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소프라노 조수미: 이제, 미래를 노래할 시간
- artviewzine
- 6월 2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6월 5일
대한민국에서 조수미의 이름은 성악, 나아가 클래식 음악의 대명사다. 내년이면 벌써 세계 무대 데뷔 40주년, 그러나 여전히 눈부신 에너지로 무대를 누비는 현역의 거장은 자신이 지닌 ‘예술의 힘’을 더 가치 있게 나누기 위한 행보 역시 지속 중이다. 6월 21일, 조수미 국제 콩쿠르 입상자들과 함께하는 <더 매직 - 조수미 & 위너스> 성남 공연에 앞서, 우리 시대의 디바가 음악과 예술을 향한 끝없는 애정과 도전의 이야기를 전해 왔다.
글 남소연 성남문화재단 소통전략부 과장

여전히 많이 바쁘시지요? 현재 어떤 일정을 소화하고 계신지요?
아웃백 오페라 페스티벌(Festival of Outback Opera 2025)을 위해 호주 브리즈번에 왔어요. 초가을 저녁 야외 공연인데 윈톤과 롱리치에서 각각 다른 프로그램으로 무대에 오르죠. 어제(5월 9일) 도착해서 오늘은 푹 쉬고 내일부터 리허설에 들어갑니다. 호주는 제 우상이자 가장 가까운 친구인 소프라노 조안 서덜랜드 부부의 고향인데요, 조안의 남편 리처드 보닝은 제가 1994년 데카에서 발매한 <카니발! 프렌치 콜로라투라 아리아> 앨범의 지휘자이자 예술감독이었던 인연이 있기도 해요.
조수미 국제 성악 콩쿠르 입상자들과 함께하는 무대를 앞두신 만큼, 콩쿠르 이야기를 부탁드려야겠네요. 지난해 제1회 콩쿠르의 성공을 축하드리면서, 당시 이야기를 여쭤 보고 싶습니다.
첫 콩쿠르는 팬데믹 여파로 온라인 예선을 진행했던 아쉬움이 컸어요. 하지만 덕분에 짧은 기간에도 전 세계 500여 명의 성악가들이 지원했고, 심사위원들도 전원 참여해 본선 진출자를 잘 선발할 수 있었습니다. 콩쿠르 장소 로 ‘프랑스의 정원’이라 불리는 루아르(Loire) 지역을 선택한 것은 제 친구이자 프랑스 문화계에 영향력이 큰 올리비에의 추천이었어요. 루와르에 샤토 드 라 페르테 엥보(Château de La Ferté- Imbault)라는 큰 성을 가지고 있으니 그곳에서 콩쿠르를 열면 어떻겠냐며 묻더군요. 부유한 기업인들의 여름 별장이 많은 곳이니 본선 진출자들을 홈스테이로 머물게 하면서 콩쿠르를 지역 축제로 만들자고요. 대도시에서 진행되는 콩쿠르는 참가자들의 유대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형식인 점이 항상 마음에 걸렸는데, 루아르 지역 관계자들의 지원 덕에 경연 기간 내내 참가자들이 홈스테이를 즐기며 서로를 알아 가는 네트워크 기회를 만들었어요. 1주간의 공동생활이 빚어낸 유대는 꽤나 강력해서, 우승자 탄생 시점까지 진정한 ‘원 팀’의 모습을 볼 수 있었죠. 언젠가 모두 세계 무대에서 만나게 될 텐데, 이런 네트워크가 훗날 그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리라 생각했어요.

성악가에게 이상적인 콩쿠르란 무엇인지 많이 고민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건 콩쿠르를 시작한다는 점에서 부담이 컸을 텐데요, 실제 진행 과정에서는 어떠셨나요?
가장 큰 고민은 ‘얼마나 좋은 성악가들이 얼마나 많이 지원할 것인가’였어요. 모집 시작부터는 매일 걱정이 많았죠. 지원자가 적거나, 특정 지역 지원자만 몰린다거나, 저로 인해 소프라노만 지원한다거나…. 다행스럽게도 500여 명의 성악가들이 파트별, 지역별로 골고루 지원해 정말 행복했어요. 또 콩쿠르의 핵심 기능 중 하나는 입상자들을 위한 좋은 무대와 녹음 기회 제공이라, 최고의 심사위원 초빙에 큰 노력을 기울였죠. 워너뮤직과 에라토 대표 알랭 랜서론, 전 메트 오페라 예술감독과 라 스칼라 극장 캐스팅 디렉터, 테너 라몬 바르가스 등 각계 대가들이 참여해 주셨어요. 조수미 국제 콩쿠르 출신 성악가들이 이미 세계 무대에 초청되어 노래하는 지금, 콩쿠르가 더욱 발전해 미래의 스타를 발굴할 수 있기를 기대 중입니다. 또 1회 콩쿠르를 마친 뒤 관계자들이 함께 노고를 축하한 자리에서는, 대회 공식 후원사로 현지에서도 아낌없는 지원을 보내 주신 현대차그룹을 향한 찬사도 가득했어요. 한국의 위상이 유럽 문화의 중심지에서도 발휘됨을 실감하고 감동받은 시간이었습니다.
내년 2회 콩쿠르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첫 대회 때 실행하지 못한 지역 예선 진행, 세계 오페라 시장 트렌드에 맞춘 선정 기준, 입상자에게 주어지는 공연과 음반 녹음 기회 확대 등 여러 부분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또 한불 수교 140주년이자 제가 세계 오페라 무대에 데뷔한 지 40주년이 되는 해라,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하려 해요. 7월 제2회 콩쿠르와 연계한 축하 무대를 프랑스에서 진행하고, 입상자들은 바로 한국에서 <2026 조수미 & 위너스> 무대에 참가합니다.
