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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오감을 충족시키는 굿즈 마케팅: 펀슈머에서 프루스트 효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기념품숍 ‘뮷즈’의 공모 선정작인 ‘취객선비 3인방 변색 잔 세트’ © 국립박물관문화재단 뮷즈

 


팝업 스토어와 전시장에서 굿즈는 빠질 수 없는 존재감을 드러낸다. 2차 파생 상품을 의미하는 굿즈는 기업이나 브랜드 입장에서 주력 상품이 아니기에 한시적이고 저렴하지만 소비자의 눈길을 끌 만한 트렌디한 아이템 위주로 기획된다.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 굿즈 소비는 좋아하는 브랜드를 향한 ‘팬심’을 드러내는 동시에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일종의 발도장을 남기는 일이기도 하다.


경복궁의 역사와 문화를 바로 알리기 위해 조형 요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경복궁 브랜드 문화상품’ ©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펀슈머를 공략하라

요즘 국내 주요 음원 차트를 휩쓸고 있는 가수 비비의 ‘밤양갱’ 노래 덕분에 양갱 열풍이 일고 있다. 전국 마트와 제과점에서 판매량이 급증한 양갱을 비롯해 약과, 다식, 유과 등 전통 간식이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인기몰이를 하는 최근의 현상을 ‘할매니얼(할머니+밀레니얼 트렌드)’, 혹은 ‘힙트레디션’이라고 부른다. 이는 비단 먹거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이 매년 봄·가을 추진하는 ‘경복궁 별빛야행’ 행사는 티켓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궁중 문화를 체험하면서 경복궁 야경을 탐방하는 프로그램으로 올해에는 4월 3일부터 5월 4일까지 열린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과 한국문화재재단은 2022년 경복궁의 역사와 문화를 바로 알리기 위해 조형 요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경복궁 브랜드 문화상품’을 개발하기도 했다. 디자인을 맡은 오이뮤는 ‘경복궁 동물상 양초’ ‘십장생도 족자’ ‘경복궁 넥타이’ ‘해치 도어스톱’ ‘경복궁 노방 책갈피’ 등을 제안했다. 이는 조선 시대 궁궐이라는 콘텐츠를 현대적으로 잘 활용한 사례로 볼 수 있다.

2023년 국립중앙박물관 기념품숍 ‘뮷즈’의 공모 선정작인 ‘취객선비 3인방 변색 잔세트’는 없어서 못 팔 만큼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중이다. 밀려드는 주문량으로 인해 현재 공식 웹사이트에서 지정된 날짜에 선착순 예약을 통해서만 구입할 수 있다. 그야말로 온라인 ‘오픈런’인 셈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인 ‘전 김홍도 필 평안감사향연도’를 활용한 이 굿즈는 온도에 반응하는 시온 안료 프린팅을 적용해 잔에 차가운 술을 따르면 선비들의 얼굴이 취한 것처럼 붉게 변한다. 이처럼 재미있는 아이템 소비를 추구하는 소비층을 ‘펀슈머(Fun+Consumer)’라고 하는데 여러 기업과 브랜드들도 이들의 입맛에 맞춰 독특하고 눈에 띄는 굿즈를 기획하는 마케팅 전략을 구사한다.

대상 청정원 안주야의 의뢰로 더워터멜론이 기획한 여름 한정 굿즈 ‘혼술선풍기’도 펀슈머를 타깃으로 한 사례다.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여름,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에서 혼술을 즐기는 소비자들이 더위를 식힐 수 있도록 한 아이디어 상품으로 이슈몰이를 했다. 1949년 부산에서 시작한 국내 대표 타월 브랜드 송월타올은 지난해 부산 1세대 서브컬처 편집숍이자 브랜드 발란사와 협업해 ‘타올쿤’이라는 캐릭터를 개발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타월 원단으로 만든 볼캡, 모자와 양말 등 의류 제품과 접시, 유리컵, 쟁반 등 주방용품을 디자인해 서울 성수동, 2023 서울리빙디자인페어, 동부산 롯데프리미엄아울렛, 롯데몰 김포공항점, DDP ‘서울디자인 2023’등에서 팝업 순회전을 선보였다.

