하기 전 반전으로 파랗게 보인다는 점을 발견했다. 백인 우월주의 사회 속에서 인종 차별과 편견, 정신적 소외를 경험한 작가에게 파란색은 치유와 위로와 희망의 색으로 다가왔고, 그런 배경으로 멸종 위기 동물 초상화 연작의 주조색이 되었다.

동물 초상화 작업을 위해, 작가는 반드시 직접 동물원을 방문해 오랜 시간 동물을 관찰하고 교감하는 단계를 거친다. 깊은 심해에 있는 해양 동물의 경우는 세계자연기금과 그린피스 등 환경NGO 단체의 다양한 자료와 다큐멘터리, 사진 등을 연구한 후 창작에 돌입한다.


“내게 정면성은 동물과 교감하기 위한 방식이다. 동물과 눈높이를 맞출 때 비로소 동등한 시각에서 그들과 대화할 수 있고, 그런 시도는 인간과 동물이 공생하는 사회에 대한 염원에서 비롯됐다.”

- 고상우, 작업 노트 중


고상우, 거북선, 울트라크롬HDR프린트, 150x150, 2024


고상우, COSMOS, 울트라크롬HRD프린트, 150x150, 2021


나현

나현은 역사적 사건과 기록에 관한 자료를 기반으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작가이다. 2015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후보로 선정되었으며, 역사학·인문학·문화인류학 자료를 바탕으로 아카이브를 수집 및 분석해 구조적으로 재배치하는 프로젝트 형태의 작업을 진행한다.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작업은 생태학적 관점에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카나리아(Canary)>와 전시실 벽면을 가득 채운 <포모사 프로젝트(Formosa Project)>이다.

<카나리아>는 작은 나룻배를 중심으로 배 안에 놓인 나무 조각, 머구리(잠수부)의 장비를 연상시키는 금속 조형물, ‘갈륨(gallium)’이라는 금속으로 제작된 카나리아 오브제로 구성된 복합 설치작품이다.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유럽 광부들은 일산화탄소 중독 위험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일산화탄소에 민감한 새인 카나리아를 곁에 두고 자신의 안전을 지켰다고 한다. 나현은 이런 상징성을 지닌 카나리아를 인간의 손 위에서도 금방

녹아 버릴 정도로 녹는점이 낮은(30도) 금속 ‘갈륨’으로 제작, 급속한 온난화가 진행 중인 지구의 현실을 가시적으로 표현하는 한편 일산화탄소 대신 이를 경고하는 존재로 재탄생시켰다. 작가의 카나리아는 전시 기간 동안 기온 상승에 따라 정직하게 자신을 녹여 내리며 관객에게 지구 온난화에 대한 무언의 경고를 보낼 것이다.

포르투갈어로 ‘아름다운 섬’이란 뜻을 지닌 ‘포모사(Formosa)’는 포르투갈인들이 16세기부터 타이완을 지칭하던 이름이다. 바다와 접한 대만 동남부 산지에는 타로막(Taromak)과 파이완(Paiwan)이라 불리는 고산족 원주민들이 거주하는데, 13점의 대형식물 압화 작업 <포모사 프로젝트>는 자연과의 균형을 지향했던 이들 원주민의 삶의 방식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된 작업이다. 나현은 부족 간 경계를 표시하는 동시에 원주민들의 삶에 깊게 관여하는 식물들의 존재에 주목하고, 채집을 통해 그들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바라보고자 했다. 프로젝트의 기저에는 현재 인류가 망각하고 있는 자연에 대한 ‘공존·균형’, 금기에 대한 메시지 역시 담겨 있다.


