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윤정국 성남문화재단 대표이사: 기술과 예술, 지역과 세계를 연결하는 문화공간을 꿈꾸다
- artviewzine
- 6월 2일
- 5분 분량
최종 수정일: 6월 10일
윤정국 성남문화재단 신임 대표이사가 지난 4월 2일, 제8대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동아일보 기자와 문화부장을 거쳐 충무아트센터 사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사무처장, 김해문화의전당 사장과 김해문화재단 대표이사 등을 역임하며 중앙과 지역의 문화예술 현장을 두루 거친 예술경영 전문가다. 2년간 성남문화재단을 이끌어 갈 윤정국 대표이사가 새롭게 제시한 경영 철학은 예술과 기술, 사람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따뜻한 디지털 문화도시’이다. 기술이 인간을 소외시키는 존재가 아니라 공감과 창조의 수단으로 인간의 감성과 어우러지는 도시, 시민 누구나 디지털 문화 속 예술의 창작자가 되는 도시를 만들어 가기 위한 그의 포부를 들어 보았다.
글 남소연 성남문화재단 소통전략부 과장 | 사진 최재우

취임 후 한 달 남짓한 시간이 지났습니다. 바쁜 업무 일정을 소화하시는 동안 현장에서 느끼신 바도 많으실 듯합니다.
6개월 같은 한 달이었습니다(웃음). 재단 업무 파악과 더불어 시와 시의회, 지역예술계 인사들을 방문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어요. 틈틈이 직원들을 면담하고 식사도 함께 하면서 조직과 사람을 알아가는 한편, 새로운 일감을 하나씩 풀어놓고 있습니다.
외부에서는 공연장과 미술관 시설 중심의 성남아트센터를 주로 보게 되는데, 재단의 일원이 되어 바라보니 문화예술교육과 생활문화지원 등 다양한 문화사업들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어 놀랐습니다. 각 사업이 좀 더 유기적으로 연결된다면 상호 시너지 효과는 물론 재단의 전체 브랜드 파워도 키울 수 있겠다는 기대감도 생겼지요.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와 콘서트홀, 성남큐브미술관, 성남아트리움 등 훌륭한 인프라와 160명의 직원 모두가 재단의 장점이자 경쟁력인 만큼, 함께 조직과 사업을 혁신하고 성남시민의 행복 증진에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성남아트센터의 공간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도 고민 중이시라 들었습니다.
공연이 있는 밤 시간대에만 관객이 몰리다 보니, 좋은 시설과 환경이 온전히 활용되지 못해 안타깝더군요. 더 많은 시민이 언제든 찾아와 ‘예술 놀이터’로 즐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낮 공간 활성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자 해요. 시민들을 위한 편의시설 확대와 성남아트센터 내 공간들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하는 작업 역시 구상 중입니다. 예를 들어 현재 여러 건물에 분산된 전시 공간들을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재구성해 관람 편의성을 높일 수 있죠.
일간지 문화부장에서 공연장과 문화재단 대표로, 또 문화예술행정 전문가와 교육자로 30년 넘게 문화예술 현장을 지켜 오시는 동안 항상 마음에 두신 신념이 있다면 무엇이었는지요?
‘문화예술이 우리 삶을 풍성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준다’는 믿음입니다. 여러 문화기관을 거치며 의미 있는 일들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믿음 덕분이었죠. 사회적 창의(創意)와 공동체적 연대(連帶)의 원천으로서 문화예술 생태계를 돌보는 일은 분명 보람 있고 가슴 설레는 일이었습니다. 성남에서도 이런 신념으로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취임 후 ‘예술과 첨단기술이 조화롭게 융합된 따뜻한 디지털 문화도시 만들기’에 주력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셨습니다. 대표님이 구상하신 ‘따뜻한 디지털 문화도시’는 어떤 모습일까요?
성남시는 국내 도시 가운데서도 가장 미래에 근접한 도시입니다. 성남에 자리한 IT기업과 게임회사 등 첨단기술 기업들은 바로 성남시가 나아갈 ‘디지털 문화도시’의 방향을 보여 주는 생생한 근거들이죠. 다만 삭막하고 딱딱한 기술도시가 아니라 기술로 인간이 소외되지 않는 ‘인간 중심’의 도시, 인간적 감성이 살아 있는 ‘따뜻한 디지털 문화도시’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달리 표현하면 ‘미래예술의 중심 도시’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제 임기 중 목표는 이런 도시를 실현하거나 적어도 그 기반을 만들어 놓는 일입니다.
