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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기 2] 마티아스 괴르네 & 마리아 조앙 피레스 <겨울 나그네>: 고독하기에 아름다웠던 그들의 여정

지난 10월 26일,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열린 마티아스 괴르네와 마리아 조앙 피레스의 <겨울 나그네> 공연은 여러 면에서 음악 애호가들의 기대를 모았다. 무엇보다도 독일 가곡(리트) 해석에 있어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괴르네가 오랜만에 한국에서 선보이는 <겨울 나그네> 공연이었다.


양창섭 음악 칼럼니스트 | 사진 최재우


1967년생인 마티아스 괴르네는 하이페리언 레이블에서 녹음한 <겨울 나그네>(1996)로 극찬받은 이후 알프레트 브렌델, 크리스토프 에셴바흐 등 명피아니스트와 함께 여러 음반과 영상물을 남겼다. 특히 깊고 풍부한 저음과 아름답고 서정적인 고음, 원어민만이 구사할 수 있는 딕션, 나이에 따라 깊어지는 해석으로 찬사를 얻었다.

또한 대부분의 주요 리트 가수들이 소수의 가곡 전문 피아니스트와 호흡을 맞춰 음악을 만들어 온 것에 반해 괴르네는 계속 피아니스트를 바꿔가며 음악적 모험을 계속해 왔다. 음반으로 보면 앞서 언급한 이들을 제외하고도 엘리자베트 레온스카야,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 레이프 오베안스네스, 다닐 트리포노프, 조성진 등과 호흡을 맞추었고, 올해의 캘린더를 들추면 예브게니 키신, 알렉상드르 캉토로프, 마리아 조앙 피레스까지 추가하게 된다. 우리가 이날의 공연에 관심을 가지게 된 또 하나의 이유였다. 관객의 뜨거운 박수 속에 괴르네와 피레스가 입장했고 이윽고 연주가 시작되었다. 괴르네의 초반 컨디션은 썩 좋지 않았다. 고음은 매끄럽게 올라가지 않았고 음표가 조금만 길어도 목소리가 흔들렸다. 적지 않은 나이 탓도 있는 듯했다. ‘홍수’에서 대개 길게 끄는 1연과 3연의 마지막 고음은 악보대로 짧게 처리했고, ‘회상’의 마지막 “그녀의 집 앞에 가만히 서 있고 싶네” 하는 부분의 고음도 예전의 괴르네라면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피레스도 익숙한 레퍼토리가 아닌 듯 ‘풍향계’의 전주를 비롯, 여러 군데에서 실수를 범했다. 피레스의 연주는 작은 음량과 부드러운 소리로 성악가를 돋보이게 하는 가곡 피아니스트의 그것과는 전혀 달랐다. 독주자로서는 음량이 큰 편이 아니지만, 화려한 음색과 분명한 터치로 모노톤 분위기의 <겨울 나그네>를 컬러풀하게 만들었다.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


관록이 빚어낸 고독의 깊이 초반의 아쉬움과는 달리, 괴르네는 많은 경험을 가진 가수답게 어려움을 헤쳐 나갔다. ‘도깨비불’에서 짧은 시간에 음을 높여 가며 도약하는 대목이나 ‘냇물 위에서’의 힘 있는 마무리, ‘봄 꿈’의 마지막 “내 사랑하는 이 안아 볼 날 언제인가” 같은 대목의 절절한 감정 처리는 관록의 가수임을 증명했다. 괴르네와 피레스는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훨씬 안정적인 해석을 들려주었다. ‘백발’의 감동적인 전주 뒤에 괴르네는 백발이 되어 일찍 죽고 싶은 젊은이의 고뇌를 음역대를 오가면서 가슴 아프게 표현했다. ‘마지막 희망’에서는 가사처럼 잎이 떨어지는 것을 동작으로 표현하는 여유도 보였다. ‘폭풍우 치는 아침’에서는 전매특허와도 같은 강력하고 거친 목소리가 “춥고 난폭한 겨울”이 되어 관객들을 강타했다.

마지막 다섯 곡에서는 고통스러운 겨울 여행을 계속하는 화자에게 감정 이입할 수밖에 없었다. ‘이정표’에서는 “쉬지 못하고 쉼을 찾는” 마음을 격렬하게 토해 냈고 음정의 변화가 별로 없는 후반부에서는 행마다 발성법을 바꾸어 가며 죽음으로 가는 화자의 정신 세계를 드러냈다. ‘여인숙’에서 피레스가 섬세하고도 장엄하게 코랄풍 장송 행진곡의 분위기를 자아내자 괴르네는 묘지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는 자의 마음을 점증하는 볼륨과 공들인 고음으로 표현했다.

허공을 응시하며 ‘환상의 태양’을 보는 듯했던 괴르네는 땅으로 눈을 돌렸다. ‘거리의 악사’의 손풍금을 의미하는 피레스의 오른손이 펼쳐 낸 사운드는 비현실적인 느낌이라 화자의 환각 상태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괴르네는 특정 단어(“맨발”)를 느리게 부르거나 “아무도(Keiner)”를 끊어 불러 고립감을 강조했고 점차 템포를 늦춰 외로운 악사에게 손을 내밀며 곡을 마쳤다. 포르테에서 피아노로, 피아니시모로 음량을 낮춰 간 피레스는 마지막 음이 끝나자 건반 위로 고개를 한참 숙이고 ‘겨울 여행’을 마무리했다. 그 밖에도 차분한 관객 매너, 정성 들인 프로그램, 가독성 높은 자막 등 여러 면에서 만족스러운 공연이었다.

피아니스트 마리아 조앙 피레스 마티아스 괴르네 & 마리아 조앙 피레스 <겨울 나그네>

일시 | 10월 26일(토) 오후 5시

장소 |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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