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아티스트 토크] 안무가 호페쉬 쉑터: 오직 움직임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이스라엘 출신의 예술가 호페쉬 쉑터(Hofesh Shechter)를 표현하는 가장 적확한 키워드는 바로 ‘다재다능함’이 아닐까? 세계 무대에서 각광받는 현대무용 안무가이자 장르를 넘나드는 무대 연출 그리고 음악과 영화 작업에 이르기까지, 독보적인 에너지와 다채로운 개성으로 가득한 쉑터의 창작에 경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예술을 통한 공감과 연대의 정서를 빚어내는 데 무엇보다 진심인 아티스트, 호페쉬 쉑터에게 <꿈의 극장>과 창작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남소연 성남문화재단 소통전략부 과장

©Hugo Glendinning


이번에 성남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는 신작 <꿈의 극장>은 어떤 작품인가요?

<꿈의 극장>은 다양한 이미지와 생각할 거리를 가득 선사하는 매우 흥미진진한 공연입니다. 무용수 13명과 연주자 3명이 무대에 등장하고 연주자들의 라이브 음악, 녹음된 전자음, 목소리 등 다채로운 사운드의 어우러짐 속에 온갖 감정이 솟구치죠. 공연 내내 적절한 시점마다 완전히 다른 종류의 음악이 사용됩니다. 무용수들의 신체적 표현을 극대화한 역동성을 만끽할 수 있는, 에너제틱한 몸짓으로 가득한 공연이기도 해요. 무대는 세트인 동시에 무대와의 상호작용도 있습니다. 음, 너무 많은 걸 알려 드렸네요(웃음).


어떤 계기에서 탄생한 작품인지, 창작 배경도 궁금한데요.

제가 작품을 구상할 때에는 ‘꿈의 세계’의 여러 일면을 떠올렸어요. 잠을 자면서 꾸는 꿈만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꿈이나 소망, 무언가를 원하는 감정과 그 이유도 고민했지요. 또 문화적 요소, 우리의 욕망과 희망 사이의 연결고리도 탐구하고자 했습니다. 이 작품의 무대는 마치 인간의 두뇌나 무의식처럼 작동하면서, 무언가는 드러내고 또 다른 것은 숨기기도 해요. 무대에 깊이 빠져들수록 인간이라는 존재와 연결된 온갖 흥미롭고 깊이 있는 요소들을 발견하게 되죠.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매우 몰입감 있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공연입니다. 관객 여러분이 직접 경험하셨으면 좋겠네요.


<꿈의 극장>은 성남아트센터를 비롯해 전세계 주요 극장들이 공동 위촉한 작품입니다. 이렇게 많은 지원 속에 새로운 작품을 만든다는 것, 그에 따른 기대에서 오는 부담은 없었나요?

2009년부터 많은 극장들이 제 작업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고, 꽤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제는 그런 환경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운 것 같습니다. 특권이었을 수도, 또 어떤 면에서는 부담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처음부터 운이 매우 좋았다고 생각해요. 작품의 내용은커녕 제목조차 미정인 단계에서 세계 투어가 예정되기도 했죠. 저는 그만큼 큰 신뢰 속에서 창작하고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말씀하셨듯 사람들의 기대와 희망은 큰 부담과 책임이 따르니까요. 다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그런 기대가 오히려 큰 흥분과 에너지를 주기도 해요. 사람들은 흥미롭고 강력한 경험, 인간으로서 가진 경험이 반영된 무언가를 원하고, 그래서 저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저의 경험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거기에는 ‘함께 만들어 간다’는 설렘과 흥분이 있고, 지극히 열린 마음과 지지받는 느낌이 가득하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실험하고, 자신에게 충실하고, 과정을 즐기며, 최선을 다하고 결과를 지켜보는 것뿐입니다. 작업이 잘 풀리는 날에는 그렇게 떠오른 영감으로 작업하고, 힘든 날에는 내면의 싸움을 이겨 내고 원래 품었던 생각으로 방향을 돌리려고 노력해요.