재단 운영 비전으로 △디지털 문화 중심 혁신 △글로벌 경쟁력 확보와 예술 향유 확대 △시민참여 기반 예술생태계 조성 △경영기반 고도화 및 신뢰경영 강화라는 4대 전략목표와 이를 위한 14대 과제를 제시하셨습니다. 전략목표 중 ‘디지털 문화 중심 혁신’은 기술+예술 융합에 기반한 창작콘텐츠 활성화와 육성 지원을 포함하는데요. 일찍이 Al 예술의 중요성, 특히 공공 부문의 융합예술 지원 필요성을 강조하신 만큼, 이 부분을 자세히 여쭤 보고 싶습니다.
앞에서 말한 ‘따뜻한 디지털 문화도시’ ‘미래 예술 중심 도시’와 연결되는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AI 기술은 전문예술가와 생활예술가 모두에게 중요한 도구입니다. 생활예술가는 전문교육을 받지 않고도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나 영상, 음악을 만들 수 있고, 전문예술가는 자신의 장르와 영역, 미학 세계를 확장·심화시키는 도구로 활용하죠. 그리고 어느 쪽이든 AI가 주목받을수록 역설적으로 인간다움이 대두하고 있어요.
AI 예술의 대중화를 위한 창작 지원과 프로젝트 펀딩 등 다양한 진흥 사업을 펼쳐 성남이 미래예술의 중심 도시로 자리 잡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디지털 도시가 얼마나 인간적인 도시가 될 수 있는지, 성남에서 그 모델을 만들어 확산시키고 싶습니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순수예술과 첨단예술의 균형을 어떻게 만들어 갈 계획이신가요?
전통적인 의미의 기초예술(순수예술) 진흥은 지속하되 새로운 융복합 예술을 접목하고, 디지털 문화예술 지원 비중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한발 먼저 선도하는 역할을 성남문화재단이 해내고 싶습니다.
김해문화재단 대표이사 재직 당시 창작 오페라 <허황후>로 지역 역사를 담아낸 브랜드 콘텐츠 제작에 도전하셨습니다. “지역 문화자원을 활용한 공연콘텐츠 창제작은 지역문화 특성을 찾아 문화자치로 가는 첫걸음”이라 밝히신 바 있는데요, 성남에서도 향토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한 콘텐츠를 염두에 두고 계시는지요?
성남은 역사적으로 시대의 선각자들을 많이 배출한 도시입니다. 고려 후기의 성리학자 둔촌 이집(1327~1387), 조선 후기의 여류 성리학자 겸 시인 강정일당(1772~1832), 구한말 의병장 남상목(1876~1908), ‘코끼리 아저씨’ ‘산바람 강바람’ 등 수많은 동요를 남긴 작곡가 박태현(1907~1993) 등을 꼽을 수 있지요. 이러한 인물들을 소재로 지역 정체성을 살리는 창작공연 콘텐츠를 제작한다면, 지역예술인들이 그 과정에서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지역에서 만들어진 우수한 창작콘텐츠는 지역예술인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문화 공공재로, 또 청소년들의 지역 정체성과 역사 교육에도 뜻깊게 활용될 수 있을 겁니다.
다양한 소재들 중 실제 공연화를 위한 콘텐츠 선정 기준이 있는지요?
지역과의 소통을 통해 성남의 역사문화자원을 기본부터 세밀하게 탐색하고 발굴하는 과정을 거칠 생각입니다. 여러 전문가, 또 지역예술인들과 함께 지역 문화자원을 활용한 글로컬 콘텐츠 창작 방향을 살펴보고, 지역의 관심과 참여 속에 콘텐츠 창작 기준을 수립하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지역 문화자원을 활용한 콘텐츠의 성공에 어떤 요소들이 필요할까요?
우선, 작품 수준입니다. 관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높은 수준과 완성도를 갖춰야 공연 무대에 자주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중앙의 뛰어난 창작인력이 기획 단계부터 지역예술가들과 협업해 수준 높은 작품을 만들어야 해요. 다음은 지역성입니다. 지역예술인들이 해당 작품을 자기 분신처럼 생각해 적극 제작에 참여하고 지지해야 합니다. 지역 정치와 외부 환경의 변화 속에서도 작품이 살아남으려면 지역에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하니까요.