나현, Formosa Project-P12_Collage, Archival pigment print on Paper Gouache, Watercolor, Stamp Ink etc.,180x120cm,2022


나현, Formosa Project-T08_Collage, Archival pigment print on Paper Gouache, Watercolor, Stamp Ink etc.,180x120cm,2022

 

장한나

장한나는 암석화된 플라스틱 쓰레기 ‘뉴 락(New Rock)’을 연구한다. 작가가 직접 붙인 이름인 ‘뉴락’은 해변에 버려진 플라스틱이 지열과 햇빛에 녹아 돌에 붙거나, 바람과 파도에 깎여 탄생한 새로운 형상의 돌을 일컫는다. 조소를 전공한 작가의 예리한 시선에 포착된 ‘뉴 락’은 자연의 불청객에서 생태예술의 소재로 변신하며 플라스틱 문제의 심각성을 알린다. 해변 곳곳에서 발견되는 ‘뉴 락’에 뿌리 내리며 살아가는 생명체의 흔적은 기이하면서도 새로운 생태계가 되었고, 그 일부가 된 플라스틱과 스티로폼의 형상은 지구와 자연의 또 다른 공존을 보여준다.

장한나는 2017년부터 전국 각지에서 ‘뉴 락’을 직접 수집, 연구하며 전시로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직접 채집한 ‘뉴 락 표본’을 포함해, 뉴 락 안에 조성된 새로운 생태계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영상 작업을 소개한다. 특히 전시 공간 벽면의 시트지 월텍스트 시공 대신 작가가 직접 손으로 쓴 연구 노트 및 작품 해설로 환경을 위해 실천하는 예술가의 모습을 보여 줄 예정이다.

“자연은 오히려 ‘자연스럽게’ 모두를 받아들여요. 플라스틱까지. 그래서 동식물이 ‘뉴 락’에 집을 짓고 사는거죠. 어쩌면 플라스틱이 많아지고 ‘뉴 락’이 생기면서 위험해지는 건 환경이 아닌 인간일지도 모릅니다.”

- 장한나


장한나, 뉴 락 설치 전경 © 장한나

장한나, 뉴 락 설치 전경 © 장한나


권승찬

권승찬은 다양한 주제로 작품 활동을 진행하는 설치미술가로, 이번 전시에서는 해양 오염과 해양 쓰레기 문제를 다룬 신작 프로젝트 <인류세-부유하는 무감각>을 선보인다. 작가는 쓰임을 다하고 버려진 다양한 폐기물을 수집해 하나의 정크 아트(junk art)로 재탄생시켰다. 작가는 자신의 고향인 어촌 항구와 해안가에서 직접 수집한 폐그물과 부표, 버려진 비닐 등을 작품의 주 재료로 사용하며 해양 오염의 심각성에 대해 말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전시실 천장에 설치되는 대형 설치작품 외에 신작에 대한 설계 아이디어를 엿볼 수 있는 드로잉과 영상 작품도 함께 만날 수 있다.


유지수

유지수는 과거 국가 주도 압축 성장 및 산업화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해병’의 피해가 발생한 지역 주민의 삶과 목소리를 담고, 파괴된 해양 및 토양 환경을 보여 주는 다큐멘터리 프로젝트 영상 작업을 선보인다.


Part. 2: 자연 속에 예술을 담다

인간도 생태계의 일부이다. 인간 생존의 기본 조건인 의식주의 유지, 우리가 느끼는 일상의 희로애락과 심리적인 안정은 모두 자연에서 온다. 생물종의 다양성 속에 생태계가 건강하게 보호받을 때 비로소 인간의 영속성도 지켜질 수 있다.

건강한 생태계에서 느낄 수 있는 안정감과 행복, 슬픔의 감정과 자연에 대한 경외를 김미형·오다교의 작업으로 만나 본다.


김미형

제주에서 활동하는 김미형은 자연에서 채집한 구멍 난 나뭇잎과 콩잎을 통해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전한다. 과거 근사한 작업실을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 비좁은 작업실에서 시작된 나뭇잎 드로잉 시리즈는 그가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자신보다 몸집이 작은 어느 생명체에게 잎의 일부를 내어 준 채 생명을 이어 가는 ‘구멍 난 잎’은 이타적인 삶을 상징한다. 구멍 나지 않은 멀쩡한 잎은 작가에겐 아름다운 존재가 아니었다. 작가는 자신이 머무는 공간에서 생의 최대치를 끌어내는 자연의 생존 전략에 경의를 표하며 작업을 이어 가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나뭇잎 드로잉> 시리즈와 제주로 이주한 뒤 시작한 <넝쿨 드로잉> 연작을 함께 선보인다.