호페쉬 쉑터가 참여한 영국 로열 오페라하우스 오페라 〈오르페와 에우리디체〉 ©Bill Cooper


당신은 안무가인 동시에 뛰어난 작곡가이시기도 하죠. 이번 <꿈의 극장>의 음악도 직접 작곡하셨는데요, 자신의 작품을 위한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자신의 안무를 위해 직접 음악을 만든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그 세계를 온전히 통제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전체 공연의 느낌과 감정을 만들 수 있다는 점, 총체적인 경험을 전달한다는 차원에서 정말 큰 의미이자 기쁨입니다. 음악이 단순히 부수적인 요소가 아니라 공연의 일부이자 전체 경험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죠. 음악은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작품이 주는 느낌이 무엇인지에 대한 강렬한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저는 음악과 안무가 마치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만들기를 좋아해요. 음악은 안무에, 안무는 음악에 서로 영향과 영감을 주죠. 두 가지를 각각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창작하기 때문에, 과정이 상당히 복잡하고 때론 무질서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하지만 그 혼돈 속에서 무용수와 관객, 저 자신을 위한 대단히 강렬하고 집약된 경험이 탄생합니다.


이번 작품에서 조명 디자이너 톰 비서의 손길도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무대 위 움직임이 조명 디자인으로 더욱 부각되었는데요.

톰 비서는 놀라운 아티스트이자 훌륭한 조명 디자이너죠. 그와 작업하는 것은 큰 기쁨입니다. 톰에게는 강렬한 시각적 언어와 확고한 비전이 있어요. 저도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와 방향성, 에너지나 분위기가 명확하기 때문에 그에 부합하는 작업을 요청하죠. 톰은 제가 원하는 느낌을 훌륭하게 구현하는 동시에 자신의 예술적 시각과 독창적 색깔을 작품에 담아냅니다. 참으로 이상적인 협업이라고 생각해요.


음악을 공부했고 록 밴드의 드러머 경험도 있으시지요? 10대 시절에는 쇼팽, 바흐, 퀸, 특히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에 심취하셨다고 들었는데요, 당신의 음악적 배경에서 주류를 이루는 장르들은 무엇인가요?

여섯 살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처음 클래식 음악을 접했어요. 대략 10년에서 12년 정도 클래식 피아노를 연주하며 음악을 공부하다, 어느 시점부터 춤에 깊이 매료되면서 한동안 음악을 떠나 있었습니다. 이후 20대에 드럼을 배우면서 타악기에 빠졌고 더 깊이 배우고 실력을 다지기 위해 노력했죠. 클래식 음악과 타악기로 시작한 음악에 대한 탐구는 이후 저만의 소리와 음악, 소리풍경, 분위기, 전자음악까지 이어졌어요.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결합되어 결국 제 작품의 음악을 직접 만들게 된 거죠.


당신이 안무가로, 또 배우로 참여하신 영화 <라이즈>는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또 <폴리티컬 마더>의 영화 버전을 제작하기도 하셨죠. 영화감독으로서의 작업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평소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팬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외에 영감을 받은 영화나 감독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영화라는 매체를 사랑합니다. 어릴 때부터 좋아했고 지금도 변함없이 애정을 품고 있죠. 영화는 내러티브와 대사를 통해 전달되는 이야기와 이미지, 색채, 소리, 음악, 편집이 결합된 그야말로 경이로운 예술입니다. 저는 영화야말로 인간이 경험하는 꿈의 상태에 가장 가까운 매체가 아닌가 해요. 영화 속 시간, 이야기, 이미지를 창작자가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점, 이야기와 이미지, 소리 사이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내는 과정도 지극히 매력적이죠.

스탠리 큐브릭 감독 외에 제가 좋아하는 감독은 크리스토퍼 놀란입니다. 그는 단순히 영화를 ‘연출’하는 것이 아니라 ‘안무’하는 감독이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대상의 이미지와 흐름, 타이밍이 내러티브에 의존하기보다는 오히려 춤처럼 에너지 넘치는 경험에 가깝습니다. 그런 점에서 놀란 감독의 작품을 좋아합니다.


