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COLD BLOOD·인터뷰] 연출가 자코 반 도마엘: 비밀을 알기에 더 매력적인 마술

<토토의 천국> <제8요일> 등으로 유명한 자코 반 도마엘은 세계적인 영화감독이기도 하지만 서커스와 오페라, 연극 등 다양한 공연 작업에 참여한 연출가이기도 하다. 특히 아내이자 안무가인 미셸 안느 드 메이, 작가 토마 귄 지그 등과 함께 작업한 라이브 퍼포먼스 <키스 앤 크라이>는 기술과 감성을 결합한 독창적인 콘셉트와 형식으로 전 세계 관객의 찬사를 받은 바 있다. 그리고 <키스 앤 크라이>의 감동을 잇는 또 다른 공연 <콜드 블러드>가 12월 성남아트센터 무대를 찾는다. 공연에 앞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도마엘 연출가는 이 작품이 팀의 ‘공동 작업’임을 수차례 강조했고, 실제로 극중 안무와 관련된 부분은 미셸 안느드 메이가 직접 답을 들려주었다.

김주연 연극 평론가


자코 반 도마엘 감독과 아내이자 안무가인 미셸 안느 드 메이 ⓒ Julien Lambert


전작 <키스 앤 크라이>가 지나간 ‘사랑’의 추억을 주로 보여 주었다면 <콜드 블러드>에서는‘죽음’과 삶의 마지막 순간을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죽음을 주요 모티프로 삼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일단, <키스 앤 크라이>와 <콜드 블러드>의 작업 과정은 영화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영화에서는 주요 모티프와 주제를 먼저 정하고 대본을 쓰는 것으로부터 과정이 시작되고 그 대본에 따라 장면을 설정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반대로 작업합니다. 대본 없이 즉흥적으로 작업을 시작하고 무대, 손과 손가락, 사물과 같은 다양한 요소를 활용하면서 장면 장면을 어떻게 꾸밀지 팀 전원이 함께 탐구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카메라와 조명의 상호 작용 속에서 이 요소들이 어떻게 잘 어우러질 수 있는지 찾아갈 수 있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주제와 모티프가 점차 발전해 나가게 되죠. 이번 작품을 작업하면서 ‘사고’라는 주제를 떠올리고 몇 가지 사고 장면을 시험해 봤는데 그 과정에서 ‘어리석은 죽음’이라는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이렇듯 우리 팀의 창작 과정에서 대본과 주제는 늘 가장 마지막에 결정됩니다.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고 다양한 상황에 대한 아이디어를 탐구한 뒤, 작업의 맨 마지막에 내레이션이 이 모든 요소들을 연결해 전체에 일관된 의미를 부여하는 거죠.


<콜드 블러드>라는 제목에 담긴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언뜻 들으면 누아르 영화나 탐정 소설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사실 그러한 장르물과는 연관이 없고, 오히려 단어의 음악성 때문에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차가움’과 ‘피’의 병치는 극중 죽음을 묘사한 몇몇 장면들에서 선명하게 부각되곤 합니다. <키스 앤 크라이>에서는 한 여인이 평생 사랑했던 5명의 연인에 대한 기억을 그려 냈습니다.


이번 <콜드 블러드>에서는 예상치 못한 7번의 죽음이 펼쳐지죠. 5와 7이라는 숫자에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는지요?

<키스 앤 크라이>에 등장하는 다섯 개의 사랑 이야기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손의 다섯 손가락과 연관이 있었습니다. <콜드 블러드>에서도 비슷한 형식으로 여러 개의 미시적 이야기를 채택했지만, 자연스레 최종적으로 일곱 개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저희의 목표는 짧은 삶 외에지나간 과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부조리한 죽음들을 찾아내는 것이었고, 여기에 다소 어두운 유머를 드리우고자 했습니다.


<콜드 블러드>에 등장하는 비행기 사고, 자동차 사고, 병실에서의 죽음 등 다양한 죽음의 상황들은 창작진의 개인적인 경험을 반영한 것인가요, 완전히 상상으로만 만들어진 것인지요?

모두 즉흥적 연구의 결과입니다. 양상은 다르지만 각각의 죽음은 모두 ‘광대’와 ‘넘어짐’으로부터 영감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광대가 언제, 어떻게 넘어질지는 모르지만 끝내 넘어질 것이라고 예상하곤 합니다. 결국 광대는 넘어지게 되어 있고 이는 언제나 웃음을 만들어 냅니다. 이 현상은 비극적이면서도 희극적이며, 광대의 세계와 무성영화의 세계를 동시에 떠올리게 합니다.