대상 청정원 안주야와 더워터멜론이 개발한 여름 한정 굿즈 ‘혼술선풍기’ © 더워터멜론

송월타올이 서브컬처 편집숍이자 브랜드 발란사와 협업해 개발한 ‘타올쿤’ 캐릭터 © 송월타올


코오롱FnC가 전개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에피그램’은 2017년부터 지역 상생을 목적으로 시즌마다 지역 소도시 한 곳을 정해서 ‘로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역소개 콘텐츠를 제작하고 로컬 브랜드 제품과 에피그램이 직접 제작한 테마 제품을 선보이는 마켓을 여는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다. 지난해에는 충북 보은의 특산물인 대추를 테마로 경리단길 플래그십 스토어 ‘올모스트홈’에서 팝업을 열기도 했다. 이때 눈길을 끌었던 것은 듀오 일러스트레이터 안초비와 함께 속리산 입구길로 유명한 ‘말티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보은의 캐릭터 ‘말티’를 탄생시킨 것이었다. 팝업스토어 ‘로컬마켓 보은’에서는 ‘말티’ 캐릭터를 입은 키링, 볼펜, 컵, 수건 등 다양한 굿즈를 소개하는 한편, 대추 페이스트를 활용한 음료와 베이커리 등 시즌 메뉴를 개발했다. 이처럼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해 탄생한 타올쿤이나 말티 같은 캐릭터 그리고 이들 캐릭터를 활용한 2차 파생 상품인 굿즈는 기존 브랜드에 신선한 감성을 주입하고 소비자와의 벽을 허무는 역할을 한다.

 

에피그램 팝업스토어 ‘로컬마켓 보은’에 등장한 캐릭터 ‘말티’ © 코오롱FnC


박물관 정원의 향을 담아낸 전시 연계 굿즈 ‘박물관에서의 사색’ © 온양민속박물관


장소의 기억을 보관하는 방법

철학자 한병철은 저서 『사물의 소멸』에서 ‘책장 넘기기’에 촉감이 깃들어 있다고 말한다. 이어서 촉감은 모든 관계의 가장 본질적 요소이며, 신체적 접촉이 없이는 결속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어떤 공간에 방문했을 때 뭔가를 보러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보이는 것만이 감각하는 전부가 아니다. 공간에 들어섰을 때 귓가에 들리는 소리, 향, 지면에 한 걸음 내딛을 때 발바닥으로 전달되는 감각을 통해 나와 공간이 관계를 맺는 셈이다. 그곳에서 구입한 굿즈는 공간에 대한 기억을 강력하게 만들어 주는 매개체다. 같은 책에서 저자는 소유보다 체험을 선호하는 오늘날의 현대인들은 사물을 구매할 때 그것의 사용 가치보다 미적·문화적 가치에 초점을 맞춘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브랜드의 이미지, 해당 상품이 우리 삶에 특별한 경험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믿음, 거기에 담긴 스토리텔링이 우리의 감정을 충족시킨다고 여겨질 때 비로소 구매 행위가 이루어진다는 얘기다.

지난해 온양민속박물관은 곡식을 저장하는 곳간과 둘러앉아 함께 식사하는 두리 반을 소재로 전통 식문화의 현대적 의미와 가능성을 모색한 기획 전시 ‘곳간과 두리반’을 개최한 바 있다. 이와 연계해 향 전문 브랜드 수키노와 협업해 박물관 정원의 향을 담아낸 전시 연계 굿즈 ‘Meditation at the Museum(박물관에서의 사색)’을 한정 판매했다. 짚풀로 촘촘히 엮은 패키지는 이충경 짚풀명인의 솜씨로,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자급자족하는 ‘지속 가능한 삶’을 살펴보는 전시 주제와도 잘 어우러졌다.

한편 2022년 경주 최부잣집은 재단법인 1779를 설립, ‘하우스오브초이’라는 브랜드를 개발해 경주의 향을 담은 제품 ‘1779’를 출시했다. 기획을 맡은 구병준 피피에스 대표는 1779년부터 이어 온 오랜 역사를 가진 최부잣집의 축적된 시간의 깊이를 느낄 수 있도록 향 ‘1779’에 ‘시원한 바람 속에 읽은 시간의 향’이라는 테마를 녹였다고 설명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소설에서 주인공인 프루스트는 홍차에 마들렌을 곁들여 먹다가 불현듯 어린 시절 추억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체험을 한다. 이처럼 어떤 특정한 향을 맡고 과거의 기억이 자동으로 되살아나는 현상을 ‘프루스트 효과’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공간을 시각만으로 경험하지 않는다. 그곳에서 맡았던 향, 먹었던 음식 등은 기억을 되살리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억을 자동 재생시키는 굿즈로서 향은 분명 좋은 선택임에 틀림없다.



경주의 향을 담은 제품 ‘1779’ © 피피에스, 김잔디



서민경 디자인 칼럼니스트

텍스트 공방 대표. 디자인과 공예 영역에 걸쳐 글을 쓰고 전시를 기획한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디자인과 큐레이팅을 전공하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을 거쳐 월간 <디자인>에서 에디터로 일했다. 건국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겸임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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