지난 1회 콩쿠르의 심사 기준은 “자신이 왜 노래하는지 알고 투철한 미션을 가진 사람, 노래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고 하셨지요. 이번 <조수미 & 위너스> 무대에 함께할 입상자 네 명에게서 이 부분을 느끼셨나요?
그런 느낌이 없는 성악가라면 뽑지 않았겠죠. 사실 모든 본선 진출자들은 자신의 음악성에 대한 믿음, 위대한 성악가가 되겠다는 의지로 가득했어요. 그들의 마음에 경쟁의 의미를 불어넣어 최상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 콩쿠르죠. 특히 미래 커리어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심사위원들 앞에서 다른 경쟁자들보다 자신을 잘 보여 줘야 하는 상황이 연출되곤 하니까요. 스스로의 진가를 보일 수 있는 음악을 선곡하고 최선의 표현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은 우위를 가릴 수 없었어요. 오페라는 특정 시대와 나라, 문화를 반영하는 스토리를 지닌 장르라 자라 온 환경이나 학습만으로는 공감이 힘들 수도 있지만, 각각의 아리아를 부를 때에는 결국 자신의 것을 만들어 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네 명의 성악가들은 그 이상의 무대를 보여 줬다고 평가하고 싶네요.
콩쿠르 입상 자체보다는 그 이후의 실질적인 음악 활동을 돕고 싶다는 바람을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투어 역시 그중 하나겠지요?
입상자들에게는 다른 어떤 성악 콩쿠르보다 많은 우승 상금, 위너스 콘서트를 포함한 다양한 음악적 지원이 제공됩니다. 1회 입상자 대부분은 콩쿠르를 계기로 매니지먼트사가 생겼고, 유럽과 미국 유명 오페라단과 출연 계약을 맺은 연주자들도 있어요. 저는 이번 콩쿠르에서 성악가 개개인의 입장을 존중하는 동시에 본선 진출자들이 하나의 팀으로 우정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는데, 팀워크에서 우수한 리더십을 발휘하거나 다른 이들과 따뜻한 유대관계를 만들어 가는 모습이 참 뿌듯했어요. 오페라 스타로서의 성공은 단순히 노래 실력만이 아니라 인성과 리더십, 좋은 인간관계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신했죠.
위너스 갈라 콘서트 프로그램의 콘셉트와 구성은 어떻게 조율하셨는지요?
주르주 비르반과 이기업은 테너, 지하오 리는 바리톤, 줄리엣 타키노는 소프라노 음역대를 노래합니다. 개인의 기량을 충분히 보여 줄 수있는 곡들을 바탕으로 오페라 아리아 중 이중창, 삼중창 등 다양한 곡들을 선정하고, 관객 여러분이 평소 좋아하지만 라이브로 듣기 어려운 유명 아리아들로 구성했어요. 특히 제가 많은 곡들의 상대 주인공 역을 맡기 때문에, 입상자들이 보여 주는 최상의 실력과 더불어 풍성한 공연을 즐기실 수 있을 겁니다.
내년에 데뷔 40주년을 맞이하시지요. 긴 세월 한결같은 자기관리로 모범적인 예술가의 모습을 보 여 주셨는데요, 소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1년의 대부분을 공연을 위해 움직이다 보니 언제 그렇게 시간이 흘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웃음). 40주년인 2026년에는 새로운 각오로 미래로 나아가는 계획을 모두 담고자 합니다. 우선 지난해 첫 콩쿠르를 시작했던 마음으로, 제1회 조수미 페스티벌(Sumi Jo Festival 2026)을 준비하고 있어요. 여러 예술가들과 꾸미는 무대와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지금까지 제게 힘과 용기를 주신 여러분과 함께할 예정입니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 여러 도시에서도 조수미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공연을 진행할 계획이니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며 언제나 열린 음악을 만들어 오셨습니다. 앞으로 구상하고 계신 아이디어도 궁금한데요.
지난 40년의 음악을 ‘역사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만들어 왔다면 다가올 음악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기술과 문화예술의 융합’이라고 생각해요. 지난 3년간 카이스트 석학초청 교수로 문화기술대학원 조수미 공연예술연구센터 연구자들과 함께 고민한 것은 다름 아닌 인공지능(AI) 기술과 문화예술의 접목이었습니다. AI가 우리 생활의 동반자로 자리하는 지금, AI의 역기능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문화예술 저변을 확대하고 다양성을 만들 수 있는 가치 또한 인정되고 있습니다. 최근 저는 ‘다음 세대에 전수될 만한 가치를 가진 예술인’의 AI 에이전트를 만드는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제가 살아온 가치를 후대에 전하는 사명을 갖게 되었는데요, AI 학습에 적합한 자료를 제공하는 과정이 마치 새로운 곡을 받은 학생처럼 설렙니다. 이처럼 AI와 클래식, 노래와 기술, 환상적인 무대 구현을 위한 새로운 방법의 개발에도 계속 노력을 기울일 계획입니다.
올해 남은 일정 중 특별한 계획도 있으신가요?
40주년 앨범 준비와 마스터클래스, 여러 공연 일정이 있어요. 미국 4개 도시 투어, 홍콩, 마카오, 선전(Shenzhen), 저의 절친한 친구였던 바리톤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Dmitri Hvorostovsky, 1962~2017)를 추모하는 러시아 공연 등이죠. 특히 40주년을 의미 있게 맞이하기 위한 준비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음악 외에 앞으로 이루고 싶은 일들이 있으신가요?
지속적인 음악 생활과 더불어 제 경험과 기술을 후학에게 알려 주는 교육자의 역할, 음악 산업이 조금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고민하는 연구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싶습니다. 아울러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분들을 위한 배려도 잊지 않고 실천하고자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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