극중 죽음을 앞둔 이들이 떠올리는 삶의 풍경은 늘 보드라운 살결, 풀 냄새, 바닐라 향, 커피의 맛, 거위의 솜털 등 냄새, 소리, 촉감과 같은 생생한 감각들입니다. 또 공연 내내 시각, 후각, 청각, 촉각 등 오감을 자극하는 이미지와 문구들이 반복됩니다. 이렇듯 감각적인 표현을 중시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공연 중 공감각이 도드라지는 것은 우리 팀의 안무가 미셸과 작가 토마가 공감각을 중시하는 예술가들이기 때문입니다. 공감각이라는 것은 여러감각이 상호 작용할 때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음표가 짜게 느껴진다거나 단어가 노란색으로 다가오는 것과 같은 거죠. 이러한 감각적 경험은 우리의 작업에 직관적으로 통합됩니다. 저는 토마에게 텍스트를 통해 촉각과 냄새를 탐구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이는 기존의 영화에서 중시되던 시각과 청각을 넘어 더 다채로운 감각을 느끼게 해 달라는 의미였습니다. 촉각, 미각, 후각 같은 다른 감각들을 통합해서 시청각적 창작물인 공연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를 위해 저는 토마에게 하이쿠 형식의 짧은 텍스트를 사용해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글을 써 보라고 권유하기도 했습니다.


<키스 앤 크라이>에서도 놀라움을 선사했던 손가락 연기와 춤이 이번 공연에서도 아름답게 펼쳐집니다. 오로지 손가락과 손만 이용한 섬세하면서도 에너지 넘치는 안무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요, <키스 앤 크라이>와 차별되는 <콜드 블러드>만의 안무 콘셉트나 특별한 지점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미셸 안느 드 메이 <키스 앤 크라이>에서는 주인공이 두 명이었지만 <콜드 블러드>에는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콜드 블러드>의 안무는 이 세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안무적 대위법에 초점을 맞추어 전개했고, 이는 마치 새의 날갯짓과 같은 손의 상호 작용에서 도드라집니다. <키스 앤 크라이>가 주로 파드되(pas de deux)와 그 변주에 집중했다면, <콜드 블러드>는 안무에 있어 더 구조적이고 복잡한 게임을 보여 주려 했습니다.

또 각 장면의 안무들은 다양한 레퍼런스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콜드 블러드>는 고전 영화와 문학, 음악적 요소들을 장면에 녹여 내고 있으며, 단순히 이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춤과 영화 간의 유기적이고 긴밀한 대화를 보여 주고자 했습니다.


정교한 미니어처와 인형, 조명과 소품이 만들어 내는 작은 세계가 카메라에 의해 새로운 생명을 얻은 듯 스크린에 펼쳐지는 형식은 신기하고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마치 영화 한 편을 찍는 과정과 그 결과물을 실시간으로 관객에게 보여 주는 듯하죠. 이러한 실시간 촬영을 보여 주는 연출 의도가 궁금합니다.

우리가 함께 만드는 작품은 일종의 일회성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사전 녹화 없이 무대 위 관객 앞에서 즉석에서 만들어집니다. 유일한 기록 장치는 현장 관객들의 기억일 뿐, 나머지는 사라질 운명에 놓여 있지요. 이 작업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제작 과정과 스크린에 투사된 최종 결과물을 동시에 관찰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마치 겉으로 보이는 경이로운 결과뿐만 아니라 그 이면의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마술과도 같죠. 때로는 그 비밀을 알고 보는 것이 마술을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만들곤 합니다. 이 이중적인 해석은 우리 작품의 필수 요소로서, 관객에게 시선의 자유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즉, 창작진들이 소리와 이미지를 만들어 가고 있는 무대와, 무대에서 작아 보이는 모든 것이 커다랗게 다가오는 스크린 사이에서, 관객 개개인이 시선을 고정하거나 양쪽을 넘나들 수 있는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당신은 이 공연 전체를 연출하는 연출가이면서 동시에 각 장면에서 실시간 촬영되는 영상을 감독하는 영화감독이기도 한데요,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핵심적인 자신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연출로서 제 역할은 매우 간단합니다. 단지 공연 현장에서 속도를 조정하고 모두가 준비되었는지 확인만 할 뿐이죠. 팀의 모든 구성원들은 이미 자신의 할 일을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세트를 언제 들여오고 이동시키는지, 태양처럼 보이는 조명을 언제 설치하고 언제 카메라 돌리를 밀어야 하는지, 선풍기와 연기를 언제 사용하고 언제 안무를 따라야 하는지 말입니다. 마치 같은 게임을 계속 반복해서 연습하는 축구 경기와 비슷하지만, 매번 이렇게 서로 공을 주고받으며 함께 일하는 방식이 무대에 서는 것의 마법과 즐거움을 선사하곤 합니다.