김미형, 귤꽃향 가득한 과수원_29.7x21cm, 종이 위에 구멍 난 잎과 드로잉, 2023


오다교

오다교는 캔버스 위에 흙을 물처럼 표현하며 새로운 미감을 전하는 작가이다. 작가는 파리 유학 시절 생명과 예술의 근원을 탐구하며 흙을 캔버스 위 주인공으로 삼았다. 흙이 지닌 부드러우면서도 거친 원초적인 질감과 다채로운 자연의 색채를 사용해 숲과 나무, 바다 등 자연의 요소를 서정적인 미감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은 그 자체로 환경 친화적이다. 여기에 작품의 제작 방법 역시 지구에 누가 되지 않는 방식을 고해 흙으로 그려진 바다를 연상시키는 <Still>, 7m가 넘는 대작 <Walk on WaterⅠ>이 함께 선보인다. 자연에서 채취한 모래와 흙으로 제작한 작품을 바라보노라면 자연의 질감이 마치 촉각처럼 다가온다. 때로는 막연하고 무겁게 느껴지는 환경에 대한 고민을 일상 속에서 일깨우는 오다교의 작품 그리고 자연의 존재에 감사하는 태도 속에서, 환경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을 반추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지구는 병들어 가고 있다. 그러나 나는 무기력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다. …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아직도 여전히 아름다운 감정을 느끼게 해 주는 자연에게 고마워하고 자연을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 오다교, 작업 노트 중


오다교, Walk on Water I_soil, sand, mica and pigment on canvas_194.1x777.3cm, 2023


Part. 3: 음악에 담은 자연의 경고

사계 2050: 음표로 쓰인 기후변화 보고서 ‘The [Uncertain] Four Seasons’ - ‘불확실한 사계’, 즉 <사계 2050> 프로젝트는 기후변화 시나리오와 인공지능 기술을 결합한 2050년 버전의 비발디 <사계>를 통해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오케스트라 프로젝트다. 기후변화 시나리오(RCP8.5)에 따른 2050년 기후 예측 데이터를 ChatGPT-4 모델에 학습시켜 비발디의 <사계>에 대입, 2050년 예상되는 사계절의 모습을 반영했다. 특히 끊임없이 변화하는 기후위기 시나리오에 따라 전 세계 도시마다 각기 다른 음악이 연주되는 것이 특징이다.

기후위기를 음악으로 표현해 화제가 된 <사계 2050> 프로젝트를 이번 전시의 로비 공간에서 특별 섹션으로 만날 수 있다. <사계 2050> 악보와 비발디의 악보를 대조해 음표 속에 녹아 있는 기후변화 양상을 살펴보고, 비발디가 사계 악보에 남긴 소네트와 AI가 창작한 소네트를 전시로 선보인다. <사계 2050>의 전체 악장을 감상할 수 있는 연주 영상, 계절별 기후변화 양상이 반영된 부분을 발췌한 음원 청음 등 음악을 통해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구성했다.

예술이 기후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작품에 담긴 환경에 대한 다양한 메시지들은 지금 누리고 있는 자연의 소중함과 다음 세대를 위한 책임감, 생활 속 탄소중립 실천을 일깨우는 촉매 역할이 되어 줄 것이다. 기후위기로 인한 지구의 다양한 생태·사회 변화를 바라보는 동시대 예술가의 작품을 통해, 일상에서 자연과 나의 삶을 유기적으로 연결 지어 생각하는 ‘생태적 감수성(ecological sensitivity)’을 키울 수 있기를 바란다.

300년 전 비발디가 아름답게 노래한 사계절, 이미 시작된 기후위기 속에서 우리가 누린 맑은 자연을 다음 세대에 어떻게 물려줄지 진지하게 성찰하고, 이를 위한 실천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


동시대미감전 <지구를 위한 소네트>

일시 | 4월 19일(금)~6월 9일(일)

장소 | 성남큐브미술관 기획전시실

문의 | 031-783-8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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