관객 분석과 세분화, 이를 통한 소통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계시죠. 관객과의 소통이 당신에게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공연을 창작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어떤 방식으로든 관객과 소통하기 위해서입니다. 종교적인 표현을 빌자면 ‘삶의 사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나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누구도 명확한 해답을 내리기 어렵고 누군가는 종교적인 답변을 할 수도 있겠지만, 제 삶의 관점에서 이 질문의 답은 ‘이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서’입니다. 한 인간으로서 저의 경험을 공연, 소리, 움직임, 시각적 요소로 응축해 수천 명의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큰 성취감이 있죠.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함께 배우고 경험하며, 모두에게 의미가 있는 무언가를 만들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관객과의 관계나 소통이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해요. 제 예술의 본질은 사람들과 연결되고, 감정과 경험을 나누며 무언가를 느끼는 데 있으니까요. 물론 혼자 방에서 무언가를 만들거나 춤을 추는 것도 강렬한 경험일 수 있지만, 무대 위에 작품을 올려서 관객과 소통하는 언어로 표현하는 일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작업입니다.


오래전 인터뷰에서 “춤은 나에게 잠재적 자유다”라고 표현하셨어요. 지금도 같은 감정인가요?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네요. 춤은 단어나 정의(定意)가 중요하지 않아요. 오직 경험만이 중요한 장소로 들어가는 관문입니다. 그 경험을 ‘제한적’이라고 정의하든 ‘최고’ ‘최상’ ‘황홀함’이라고 정의하든 간에, 흐름에 몸을 맡기는 거죠. 그 관문을 통과해 자신의 몸과 연결되어 움직이며 ‘스스로의 경험과 감정’이라는 유일한 현실에 집중하는 순간, 우리는 자유로워집니다. 더 나은 표현이 떠오르지 않네요. 모든 걱정, 언어로 제한하는 정의, 무언가를 이해하려는 시도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오롯이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움직임의 놀라운 잠재력입니다.


춤, 안무, 영화, 음악까지, 당신의 모든 창작 활동을 통해 공통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저는 제 작업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 ‘경험’이 되길 바랍니다. 타인과 경험을 공유할 때, 우리는 그 감정에 자신을 투영하며 더 큰 공감과 이해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관객이 공연을 바라보며 친밀하면서도 새로운 무언가를 경험하는 동시에 자신의 내면 그리고 다른 관객들과 연결된 느낌,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 함께한다는 동지애와 연대의 감정을 느꼈으면 해요. 결국 제가 전달하고 싶은 건 메시지보다 ‘감정’에 가깝겠네요.


안무가, 연출가, 작곡가, 영화감독 등 당신을 설명하는 다양한 타이틀 중 단 하나로 자신을 표현한다면 어떻게 불리고 싶으신가요?

‘세상을 사는 동안 이것저것 실험해 본 사람’ 정도면 어떨까요?


이번이 성남시와 성남아트센터 첫 방문이시죠? 개인적으로 계획하신 일정도 있는지요?

최대한 많은 고깃집을 가고 비빔밥도 잔뜩 먹는 겁니다. 제겐 현지 음식 이상의 의미가 있는, 정말 사랑하는 음식이라서 하루빨리 맛보고 싶네요. 시장 구경도 좋아해요. 한국과 한국의 문화, 사람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번 방문을 손꼽아 고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현재 준비 중인 작품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최근 런던의 올드 빅(The Old Vic) 극장과 함께 연극과 무용을 결합한 프로젝트 <오이디푸스Oedipus>를 마쳤습니다. 무용수 10명과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배우 라미 말렉(Rami alek) 인디라 바르마(Indira Varma) 등 여러 배우들이 함께한 작품이었는데요, 많은 걸 배우고 경험하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6월에는 제가 작업한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새로운 전막 작품이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에서 초연 예정입니다. 그 외에도 여러 프로젝트를 계획 중이라 무척 기대하고 있습니다.


<오이디푸스> 연습 현장 ©Theoldvictheatre

Comments


bottom of page