성남시의 대표축제 ‘성남페스티벌’이 올해 세 번째 만남을 앞두고 있습니다. 대표님께서는 현재까지 성공리에 진행 중인 부산원아시아페스티벌을 2016년에 출범시킨 주역이신데요, 축제 성격과 규모는 다를지라도 ‘축제’라는 이벤트의 지향점에서는 공통분모가 있을 듯합니다.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 성남의 축제를 어떻게 만들어 가고 싶으신지 여쭤 보고 싶습니다.
첨단기술과 예술이 만나는 성남페스티벌은 제가 임기 중 목표로 내세운 ‘따뜻한 디지털 문화도시’의 미래를 보여 드릴 기회이기도 합니다. 저는 성남페스티벌을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융복합예술의 감성과 환상’을 맛볼 수 있는 축제로 만들 생각인데요. 세계적인 뉴미디어 아티스트인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이진준 교수와 협업할 예정입니다. 오는 9월, 그가 제작하는 융복합예술의 메인 콘텐츠가 성남페스티벌 개막식에서 모습을 드러냅니다.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웃음).
장기적으로는 성남페스티벌이 매년 3월 미국 오스틴에서 열리는 SXSW(South by Southwest)와 같은 축제를 지향해야 한다고 봅니다. 1987년 음악 페스티벌로 시작한 SXSW는 이제는 영화와 인터랙티브 미디어, 신기술까지 아우르는 종합문화축제로 성장했어요. 올해에도 스타트업과 미래학자, 글로벌 아티스트, 기술 전문가 등 각계의 인사들이 경계를 허물고 창의적 협업을 이뤄 냈습니다. 성남페스티벌도 ‘아시아의 SXSW’로 여러 분야를 유기적으로 아우르며 정체성을 다져 나갈 생각입니다.
SXSW를 롤모델로 삼으신 가장 큰 요소는 무엇인가요?
‘다양성’이죠. SXSW 현장은 음악과 영화, 미디어뿐 아니라 새로운 기술이 다채롭게 펼쳐진다는 점에서 벤치마킹 요소들이 존재합니다. 아직 초창기 단계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성남페스티벌만의 새로운 정체성이 만들어지고, 예술과 첨단기술의 다양한 담론이 탄생하고 확산되기를 기대합니다.

취임 이후 지역 문화예술계와의 소통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계십니다. 지역예술(인)을 위한 재단의 역할과 더불어, 앞으로 어떤 상생의 유대를 이어가실지 여쭤 봅니다.
지역예술가들은 지역 문화예술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입니다. 이분들의 원활한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일이 재단의 역할이지요. 장기적으로는 지원금 배분에만 머물지 않고 지역예술인들이 저마다의 예술 애호가층을 형성해 자생적인 창작 활동이 가능하도록 하겠습니다. 또 지역과 소통하고 예술세계를 알릴 수 있는 기반 구축에 힘을 보태겠습니다. 그동안 재단이 진행한 예술인 역량강화지원 등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원도 강화할 예정입니다.
최근 인상 깊게 읽으신 책이 있으신지요?
AI와 예술에 대한 예술가 8명의 고찰을 담아 낸 『AI는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를 추천하고 싶네요. AI를 통해 미래예술을 탐구하는 기회를 접할 수 있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지난해 성남문화재단 창립 20주년에 이어, 2025년은 성남아트센터의 개관 20주년입니다. 성년이 된 성남아트센터가 만들어 갈 역할, 그 과정 속에서 이루시고 싶은 바람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먼저 성남아트센터 개관 20주년이라는 뜻깊은 해를 맞아 그간 헌신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성남아트센터는 지난 20년간 예술로 시민과 함께하며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예술 플랫폼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이제 성년을 맞은 성남아트센터와 성남문화재단은 지역을 넘어 글로벌 네트워크 형성을 통해 ‘글로컬 문화공간’으로 한 단계 도약해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지역 문화자원을 창의적 기획으로 재해석하고, 세계와 연결되는 글로컬 콘텐츠를 발굴·확산함으로써, 성남만의 독창적이고 매력적인 문화예술 생태계를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성남아트센터가 예술 창작의 플랫폼이자 문화 교류의 장이 되고, 지역예술가와 시민이 주인공이 되는 예술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성남문화재단과 함께할 시민 그리고 관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제 20주년을 맞아 성숙한 성년의 모습으로 공연장과 미술관, 또 다양한 문화사업의 현장에서 여러분을 뵙고자 합니다. 문화예술로 충만한 행복을 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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