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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기 1] 창작오페라 <바람의 노래>: 창작오페라로 다시 태어난 동요 선율

  • 작성자 사진: artviewzine
    artviewzine
  • 21시간 전
  • 3분 분량

11월 14일(금), 15일(토) 성남아트리움 대극장

해방 직후부터 1970년대까지의 유년기를 살아온 이들에게 작곡가 박태현(1907~1993)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 “산 위에서 부는 바람~”으로 시작하는 ‘산바람 강바람’을 비롯해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라는 가사로 사랑받은 ‘코끼리 아저씨’ 외에도 ‘누가 누가 잠자나’ ‘태극기’ ‘나팔 불어요’ ‘봄맞이 가자’ 등 척박했던 시절의 동심을 어루만져 준 수많은 동요가 그의 손에서 나왔다. 국경일 노래인 ‘삼일절 노래’ ‘한글날 노래’가 그의 곡이라는 사실도 해방공간의 음악계에서 그의 위상이 어떤지를 잘 보여 준다.


유윤종 칼럼니스트

동아일보 음악전문기자로 29년 동안 근무했고,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장과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사무국장을 지냈다.

사진 최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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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을 성남에서 보냈고 성남사랑의 노래인 ‘나성남에 살리라’를 작곡한 박태현의 노래들이 성남문화재단에 의해 오페라로 탄생했다. 김주원 작곡·황정은 대본으로 11월 14, 15일 성남아트리움 대극장에서 초연된 창작오페라 <바람의 노래>다. 박태현의 동요 원곡과 작곡가 김주원이 창작한 노래들을 적절히 활용했으며, 작곡가는 “조성음악과 현대적 기법의 대비를 통해 대본과 음악의 결을 일치시키고자 했다”라고 밝혔다.

박태현의 동요는 주요 3화음과 딸림7화음(V7)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단순한 화성과 간명한 선율을 토대로 한다. 김주원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서정 가곡에서 진가를 발휘해 온 작곡가지만 동시대 작곡가답게 다양한 색깔의 화성과 반음계를 활용해 왔다. 두 작곡가의 세계는 조화롭게 만날까.

단일하거나 명쾌한 해답이 있는 문제는 아니었지만, 박태현의 세계는 김주원의 세계에, 김주원의 세계는 박태현의 세계에 비교적 성공적으로 녹아든 것으로 보였다. 김주원은 작곡 노트에서 밝힌 ‘산바람 강바람’ ‘깊은 밤에’ ‘엄마’ 등 세 개의 박태현 선율 동기를 선율선과 반주부에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도레미파’의 반주에 리드미컬한 피치카토를 활용하는 등 원곡의 선율에 적절한 색채를 입힌 점도 돋보였다.

김덕기 지휘, 성남시립교향악단이 맡은 반주에는 조건적 한계가 있었다. 파트당 6명(3풀트)으로 구성된 현악부 편성은 두께감과 선명한 화성적 이미지를 구현하기에는 부족했다. 초연 공간의 한계와 향후 소규모 공간에서 지속적으로 공연의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한 고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듣는 이에게는 더 큰 편성을 머릿속으로 상상해야 하는 수고가 뒤따랐다. 관악부 역시 1관 편성으로 제약이 있었지만, 작곡가의 효과적인 선율 및 성부 배분 덕에 이 부분에서는 큰 아쉬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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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남겨진 ‘강바람’이 노래를 부르자, 그 목소리에 이끌린 ‘바람’과 자연의 친구들이 집에 모습을 드러낸다. 사진 왼쪽부터 강바람 역의 소프라노 홍혜란, 바람 역의 메조소프라노 백재은, 달 역의 테너 최원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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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바람의 집에 모인 동물 친구들이 노래와 춤으로 평화로운 순간을 함께 나누고 있다