영화와 공연이라는 서로 다른 장르의 경계를 당신은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습니다. <키스 앤 크라이>와 <콜드 블러드>에서는 무대 위에서 한 편의 영화를 촬영해 상영하고,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에서는 손가락 춤과 미니어처 등 공연의 일부를 재현하기도 했죠. 공연과 영화라는 두 세계 그리고 두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 당신에게는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영화적 경험에서 연극적 경험으로 전환하는 것을 즐기는데요, 둘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즐거움을 제공하죠. 보통 영화 작업을 마치면 공연을 하고 싶어지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에서는 대본이 완성될 때까지 긴 고독의 시간이 이어진 뒤, 그 후에야 현장에서 다른 예술적 요소들이 집단적으로 작용하는 멋진 순간이 찾아옵니다. 모든 팀원들이 감독 혼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복잡성을 이미지와 연출에 더해 주지요.

하지만 이러한 집단적 역동성은 긴 고독의 여정이 끝난 다음에야 찾아옵니다. 반면 <콜드 블러드>와 <키스 앤 크라이> 같은 라이브 프로젝트에서는 대본이 마지막에야 등장합니다. 이 프로젝트의 과정은 팀원 모두가 자신의 욕망과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즉흥적으로 탐구하는 집단적 실험으로 시작됩니다. 마치 사진이 희미한 상태에서 선명한 모습으로 현상되듯이,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주제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거죠.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이야기의 조각들을 모으기 시작하고, 작가인 토마는 이렇게 흩어진 요소들을 공통의 실로 연결해 주는 텍스트를 도입하게 됩니다.


극중 피나 바우슈의 <카페 뮐러>, 모리스 베자르의 <볼레로> 그리고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의 탭 댄스가 등장하는 고전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에 대한 오마주 같은 장면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특별한 의도가 있었는지요?

미셸 안느 드 메이 이 인용들은 단순히 안무적인 의도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차원으로 확장됩니다. 그중에서도 영화 장면들은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콜드 블러드>는 이러한 오마주와 레퍼런스들을 다양하게 활용하면서, 동시에 시대를 초월한 음악적 레퍼런스를 끌어옴으로써 그 장면들이 무대 위 스토리를 넘어 다른 차원에서 재해석될 수 있도록 이끌어갑니다. 예를 들어 극중 모리스 베자르의 <볼레로>, 수중 발레 그리고 프레드와 진저의 탭 댄스는 이 작품뿐만 아니라 여러 예술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의미를 쌓아 온 요소들입니다. 다만 <카페 뮐러>는 영화와는 큰 관련 없이 오마주로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매 장면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흘러가서 놀랐습니다. 안무와 미니어처, 특수효과와 조명, 이를 찍는 카메라까지 수많은 스태프들이 1초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호흡으로 진행하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얼마나 오랫동안 어떤 방식으로 준비했는지 궁금합니다.

일반적으로 이 프로젝트의 창작 과정은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연극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립니다. 리허설 초반에는 누구도 정확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3~4개월에 걸쳐 팀원 모두가 다양한 가능성을 시도하고 탐구하는 과정에서 점차 몇 가지 장면과 모티프들이 드러나기 시작하죠. 영화 작업과 비교할 때 이 프로젝트의 창작 과정은 훨씬 더 집단적이고, 모든 사람들이 자기 영역을 뛰어넘어 적극적으로 기여하곤 합니다. 음향 엔지니어가 세트 아이디어를 제안하거나 세트 디자이너가 장면을 제안하기도 하고, 무용수는 조명에 대한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모든 역할이 서로 뒤섞인 상태에서, 우리는 아이들이 놀이를 할 때와 비슷한 진지함과 집중력으로 작업에 임하곤 합니다.


새로 계획하거나 준비 중인 공연이나 영화가 있다면 알려 주십시오.

몇 년 전에 시작한 영화 대본 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꿈’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늘 그렇듯 대본을 쓰는 데에는 예상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공연 작업과는 다르게 제 영화 작업에서는 대본 작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대본이 탄탄하면 이후의 감독 작업은 훨씬 수월해지니까요.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