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펜하이머(2023) |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 출연 킬리언 머피, 에밀리 블런트, 맷 데이먼 외
“자넨 이제 미국의 프로메테우스가 된 거야. 인류에게 스스로를 파괴할 힘을 준 자. 세상은 자넬 떠받들 거고 자넨 이제 바빠지겠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의 핵무기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던 이론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에게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덴마크 물리학자 닐스 보어(케네스 브래너)가 찾아와 넌지시 말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불을 훔쳐서 인간에게 건네준 죄로 바위에 묶여서 영원히 고문당한 프로메테우스의 처지가 될 수 있다는 불길한 예언이다. “보어가 신이라면 오펜하이머는 그의 선지자”라고 할 만큼 보어는 청년 시절 오펜하이머에게 조언자이자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는 ‘원자 폭탄의 아버지’로 불렸던 오펜하이머의 삶에 바탕하고 있다. <인터스텔라>부터 <인셉션>까지 놀란은 블록버스터와 예술 영화의 장르적 경계를 무너뜨리며 영화의 지평을 넓혀 온 거장이다. 하지만 놀란의 방대한 작품 세계에서도 이 영화는 삼중으로 예외에 속한다. 무엇보다도 창작보다는 각색이고, 허구보다는 실화(實話)이며, 그중에서도 특히 전기 영화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오펜하이머 평전인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사이언스북스)가 영화의 원작이다.
물론 이전에도 놀란은 각색 작업을 한 적이 있다. 노르웨이 영화의 리메이크인 <인썸니아>부터 영국 소설 원작의 <프레스티지>, 심지어 슈퍼히어로 만화를 영화화한 <다크 나이트> 3부작까지 모두 그랬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불 연합군 33만 명을 무사히 탈출시켰던 철수 작전을 다룬 <덩케르크>도 직접 쓰고 연출했다. 하지만 각색과 실화와 평전에 모두 해당하는 경우는 <오펜하이머>가 사실상 처음이었다. 놀란 감독의 첫 전기 영화이기도 하다. 자연스럽게 궁금증은 그 이유로 귀결된다. 도대체 왜 오펜하이머였을까.

나치와의 전쟁이 끝나고 소련과의 냉전이 시작된 1953년 무렵이 영화의 출발점이다. 다시 말해서 영광의 정점에서 오욕의 심연으로 곤두박질치는 과학자의 운명을 다룬다는 뜻이다. 영화 대사처럼 오펜하이머는 3년간 4,000여 명의 인력과 20억 달러의 천문학적 예산이 투입된 초대형 프로젝트의 “설립자이자 시장, 보안관”이었다. 하지만 냉전 이후에는 ‘소련과 연계된 공산당원’이라는 의심을 사는 바람에 비밀 취급 인가가 철회되고 원자력 위원회 자문직에서도 물러나야 했다. ‘원자 폭탄의 아버지’가 전후 미국의 원자력 정책에서 배제되는 역설이 벌어진 것이다.
다독가였던 오펜하이머는 마르크스의 『자본』을 완독했고 1930년대 미국 공산당 활동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실제로 친동생 부부를 비롯해 아내와 심지어 연인도 전직 당원이었다. 영화에서도 스페인 내전 당시 공화파 정부 지원에 앞장섰던 오펜하이머는 동료 물리학자의 염려에 이렇게 답한다. “물리학에도 개혁이 필요해. 세상은 변하고 있어. 피카소, 스트라빈스키, 프로이트, 마르크스.” 하지만 “똑똑하면 많은 것이 용서된다”고 믿었던 오펜하이머의 천진난만한 낙관론도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적이 되는 냉전 논리 속에서는 그만 힘을 잃는다.
영화 초반부터 놀란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정치와 과학의 영역을 맞물리게 하는 자신의 장기를 여지없이 보여 준다. 파편화되고 뒤섞인 비선형적 서사와 진리의 상대성, 분열된 자아 등은 놀란 영화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이번 영화에서도 떨어지는 빗방울과 깨어진 컵의 파편 같은 비정형 속에서 규칙성을 찾으려는 오펜하이머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 준다.
1939년 9월 1일은 오펜하이머가 블랙홀 생성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날이자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2차 대전이 발발한 날이기도 했다. 영원히 평행선을 달릴 것만 같았던 이론과 현실의 영역은 이날을 기점으로 급속하게 수렴하기 시작했다. 그 종착점에서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여라는 비극적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물리학이 대량 살상 무기의 도구가 되어선 안 된다’는 도덕적 당위론은 ‘나치가 먼저 핵무기를 개발할 수도 있다’는 비정한 현실론 앞에서 빛을 잃는다.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신무기를 개발했다’는 자부심도 ‘세상을 자칫 절멸의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두려움과 뒤섞인다. 영화에서 오펜하이머와 트루먼 대통령(게리 올드먼)이 나눈 것으로 묘사되는 대화는 이 간극과 괴리를 명징하게 보여 준다. “제 손에 피를 묻힌 느낌”이라고 고백한 뒤 떠나는 오펜하이머를 향해서 트루먼은 이렇게 냉소적으로 말한다. “징징대는 아이들은 들여보내지 마.”
영화 초반부에는 T. S. 엘리엇의 「황무지」와 피카소의 ‘팔짱 끼고 앉아 있는 여인’,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까지 청년 시절 오펜하이머가 관심을 쏟았던 예술 작품들이 등장한다. 문학과 회화, 음악 분야에서 모두 현대의 탄생을 알렸던 문제작들이다. 실제로 오펜하이머는 피카소와 렘브란트, 르누아르의 그림을 소장할 만큼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고, 반 고흐의 ‘해 뜨는 밀밭’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았다. 결국 <오펜하이머>는 현대의 빛과 그늘을 모두 조명하는 영화인 셈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오펜하이머는 냉전의 희생양으로 전락할 위기 속에서도 머릿속으로는 핵폭발로 인한 인류의 멸망을 떠올린다. 순전한 공상일까, 아니면 파멸의 연쇄 작용이 이미 시작된 것일까. <오펜하이머>는 실은 인류의 명운이 걸린 문제를 한 남자의 삶을 통해서 보여 준다는 점에서 지극히 ‘놀란적’이기도 했다.

Stravinsky Conducts Stravinsky
이고리 스트라빈스키(지휘), 컬럼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CBS, CD)
스트라빈스키는 생전에 자신의 전 작품을 녹음으로 남긴 최초의 작곡가였다. 음반사 CBS가 1947년에 야심차게 시작한 스트라빈스키 전집 녹음은 그가 타계한 1971년까지 계속됐고, 말년에는 조수 로버트 크래프트가 지휘를 맡아서 이어 갔다. 스트라빈스키는 “이 음반들은 내 음악에 대한 정확한 연주를 안내할 수 있는 자료”라며 반겼다. 그 가운데 <봄의 제전>과 <페트루슈카>를 지휘한 음반이다. 작곡가는 “오늘날 연주자는 자신이 지휘하는 작품을 자신의 템포와 뉘앙스로 연주할 것을 강요하고, 부끄러움도 모른 채 자신의 특수성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한다”고 한탄했다. 이 경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연주자는 또 얼마나 될까.
글 김성현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지휘자 사이먼 래틀과 바렌보임의 전기를 번역했고 『365일 유럽 클래식 기행』 『시네마 클래식』 『모차르트』 『씨네 클래식』 등의 저서가 있다. 다양한 강연과 해설 무대는 물론, 유튜브 채널 ‘클래식 톡’을 통해 클래식과 대중의 간극을 줄여 가기 위해 노력 중이다.
사진 제공 유니버설 픽처스
Komment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