주인공인 전쟁고아 ‘강바람’ 역의 홍혜란과 그의 상상 속 친구 ‘달’ 역의 최원휘는 맑고 순수한 음성만으로 자기 몫을 다했다. 성악적, 연기적으로 움직임이 큰 ‘바람’ 역의 백재은도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강바람의 보호자가 되는 군인 ‘최범석’ 역의 우경식도 강건하고 신뢰감이 드는 발성으로 무대를 이끌었다. 다만 ‘국민동요’라고 할 수 있는 ‘산바람 강바람’을 홍혜란이 노래할 때에는 그 음높이(음역) 설정에 의문이 들었다. 어른의 화려한 소리가 아닌 어린이의 순수한 음성을 강조하려는 의도였겠지만, 더 높은 음역을 활용하는 것이 오히려 선명한 인상을 주었을 수 있다. 바람 역인 메조소프라노 백재은과 소프라노인 강바람 역의 음역 대비가 크지 않은 점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작품에서 작곡가가 적극적으로 활용한 박태현의 작품은 유도동기에 활용한 세 곡 외에 ‘도레미파’ ‘누가 누가 잠자나’ 등이었다. 이 중 ‘깊은 밤에’ ‘엄마’ ‘도레미파’는 1960년대생인 필자에게도 친숙지 않은 곡들이다. 필자 세대에게 훨씬 익숙한 박태현의 곡으로는 ‘태극기’ ‘코끼리 아저씨’ ‘나팔 불어요’ ‘봄맞이 가자’가 있다. ‘태극기’는 그 뚜렷한 주제성 때문에, ‘코끼리 아저씨’는 산의 자생 동물과 곤충들이 등장하는 이 극과 이국의 동물인 코끼리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이 오페라에 적용이 어려웠겠지만 ‘나팔 불어요’와 ‘봄맞이 가자’가 적절히 활용되지 않은 점은 다소 아쉬웠다. ‘잠자거라 우리 아가’와 ‘누가 누가 잠자나’ 두 자장가 선율이 어우러진 부분은 효과가 좋았으나 한계도 있었다. 필자의 세대에서 ‘잠자거라 우리 아가’는 대부분 같은 가사에 박태현의 곡보다는 권길상이 곡을 붙인 노래를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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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를 찾아 강바람의 집을 습격한 늑대개 무리.

강바람과 달이 동물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 늑대개 무리와 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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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곳을 찾아 강바람의 집으로 찾아온 귀뚜라미와 개미들. 성남시립소년소녀합창단의

맑은 목소리와 귀여운 안무가 장면에 생동감을 더했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들의 대화는 대사가 아닌 레치타티보를 활용했다. 대부분의 한국 창작 오페라가 레치타티보 적용에서 어려움을 드러낸다. 입말의 억양을 살리는 것 외에도 박자와 음절의 적절한 분할 및 배치, 단순 음정 부여를 넘어선 큰 시간 단위에서의 선율적·화성적 이미지 형성은 창작오페라 관람 때마다 늘 미해결 숙제로 느껴진다. 이 작품 역시 이 점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이날 공연에서 투사막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연출은 좋은 효과를 낳았다. 반면 ‘달’역 출연자의 의상은 엄마가 옷에 수놓아 준 ‘달’이라는 한글 표시로 상징된다. 직접 드러나는 문자 이미지는 극의 상징성을 해치기 쉽다. 옷이나 머리 부분의 둥근 원반에 ‘방아 찧는 옥토끼’ 무늬를 넣는 것이 어땠을까 상상해 보았다.

공연과 직접 관계되지 않는 말로 글을 맺는 점이 양해되기를 바란다. 극 중 최범석이 수행한 고아의 보호자 역할은 실제 한국전쟁 당시 미군 장교나 병사가 맡는 경우가 많았다. 보육원에 수용된 원생들도 많은 수가 해외에서 새로운 삶을 찾았다. 슬픈 민족사의 단면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큰 행복을 찾았기를 뒤늦게나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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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최범석이 강바람을 구해 고아원으로 데려온다. 최범석 역의 베이스바리톤 우경식(사진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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